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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단신(短信)

엄마에게 소심하게 반항했더니 그 결과가...

by 이방인 씨 2013. 11. 5.

어제는 미국인들의 메이플 소세지 이야기였는데 오늘은 이방인 씨가 먹는 밥 이야기랍니다.
여러분은 집에서 어떤 밥을 드시나요?

저희는 맛없는 잡곡밥을 먹어요. (← 매우 건조한 말투로 읽어 주세요.)

한국인의 주식이 쌀밥이라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갖가지 잡곡을 섞어 지은 밥을 먹는 가정이 많을 것 같은데요.
건강에는 좋다고 하지만 맛은 백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잖아요?
저도 흰 쌀밥을 못 먹고 산 지 10년 쯤 됐는데 10년 전에 비해 그리 건강해진 것 같진 않아요.
저희 어머니는 때에 따라 조금씩 바뀌지만 대강 이 정도 잡곡을 섞은 밥을 지으십니다.


[현미 + 흑미 + 조 + 기장 + 납작 보리 + 검은콩 = 우울한 식탁]

 

(google image)

평소 먹는 밥은 늘 이런 모습인데요.

 

다른 건 다 참고 먹을 만한데 제가 콩을 무척 싫어해요.
세상에서 제일 먹기 싫은 것 세 가지를 고르라면 콩, 콩나물, 콩국수라고 말하겠어요!
어릴 때부터 단 한순간도 콩을 좋아했던 적이 없어서 콩 먹고 토한 적도 있는데 엄마는 곧 죽어도 콩을 먹이려 하세요.
그래서 항상 밥을 풀 때 콩을 피하느라 요리조리 골라 퍼야 하는 고충이 있는데 저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흥할 인간입니다.

흥할 인간은 콩만 괜찮고 다른 잡곡을 다 싫어하거든요.

다행히 반찬투정을 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평소에는 군말 한마디 없이 주는대로 잘 먹길래 별로 불만이 없는 줄 알았다가 며칠 전에 빵 터졌지 뭐예요.
어머니가 새로 산 압력밥솥 덕분에 밥이 더 맛있게 지어졌다 하시면서 여느 때처럼 잡곡밥을 주셨는데 조용히 있던 흥할 인간이 갑자기 이 한마디를...

엄마, 어차피 인생 한 번밖에 못 사는데 우린 왜 이런 걸 계속 먹어야 돼요?

 

10년간 불평없이 주는 대로 먹어오던 흥할 인간의 한탄에 나머지 세 식구가 어찌나 웃었는지요.
그 동안 조용하던 흥할 인간이 저렇게 나온 것을 기회로 협공해서 콩을 빼버려야겠다고 결심한 저도 발언을 했습니다.

"엄마, 저는 미니 밥솥에다가 제 밥 따로 할게요. 매일 콩 피해서 밥 푸기 힘들어요."

하지만 심혈관계 질환 가족력을 가지고 있는 저희의 건강을 염려하시는 어머니는 단칼에 기.각.하셨습니다.

"시끄럽고, 다들 밥들 드셔~"

저는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지만 이 작은 반항 시도의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콩이 싫다고 외친 저를 위해 어머니는 요즘 이걸 넣고 밥을 하세요.

 

 검은콩 하나 떼내려다 일곱가지 콩을 추가로 얻었어요.

 

이름도 모르는 콩들...
갈색콩도 싫고 초록콩도 싫고 노란콩도 싫고 병아리콩도 다~~~ 싫지만
특히 저거...
저 대왕콩이 밥그릇에 들어와 있는 걸 보면 신을 원망하고 싶어져요.

 

모듬콩이라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극악무도한 제품이 시중에 나와 있는 덕분에 저희는 요즘 이런 밥을 먹고 있습니다.

 

(google image)

콩을 피해 푸기도 너무 힘들어서 그냥 체념한 듯 무념무상으로 먹고 있으면
어머니는 "밥 좀 꼭꼭 씹어서 맛있게 먹어라" 하시는데, 

'흥~! 콩 따위, 씹고 싶지 않으니까요!'

 

입 속에서만 맴돈 그 말을 꺼내지 못한 이유는 또 불평을 했다간 이번엔 아마 열두가지 모듬콩의 지옥을 하사하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엄마는 우주최강
RESISTANCE IS FUTILE
저항은 부질없다


우리 모두 엄마 말씀 잘 듣고 즐거운 하루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