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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한국(MBC)이나 미국(NBC)나 방송사는 다 똑같나봐요.

by 이방인 씨 2012. 7. 31.

요즘 박태환 선수의 안타까운 오심과 판정번복 사건 때문에 한국인들이 모두 가슴 아파했는데요.
그 상황에서 박태환 선수의 인터뷰를 강행한 방송사도 엄청난 비난을 들었죠.
저는 미국에 살다보니 그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기사를 통해 박태환 선수가 인터뷰 도중 울먹였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정말 인터뷰가 뭐길래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을까 싶어서 방송사가 원망스럽더라구요.
그리고 기사에 달린 댓글들중에 이런 글들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 언론은 왜 이 따위야?

그 댓글을 보고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니, 미국 언론도 똑~같은 짓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4년전, 베이징 올림픽 때였죠.
미국에는 Lolo Jones (롤로 존스) 라고 하는 재밌고 귀여운 이름의 여자 육상선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외모 뿐만 아니라 실력도 좋아서 100M 허들의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죠.
올림픽 전에 치러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한데다가, 예선에서도 전체 1위의 기록으로 결승에 나섰거든요.
미국 언론들도 경기전부터 그녀의 우세를 점치면서 기대반 설레발반으로 중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저 역시 NBC 중계를 집에서 보고 있었죠.
사실 저는 허들에는 관심도 없는 데다가, 미국 경기보단 한국 경기가 더 보고 싶었지만 여기선 한국 경기 중계를 볼 수가 없으니 그냥 그거라도 틀어놓고 있었을 뿐인데요. ^^;;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롤로 존스가 금메달을 딸 것같이 흘러가더라구요.
그래서 속으로 '역시 미국은 육상이 강해...' 하고 있는데, 정말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정해준다는 속설을 입증할만한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100M 허들 결승경기, 3번 레인이 롤로 존스랍니다.

지금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영상인데, 유투브 이동 링크를 클릭해야 볼 수 있네요.  

전체 10개의 허들중 8개를 넘을 때까지만 해도 1등으로 달리고 있던 롤로 존스가 9번째 허들에 발이 걸려버린 겁니다!!
그리고 휘청거리다가 다시 안간힘을 쓰며 마지막까지 달리긴 했지만, 백분의 1초 단위로도 승부가 갈리는 올림픽 경기에서 휘청거리는 시간이면 엄청난 지체죠.
이미 뒤에 오던 선수들이 다 결승선을 넘고, 결국 롤로 존스는 7위의 성적으로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죠.
영상에서는 뒷 부분이 생략됐지만, 레이스가 끝나고 트랙 바닥에서 땅을 치며 절망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이 때 저도 보면서 이름도 모르고 관심도 없던 선수지만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그런데 미국 NBC 방송, 트랙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로 롤로 존스를 인터뷰하더라구요.

아니 방송국 너무하네. 어떻게 자국 선수가 저런 쓴 맛을 봤는데도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물을 수가 있냐...
그래 너 같으면 지금 기분이 어떻겠니?!!! 너랑 말하고 싶겠니??!!

하면서 혀를 찼습니다.
물론 심판 잘못이었던 박태환 선수와 달리 본인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지만, 그래도 4년의 노력과 꿈이 마지막 순간에 절망으로 바뀐 심정은 이루말할 수 없겠죠.
그런데 정작 롤로 존스는 놀랄만한 평정심으로 인터뷰에서, 제 기억으론 이런 요지의 말을 하더라구요.

허들이 발에 걸리는 경우는 일년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일생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나 허들은 결국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종목이다.
난 장애물을 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인터뷰를 끝까지 마치고 인터뷰어에게 작은 미소까지 지은 뒤 아무일 없었다는 듯 걸어가더라구요.
"와~ 진짜 멋지시네!" 하고 있었는데, 잠시 뒤에 다시 화면에 잡힌 그녀의 모습을 보고 저는 또 한번 너무 가슴이 아팠답니다.
카메라 앞에서는 당당하게 인터뷰하던 롤로 존스가 경기장 구석의 출구, 그러니까 카메라나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벽에 뒷 머리를 찧으며 펑펑 울고 있더라구요. ㅠ.ㅠ
그런데 또 이 망할 놈의 NBC 카메라가 그 먼 곳을 줌까지 당겨가며 찍어서 계속 울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뭡니까...
에휴~ 정말 그 때 '미국놈들 피도 눈물도 없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박태환 선수 인터뷰 논란을 보니 그 때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언론사들은 좀 더 관심을 끌만한 이슈를 위해서라면 인정사정 안 보는 것이 세계공통인가 싶더라구요. -.-^
아 참, 그런데 롤로 존스의 최근 사진 한 번 봐주세요!!

심상치 않은 유니폼에, 옆에 서 있는 남성분은 영국 경찰복장을 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롤로 존스가 만으로 꽉 찬 30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표 선발전을 통과하여 지금 런던에 있습니다~~
물론 베이징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롤로 존스는 좌절을 극복한 육상 영웅으로 미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요즘도 롤로 존스가 출연한 올림픽 기간 특별 맥도날드 광고도 줄곧 방영되고 있답니다. ^^
4년전의 한을 이번에 풀 수 있을지 미국인들 모두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때 경기장 구석에서 울던 그녀의 모습을 본 것을 계기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 올림픽에서 허들 경기를 놓치지 않고 보면서 응원하려고 해요.
이번엔 꼭 활짝 웃으면서 인터뷰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모두 올림픽 즐겁게 시청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여담이지만 여기 NBC 방송도 수영선수들 물에서 나오자마자 미친듯이 숨 헐떡이는데 마이크 들이대고 인터뷰 하더라구요. -.-;;
요즘 성적 안 좋은 펠프스도, 그 대신 잘 나가는 락티도 헉헉대며 인터뷰하는데 보는 제가 더 숨 차더군요.
그나마 물기라도 닦을 수 있었던 선수는 다행이고, 마이크 앞에서 물 뚝뚝 떨어지는데 인터뷰하는 선수도 있더라구요.
선수들이 대기실로 들어가버리면 생생한 인터뷰를 못해서 그런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