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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한국 방문한 교포가 지하철에서 겪은 따뜻한(?) 일화

by 이방인 씨 2013. 11. 7.

선량한 방문객 여러분, 모두 상쾌한 아침 맞이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원래 예정되어 있던 글이 있었는데 번개처럼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이 있어서 잊어버리기 전에 이 이야기 먼저 할까 합니다.
제가 미국에 이민 온 뒤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겪은 일이랍니다.
"이민 온 뒤 처음"이라니까 마치 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고국방문을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딱 3년 지나서였죠.

에게게~ 겨우 3년?   방구뽕


이라고 중얼거리시는 분 어디 계십니까?
모든 것이 낯선 외국에서 여행이 아니라 앞으로 평생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처음 3년 버티기가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저는 처음 1-2년 동안 향수병이 심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아졌거든요.
강산이 채 1/3도 안 변한 3년 만의 방문이었지만 혼자 모노 드라마 찍었노라 고백하겠습니다.

서울에 살고 계신 이모님 댁에서 신세를 졌기 때문에 서울 지하철을 원없이 타고 돌아다녔었는데 촌닭에게 지하철은 요지경이더구만요~
지하철에서 전도하는 분들도 많이 보고, 물건 파시는 분들도 많이 보고, 딱 한 번이지만 저보다 어려 보이는 여대생이 숙취 때문인지 지하철에서 속 시~원하게 토하는 것도 봤고 말이죠. (연세가 있으신 승객이 못마땅한 말투로 "학생, 학생이 토한 거 다 닦고 내려요!" 하시며 손수 휴지를 주셔서 여학생이 토마토처럼 터질 것 같은 얼굴로 본인의 토사물을 열심히 닦았어요. 지.못.미.)

 

(ko.wikipedia.org)

 

이런 "이~상하고 아~름다운 서울 지하철~ ♬♪♩"에서 저에게도 작지만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기 때문에 습하고 더운 날씨의 공격을 견디느라 주로 반바지나 스커트를 입고 다녔었는데 그 날도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어요.
서 있으면 그리 짧지 않은 길이지만 지하철 좌석에 앉으면 접히는 부분 때문에 자연히 위로 올라가잖아요?
들고 있던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긴 했지만 담요도 아니고 다리 전체를 가리는 건 불가능하죠.
하지만 21세기에 반바지 입는 게 눈총받을 일도 아니고 다리도 조신히 모으고 앉아 있었는데 제 옆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가 갑자기 제 무릎에 살~짝 손을 얹으시더니 제 쪽으로 얼굴을 돌리시고 소근소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근
"아가씨, 저기 반대편에 가서 앉아요
. 앞에 남자가 자꾸 쳐다보는 것 같네."


아마 제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남자 승객이 이쪽을 자꾸 본 모양인데 아주머니는 그게 의심스러우셨나 봐요.
아주 솔직히 말하면 저는 속으로 '거리에 스커트 입고 다니는 여자들이 넘쳐나는 시대인데 뭐 신기한 구경이라고 지하철 안에서 여자 다리 쳐다보겠어요...' 했지만 아주머니가 일부러 말씀해 주신 거니까 저도 소근소근 "감사합니다." 하고 반대편에 가서 앉았죠.
작은 목소리로 몰~래 알려주신 아주머니가 귀여우셔서 한 5분쯤 빙그레 웃다가 이내 감상에 젖었습니다.
왜냐구요?

아~ 내가 정말 한국에 돌아와 있구나...!



공공질서를 해치거나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타인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개인주의의 나라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방금 벌어진 거니까요.
만약 제가 미국 지하철을 탔고 반대편에 앉은 남자가 실제로 제 다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이 있었다고 해도 미국 아주머니는 제게 말해주지 않았을 거예요.
혹시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듣는 사람이 불쾌하게 여겼을 수도 있구요.

흔히 한국 아주머님들에게는 특유의 "오지랖"이 있다고들 하죠?
이 일화도 어찌 보면 그 아주머니의 오지랖이라고 생각할 분들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제게는 무척 정겹게 느껴졌답니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생판 모르는 여학생의 다리를 누가 쳐다보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넘길 수도 있는데 아주머니는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라도 되는 듯 제 무릎에 손을 얹으며 말씀해 주셨다니까요!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오늘처럼 불현듯 떠오를 정도로 인상 깊었던 상냥한 일이랍니다.

저는 미담이라고 생각해서 글을 써 봤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아름다운 하루 보내세요~

추신 - 답글이 너무 많이 밀리고 있죠? 여기 시간으로 오늘 오후 6시부터 맹렬히 쫒아갈게요. 서운해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