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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한국 남자와 결혼한 미국 여자들의 고충

by 이방인 씨 2013. 1. 9.

오늘은 미국에서도 여전한 한국 문화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 합니다.
미국에서도 한국계 미국인 (Korean Americans) 은 되도록이면 같은 한국계끼리 결혼을 하고 타인종/민족과의 결혼률이 낮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건 한국 부모님들이 아무래도 말과 문화가 통하는 한국 며느리/사위를 선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시 사랑에는 당할 재간이 없는지 제 주변에도 그 벽을 뚫고 국제결혼한 커플들이 있습니다.
국제결혼이라는 게 어느 커플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유독 한국 남성들과 결혼한 미국 여성들이 털어놓는 고민이 있더라구요.

 

첫번째 - 자식까지 있는 아들을 언제까지 아기 취급하실 건지?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벌써 5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 미국 여성 친구가 있습니다.
일부러 연락하는 사이도 아닌데 우연히라도 만나면 한 자리에서 1-2시간은 기본으로 수다를 떠는 친구죠.
그런데 이 친구가 이토록 저에게 할 말이 많은 이유가 바로 한국인 시어머니와의 갈등 때문입니다.
저를 만날 때마다 매번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죠.

 

내 얘기 좀 듣고, 이게 한국에서는 정상적인 건지 좀 말해줘~~

 

친구에게는 기절초풍할 이야기지만 제가 들어보면 한국에서는 정상 범주에 들 만한 이야기라는 것이 함정이랍니다. ^^;;
이 친구의 가장 큰 불만은 시어머니가 서른도 넘은 아들을 여전히 품안의 자식 취급을 한다는 것이죠.
친구 말에 따르면 시어머니의 인생 최대의 관심사는 오로지 아들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랍니다.
아들이 벌써 아버지가 된 지도 5년이 넘었건만 시어머니는 요즘도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를 하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네요.

 

아들, 오늘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챙겨입고, 담배는 몇 가치 이상은 피지 말고, 그리고 집에서 야채 좀 갈아 마시고, 기타 등등....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이게 그리 큰 일은 아니죠.
하지만 이 미국인 며느리는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이런 시시콜콜한 안부전화를 이미 다 장성한 아들에게 자주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죠.
전화 뿐만 아니라 얼굴을 보고 만날 때는 더 심하시다고 합니다.
아들의 얼굴을 보고 요즘 살이 쪘네 빠졌네, 밥은 먹고 다니네 마네 부터 시작해서 옷은 또 이게 뭐냐까지 아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지나칠 정도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며 제게 한탄을 하더라구요.

 

그건 그냥 습관 같은 거야. 너무 갑갑하게 생각하지 말고 모른 척 그러려니 해.

 

사실 저희 집에도 서른 넘은 아들과 그 아들을 마치 3살짜리 아이처럼 챙기는 낙으로 사시는 어머님이 한 분 계셔서 저는 별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

 

두번째 - 아들이 은행인 줄 아시나봐!

이 집 며느리는 그야말로 폭발할 지경이었는데요.
가장 큰 문제는 아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시는 시부모님이었습니다.
자녀들의 대학 학비는 물론이고 결혼비용까지 대주시는 한국 부모님들은 그 때문에 노후 준비를 못 하셔서 말년에 자식들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는 경우가 있죠.
또한 사정이 그러하면 대부분의 한국 자식들도 부모님께 매달 생활비 일부를 지원해드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구요.
하지만 부모 자식간에도 철저한 경제적 독립의 전통(?)을 지켜온 미국인들에게는 이런 한국의 문화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답니다.
(요즘은 미국 부모들도 손주들의 대학 학비까지 지원하기도 하는 등, 그런 전통도 변하고 있습니다만.)

이 친구의 시부모님은 아들에게 큰 돈을 받으시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비 원조를 받고 계신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그건 이미 결혼 전부터 해오던 일이라 이 친구도 의아했지만 문제삼지 않았답니다.
남편이 설명한대로 '문화 차이' 라고 납득하고 넘어갔다는군요.
하지만 다달이 드리는 생활비 말고도 때때로 차를 바꾸고 싶다시거나, 집안 소파를 새로 사고 싶으시다며 넌지시 아들에게 압력을 가하셔서 효자인 한국 남편은 그 때마다 형편껏 돈을 드린다고 하네요.
예전 글에 한번 쓴 적이 있지만 부모 자식간에도 더치페이를 하는 미국인데 며느리가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과 다툼이 있지만 남편은 그저 '이건 한국 문화다!' 라고 선을 긋기만 해서 많이 답답하다고 하더라구요.

 

세번째 - 아이는 혼자 낳았나요?

이 친구는 아시안계 미국인인데 시부모님의 육아에 대한 생각 때문에 힘들다고 하네요.
아이는 엄마가 돌보는 것이라며 남편은 힘드니까 퇴근 후에나 주말에는 쉬게 하라고 하신대요.
시댁을 방문하거나 혹은 시부모님이 집에 찾아와도 며느리에게만 아이를 맡기고 남편은 안락하게 휴식을 취하게 배려하신다는군요.

 

아이는 부부 공동 책임이야. 이 애가 어떻게 나 혼자만의 아이야?

 

결혼을 안 한 제 입장에서는 이건 시부모님 탓할 것이 아니라 남편을 교육시켜야 하는 것 같은데요.
솔직히 시부모님이야 손주도 이쁘지만 아들이 더 중하실테니 일 하느라 피곤해 보이는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편히 쉬게 하고 싶으시겠죠.
그럴 때 부모님이 쉬란다고 정말 부인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남편... 조금 얄밉지 않나요?
한국에서도 고부갈등을 해결하려면 남편의 현명한 대처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국제결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아마도 본국에 계신 분들은 "아니 외국 가서 사는 사람들도 저렇게 똑같아?" 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
오히려 오래전 이민 오신 1세대 부모님들 중에는 지금 한국에 계신 어르신들보다 훨씬 더 전통적인 사고를 고수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흔히들 이민 오면 미국의 시계는 돌아가지만 본국의 시계는 멈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지금 현재 2013년의 미국을 살아가지만 그 분들 머리속 한국/한국인에 대한 기준은 몇 십년전 그 시절에 멈춰있다는 뜻이죠.
인터넷 없이 못 사는 젊은 세대인 저조차도 2013년의 한국은 낯설게만 느껴지고 아직도 제가 떠난 1999년의 한국을 기억하고 있으니 연세 많으신 분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아마도 그래서인지 미국 며느리를 맞으셨어도 쉽게 태도를 바꾸시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또 반대로 미국 며느리들이 복 터지는 경우도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아들 결혼할 때 집 사주는 한국 부모님들이 미국에도 있는데 이럴 때 평범한 미국 며느리들은 엄청난 '행운' 이라고 생각하죠.
또한 손주들을 봐주시는 시부모님, 때때로 아들에게 돈 보태주시는 부모님 등등, 미국인과 결혼했다면 누리지 못했을 축복들도 있으니 다 일장일단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은 한국인과 국제결혼한 미국 여성들의 애로사항을 전해드렸는데요.
"사랑은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도 하듯이, 국제결혼에 골인한 것이 이미 사랑의 기적인 셈이니 제 친구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국제 결혼 커플 분들이 문화 갈등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
여러분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일부러 한국 시부모님을 비판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주제를 정해 쓰다보니 오늘은 '고충' 에 대해 쓴 것이구요. 반대로 한국 남자와 결혼한 미국 여자들의 '행복' 에 대해서도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