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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인도 부잣집 친구가 미국인 상사의 내숭을 날려버린 사연

by 이방인 씨 2020. 1. 9.

즘 제 글에 종종 등장하는 인도 출신 동료는 사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인도 부잣집 큰 딸이랍니다 재벌까지는 아니지만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건 확실한 친구죠.  그 친구의 부모님은 자식 셋을 모두 영미권에 유학보낸 것은 물론이고 집과 차, 그리고 매달 두둑한 용돈까지 지원해 주십니다. 세 자녀들 중 장녀인 제 동료는 미국으로 유학와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해서 눌러앉았는데 앞으로도 인도로 돌아가지 않을 계획이라 합니다.

그녀가 사무실에서 유명인사인 이유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돈 씀씀이가 어마무하기 때문이지요. 평범한 미국인들 중에는 유럽산 명품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저 역시 어디서 듣고 들어 이름은 알아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동료는 잡지에 나올 것만 같은 명품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감고 다닙니다. 모두 같은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서로의 월급 사정을 대충은 알고 있는 동료들은, 

"저 씀씀이는 도저히 회사원의 월급으로 감당할 수가 없음이야~!"

하며 놀라는데, 그녀 역시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그런 여유로운 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순순히 인정하곤 합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왠지 그 동료가 사내에서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은데, 사실은 정반대랍니다. 그 친구는 굉장히 착하고 밝아서 모두가 좋아합니다. 명품만 사는 것과는 별개로 그것에 대해 자랑을 하거나 과시하지 때문이죠. 그녀는 재력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왔기 때문에 그런 물건들을 쓰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거예요. 비싼 물건을 사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 업신여기지도 않고 돈 많다고 허세를 부리지도 않기 때문에 주변 동료들과 사이좋게 어울립니다.

그런 성격 때문에 저 역시 평소에는 그녀가 재력가 집안의 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데 간혹 그녀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새록새록 느끼게 됩니다.

"아~ 난 우리 부모님 말에 꼼짝 못한다니까.
마음에 안드는 짓을 했다가는 부모님이 나한테 물려주실 유산을 적게 책정하실 수도 있으니까 말야."

유산이 적게 책정될까 걱정이라... 평범한 집 자식들은 부모님 노후 준비되어 있고, 돌아가실 때 빚만 물려주시지 않으면 감사하지 않나요? 하지만 그녀에게는 유산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랍니다. 동생들을 끔찍히 아끼면서도 자기가 부모님 눈 밖에 나면 자기 몫의 유산이 동생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며 신경을 쓰거든요. 그래서 결혼도 꼭 부모님이 소개해 준 사람과 해야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렇게 다른 세상에 사는 그녀가 얼마 전에 새로운 차를 샀습니다. 원래 그녀는 굉장히 좋은 모델의 새하얀 벤츠를 몰고 다녔는데 (물론 부모님이 사주셨죠.) 3년이 지나 지루해졌다며 새로운 차를 원하더라구요. 며칠을 여기저기 보러 다니는 것 같더니 한 1주일 전에 새 차를 몰고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새까만 아우디의 2020년형 고급세단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은 '아, 그렇구나. 이번에는 아우디를 샀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이 날 아주 웃긴 일이 있었답니다.

사진은 온라인에서 찾은 이미지입니다.

저희 회사의 본부장님, 일전에 언급한대로 초고속 승진남이자 차도남이십니다. 일에 있어서만 철두철미한 것이 아니라 평소 회사에서 매사 신중한 언행을 보시이는 분이죠. 이 분은 그 흔한 남의 험담도 한 번 한 적 없고, 평소 모범적이지 않은 말은 전혀 하지 않으십니다. 워낙 말을 조심하시는 분이라 다른 사람들도 본부장님 앞에서는 고운 말만 쓰죠. 본부장님이 저희 회사에서 근무하신지 2년이 넘었는데 단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니, 다들 원래 타고난 성격이 교과서같은 분인가보다 했죠.

그런데!! 그 인도 동료가 멋진 아우디를 몰고 온 날 말이죠. 퇴근 후 동료들이 주차장에 모여 새 차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뒤늦게본부장님도 퇴근하려고 문 밖으로 나서다가 그 차를 보신 겁니다. 그리고는,

DAAAAA~~~~NG 
Is that your car?

Dang은 영어 비속어인 Damn의 완화된 표현으로, 욕을 하고 싶은 상황에도 쓰지만 감탄사로 쓰이기도 합니다. 미국 영화를 보면 주로 익살스런 흑인 캐릭터들이 이 표현을 많이 쓰죠. 상황에 맞게 의역하자면 "~ 씨댕, 이거 네 차니?" 쯤 될까요.

이 말이 본부장님의 입에서 나왔을 때, 저희 모두는 약 5초간 눈만 꿈뻑꿈뻑하다가 박장대소하고 말았습니다. 2년간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았던 본부장님의 완벽한 커버가 아우디 한 방에, 그것도 이렇게 적나라하게 벗겨지고 말았으니까요. 그 상황이 너무 웃겨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웃어제끼고들 있는데, 본부장님이 아뿔사! 하고 쑥스러우셨는지,

"That's a very nice car."

라고 한마디 하시더니 황급히 자신의 차로 걸어가셨습니다.

저희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죠.


1. 본부장님은 선천적으로 프로그램된 모범 로보트가 아니라 각고의 노력으로 지금의 이미지를 완성하신 것이라는 사실

2. 본부장님의 약점은 아마도 좋은 차라는 사실


그 다음날부터 본부장님은 평소의 차도남으로 돌아가셔서 아무일 없다는 듯 행동하셨지만, 저는 일주일이 지난 아직까지도 주차장에서 그 검은 아우디만 보면 본부장님의 맛깔난 Daaaaa~~~~ng 이 생각납니다.

여러분, 이미지 쌓아올리는 건 장기간의 각고의 노력인데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네요. 그냥 생긴대로 자연스레 살아야겠어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