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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이민 14년차, 나도 반쯤 미국인 됐구나 싶을 때는?

by 이방인 씨 2012. 12. 8.

한국 방송을 보고 있으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특히 명절특집 노래자랑이나 아침 토크쇼에 자주 나오는 것 같더라구요.
그 때마다 매번 빠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이겁니다.

 

언제 "아~ 이제 나도 한국사람 다 됐구나~" 하고 느끼세요?

 

그러면 대답은 고향음식보다 한국음식이 더 입에 맞을 때라던지, 한국말이 불쑥 튀어나올 때라던지 정도구요.
저도 간혹 미국음식이 더 맛있을 때가 있고, 간혹 영어가 불쑥 튀어나올 때도 있어서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나는 과연 언제 내가 미국인화 하고 있다고 느낄까?

 

첫번째 - 빠른 시일내에 고기 못 먹으면 죽을 것 같을 때

미국인들 중에는 이런 하루의 식단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침: 소세지 혹은 베이컨과 계란

점심: 간단하게 맥도날드 햄버거

저녁: 스테이크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육식동물의 하루죠? ^^;;
육식을 상쇄하기 위해 사이드로 샐러드 따위를 같이 먹지만 결국 주 메뉴가 고기라는 것은 변함없죠.
한국인의 주식이 쌀밥이라서 삼시 세끼 쌀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가 배운대로 미국인의 주식은 고기와 감자니까 하루 세끼 고기를 먹는다고 해도 특별할 것은 없죠. 


 

세계 각국의 1인당 연간 고기 소비량입니다.
한국은 1인당 49-61kg 인 반면, 미국은 그 2배 이상인 103-137kg 이네요.

한국의 대표 음식들도 고기 요리가 많아서 한국인들도 육식을 즐기는 편인데 미국인들과의 차이를 놓고 보니
미국인들이 얼마나 고기를 많이 먹는지 알 수 있죠?

 


한국인들 중에도 다른 음식을 아무리 먹어봐야 주식인 밥을 먹지 않으면 먹은 것 같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듯이 미국인 중에도 고기에 금단현상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식단이 어그려졌다고 느끼고,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저도!!
어느새 고기에 중독되버리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워낙 빵 종류를 좋아하는 탄수화물 집착형 인간이라 고기보다는 탄수화물을 좋아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일주일에 2-3번은 꼭 고기를 먹는 것 같아요.
횟수가 문제가 아니라 며칠간 못 먹으면 고기가 그렇게 당길 수가 없어요. ^^;;
정말 내일 당장 못 먹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식욕이 도는 거예요.
이러다가 한 10년 지나면 미국인들처럼 세상엔 고기 말고는 먹을 게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예요. ㅠ_ㅠ

 

두번째 - 100년 된 건물보고 입 헤~ 벌리고 있을 때

예전에 미국 친구들과 소풍 비슷하게 놀러간 적이 있는데요.
놀러간 지역에는 오래된 저택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들 방문하고 있었죠.
오래전 그 지역에서 살았던 부자의 저택이라고 하는데 뭐라던가.... 한 102년 정도 됐다고 하네요.
100년이 넘었다는 말에 친구들이랑 저랑 다들 입을 벌리고 "오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만 생각을 해봤죠.

 

잠깐...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경주로 소풍가서 천마총 보고 왔는데...?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고 우리 고향에 있는 절도 신라시대 때 (서기 700년인가) 창건됐다고 그랬는데...?

 

근데 나 왜 얘네들하고 같이 "오오~~" 하고 있는거야??????????

미국에 살다보면 "유장함" 에 대한 기준이 엄청 수그러듭니다.
이 사람들은 100년 넘은 집에서는 귀신 나오는 줄 알아요. ㅋㅋㅋㅋㅋ


 


100년 됐다고 헤에~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참... 귀엽기도 합니다.

 

요런 요런.. 새파랗게 어린 (나라에서 태어난) 것들... ㅎㅎㅎ

 

세번째 - 밖에서 누군가 가까이 붙으면 "이 사람 왜 이래???" 하고 생각할 때

땅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라서 사람들간의 물리적 거리인 Personal Space 가 중요하다고 제가 여러번 언급했었죠?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야 불가능하지만 저희 지역처럼 땅이 널널한 곳에서는 밖에 나가서 길을 걷거나 줄을 설 때도 보통 성인 2명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간격을 벌립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와서 이 Personal Space 룰을 몰라서 본의 아니게 미국인 아저씨에게 불편을 끼친 일화도 한번 쓴 적이 있는데요.
지금은 저도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간혹 밖에서 가까이 붙어있는 사람이 있으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아~ 이 사람 도대체 왜 이래? 줄 하루이틀 서 보나? 아마추어 같이 왜 이래??

 

 

이런 생각을 하다가 화들짝 놀란답니다.
14년전 제가 실수한 건 다 어디로 잊어버렸느냔 말이죠. ^^;;


슬슬 스크롤이 압박을 시작하니 여기서 줄일까 하는데 섭섭해서 기타를 몇 가지 적어봅니다.

메이크업하고 옷 차려입고 나온 여자를 보면 "이 여자 왜 이렇게 오버하는데?" 라는 생각들 때

날이 갈수록 글씨가 엉망진창이 될 때

집에서 혼자 문에 부딪혀놓고 영혼없이 Excuse me 할 때

열 받으면 가운데 손가락이 멋대로 꿈틀대려고 할 때

너무 유창한 본토 한국발음으로 "삼성" 이라고 말하는 게 왠지 어색할 때

이~상하게 일반상식이 줄어드는 것 같을 때

이상입니다~~
여러분 모두 즐거운 토요일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