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이게 뭐야, 이민와서 완전 망했어! 1,2,3

by 이방인 씨 2012. 5. 15.

오늘은 지난 포스트 2012/05/12 - 내가 이민오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 1,2,3 에서 예고한 대로 이민와서 완전히 "망했구나, 망했어" 라고 느낀 순간들에 대해 푸념을 해볼까 합니다.

 

첫번째 - 이제 갓 청동기 시대로 접어든 미국의 인터넷

느립니다...........느려요..................-.-^
제가 방금 제 인터넷 커넥션을 확인했더니 스피드가 54.0 Mbps 라고 써 있네요.
물론 집에 컴퓨터 3대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이런 주제에 이름이 High Speed Internet Service 입니다.
이것보다 빠른 속도의 인터넷은 Premium Service 인데요.
저희도 물론 프리미엄을 신청하긴 했지만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현재 고객님이 살고 계신 지역에는 프리미엄 서비스망이 깔려있지 않습니다.

 

으음.....이건 무슨 지옥의 농담이람???
워낙 땅이 거대한 미국에서는 왠만큼 인구가 밀집된 도시가 아니라면, 넓은 면적을 모두 커버하는 서비스망을 설치, 관리하는 비용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땅만 넓고 인구가 적은 지역에 설치해봤자, 장사가 안되는거죠.
제가 사는 소도시가 바로 그런! 돈 안되는 지역이라 프리미엄 서비스는 아예 도입조차 안 된거랍니다.
그런데 제가 늘 소도시 소도시 하는 저희 동네도 전미국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시골도 아니랍니다.
농사 짓는 주들이 몰려있는 미국의 중부지역에는 가도가도 끝 없는 옥수수밭만 펼쳐진 지역도 많고, 10시간을 운전해도 인가 하나 없는 광야만 있는 지역도 많습니다.
그러니 미국 전체를 본다고 치면, 대도시들을 제외하곤 거의 인터넷 청동기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제가 몇 년전에 한국에 나갔을 때 친척 동생이 영화 한 편을 20분도 안되서 받는 것을 보고 그 옛날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의 약 27배의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만약 영화를 다운로드 한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다면 약 3-4일을 후에야 파일을 열어볼 수 있답니다.
요즘은 아예 포기하고 살아서 인터넷 서비스 업그레이드 문의전화도 안 한지가 1년이 넘어요. ㅠ.ㅠ

 

두번째 - 인간의 놀라운 적응 능력

처음 이민오면 대부분 스트레스로 살이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 서서히 적응되고 나면 그 때부턴 미국인들에겐 질 수 없다결연한 자세로 살이 찌게 됩니다.
미국이 세계 최대 비만국이라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텐데요.
미국인들이 살이 찔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쓴 적이 있습니다. 2011/10/14 - 미국 가면 살 찌는 이유?!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저희 가족 모두 살이 많이 쪘는데요.
특히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너무 말라 난민이냐는 소리까지 들었던 저희 오빠가 미국 생활 13년만에 25킬로가 쪘답니다.
지금은 누군가 오빠를 잡아먹고 흡수한 것 같은 모습이 되버렸지요. ㅋㅋㅋ
그나마 가장 살이 적게 찐 분이 저희 어머니이신데요.
그런 어머니 마저 오랜만에 한국에 나갔더니, 어머니 친구분들께서 같이 식사하시다가

 

어머, 얘 너 못 본 사이에 먹성이 많이 좋아졌다.

 

네. 그렇습니다.
기본 1인분의 양이 어마어마한 미국에 오래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 양이 커지고 위는 늘어만 갑니다.
그리하여 서서히 세계 최대 비만국 거주민으로서 위용을 갖추게 되는 것이죠.
2년전 쯤 사촌동생이 6개월의 미국 인턴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오랜만에 딸을 본 저희 이모가 "연수는 안하고 살만 쪄서 왔냐며" 귀국 첫 날부터 다이어트를 시켰다고 하더라구요. ㅋㅋ

 

세번째 - 짬뽕 이중 언어 생활

L.A나 뉴욕처럼 한인 인구가 많은 곳을 제외하면 교포들이 한국말을 쓰는 환경은 집안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집에서 가족들과 주고 받는 대화라는 것 또한 "밥 먹었냐, 오늘은 뭐 했냐" 같은 간단한 주제가 대부분이구요.
학교 얘기, 일 얘기, 정치 얘기, 경제 얘기, 등등 밖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수 밖에 없는데요.
그러다보니 저 같은 1.5세 중에는 이도 저도 아닌 이중 언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중년이 되서 이민 오신 1세대 분들이야 한국말이 더 편하시고, 여기서 태어난 2세대야 물론 영어가 제 1언어죠.
그런데 저처럼 어중간한 시절에 이민 온 1.5세대들은 집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쓰지 않으면 대화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도 미국에서 배운 공부나 문화 이야기를 할라치면 한국어 어휘가 생각이 잘 안납니다.
또 밖에서 미국인들과 한 얘기를 집에 와서 부모님께 옮기려고 해도 100% 한국말만 사용해서는 말이 이어지지 않더라구요.
얼마 전에도 어머니께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두 개의 다른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하니까 엄마가 웃으시면서 "두 사람이면 두 사람이지 두 개의 다른 사람이 뭐야" 하시더군요.
제가 영어에서 쓰는 two different individuals 를 무의식적으로 "두 개의 다른 사람" 이라고 말하고 있더라구요.
초등학교 시절 이민 온 제 사촌동생도 어느 날 얘기하다가 "요즘 다이어트 하는데 너무 고독해" 하길래, "왜, 혼자만 못 먹어서 고독해?" 하고 물었는데 서로 뜻이 안 통하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사촌 동생은 "혹독하다" 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걸 "고독하다" 로 알고 있었던 거죠.

이렇다보니, 한국말을 하다가도 중간에 영어 단어들이 들어가 있는 문장들을 내뱉게 되네요.
그러면 안된다고 늘 생각하지만, 신경쓰지 않고 편안하게 말 하다 보면 어느샌가 또 짬뽕 이중 언어로 말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저희 오빠랑 저랑 대화하는 꼴을 녹음했다가 들어보면 참 배꼽 빠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둘이서 말하다가 느닷없이, "근데 그게 한국말로 뭐지??" 번갈아 가면서 그러거든요.
한국말 실력이 나날이 후져지는 것 같아 속상한데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 생활 하시는 분들도 다들 공감하시더라구요.
게다가 언젠가 TV를 보니 로버트 할리도 영어를 다 까먹어서 가끔 영어로 말하다가 말문이 막히고 한국말이 튀어나온다고 하더군요. ㅋㅋㅋ
솔직히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고 약간은 안도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네요. ^^;;

오늘은 미국 와서 망했다고 느끼는 순간들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한국에 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 드셨나요?
상쾌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