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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thing & Everything

[유럽여행] 식스팩 장착한 꽃미남 천사가 유혹하는 바티칸을 가다

by 이방인 씨 2013. 9. 29.

때는 2003년 여름, 유럽대륙에 200년 만의 폭염이 닥쳤다던 그 여름! 저는 유럽에 있었습니다.
<촌닭 딱지를 떼어보자> 운동의 일환으로 이방인 씨와 고향 친구 P 양이 배낭여행길에 오른 것이지요.
그리하여 첫 여행지부터 무려 이탈리아 로마!

시작부터 로마로 들이대다니, 아무래도 이 시골 처자들... 급하게 유럽스러워지고 싶었나 봅니다.

드디어 이딸~리아에서의 첫 날은 밝아오고, 들뜬 마음과는 달리 저희는 여행의 시작을 '욕 바가지'와 함께 했답니다.
유스호스텔의 6인실에서 묵었던 저희는 시차 때문에 잠도 안 오고 해서 아침 6시 30분 경에 기상해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같은 방에는 호주에서 혼자 여행을 왔다는 40대 초반의 여성 분이 자고 있었는데 그 분은 여행 일정을 다 마치고 로마가 마지막이라고 하시더군요.
6시 반에 일어나서 한 7분 쯤 바스락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그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서는 버럭버럭 화를 내는 게 아닙니까.

"왜 이렇게 일찍부터 일어나서 부산을 떨고 그러는 거야? 다른 사람이 자고 있는 거 안 보여? 새벽부터 수선떨지 말라구!"

 
헐~ 새벽이라니... 배낭여행은 원래 부지런함이 생명 아니었던가?
6시 30분씩이나 됐는데 새벽이라니...
게다가 중국에서 왔다는 여행객 2명은 벌써 짐 싸서 나갔고 자고 있는 사람은 아주머니 혼자 뿐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쪽이 2명이었으니까 맞장뜨면(?) 이길 수 있었는데 그 때 저희는 어리바리한 이방인 씨 1명과 고향에서 멍 때리는 것으로 이름을 날렸던 P 양 1명 뿐이라서 그냥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죠.
사과를 했는데도 그 분은 한동안 어찌나 히스테리컬하게 신경질을 내던지, 저희는 서둘러 숙소 밖으로 나와서 둘이 계단 앞에 쭈그려 앉아 울까말까 했었답니다.
그 후로도 어쩔 수 없이 같은 방을 하루 더 썼던 그 아주머니의 이름은 Nicole이었는데 그 날 이후로 저와 P 양에게 그 이름은 아주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재수없는 사람이나 마음에 안드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 저희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아놔~ 이 사람 정말 니콜스럽다.
아니 이게 왠 니콜맞은 상황이지? 
아오~ 오늘 완전히 니.콜.이.다.

 

하면서 여행 내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야무지게 씹어주었지요.
하지만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저희들은 니콜이 왜 그렇게 예민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배낭여행 막바지에 들어서니 6시 30분 기상이라는 건 거의 실미도급 훈련이더라구요.
너~무 피곤한 겁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 첫 날 니콜을 원망했던 저희들도 나중에는 아침 10시 기차를 놓칠 정도로 늘어져버렸으니까요.

어쨌든 아침식사보다 먼저 욕을 배부르게 먹어 더부룩한 속으로 바티칸으로 향했습니다.
'바티칸'하면 역시 이거죠!

 

카톨릭의 총본산, 산 피에트로 대성당입니다.
예수께서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었기 때문에
대성당과 그 앞 광장은 열쇠 모양으로 설계되었다고 하네요.
이 멋진 사진은 제가 찍은 것이 아니라 광장 앞 엽서 판매대에서 고른 것이랍니다.


이 성당의 규모가 정말 허걱! 소리가 나올 정도로 크더라구요.
1년 내내 여행객들도 붐비는데다가 마침 제가 방문했던 날은 교황께서 특별 야외미사를 보셨기 때문에 광장에 군중들이 모여 있었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찍은 사진인데요.
광장의 열쇠 구멍 부분이 비쭉 들어와 대성당 정면을 반 이상 가린 구도를 보니
제가 광장 오른쯕 끄트머리 구석에 박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네요.

사람은 많고 신께 다가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성당 앞에 빨간 천막이 세워져 있는 것 보이세요?
여러분이 만약 몽고인의 시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아래 앉아 계신 요한 바오로 2세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대성당의 압도적인 외관과 엄청난 인파에 당황하고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성당 내부와 바티칸 박물관을 구경했습니다.
성당내부는 바깥에서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광활하더라구요.

 

(touritalynow.com)

저는 이런 거대한 제단은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죠.

 

덕분에 희대의 방향치인 저는 어디서 뭘 보고 왔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서 곧 죽어도 해야 한다는 일 한 가지와 봐야 한다는 것 한 가지는 보고 왔습니다.

(commons.wikimedia.org)

성당 내부에 있는 베드로 동상인데
이 동상의 오른발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있습니다.
덕분에 동상의 발을 만지려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
하루에도 수만명이 만지고 지나간 베드로의 발은 이렇게...

 

(saintpetersbasillica.org)

닳고 닳은 발, 언젠간 아예 사라질 것 같죠?


꼭 해야 할 일은 베드로님의 발을 문대는(?) 것이고 꼭 봐야 할 것은 여기 있습니다.


(Wikipedia.org)

현존하는 최고의 조각 작품이라는 평을 듣는 미켈란젤로의 Pieta입니다.

 

사실 저는 Pieta를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찾아간 것이 아니라 그 넓은 공간에서 헤매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 군중의 무리에 갇혀 제 의지와 상관 없이 그들이 움직이는대로 끌려가다가 정신을 차리니 피에타 앞이더라구요.
(인간의 파도에 휩쓸려 표류하는 이 현상은 얼마 후 루브르 박물관에서 또 한 번 일어나게 됩니다.)

Pieta란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라는 뜻으로 목숨을 거둔 예수를 안고 슬픔에 잠긴 마리아를 묘사하는, 중세 기독교 예술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이 대작을 완성했을 때 그는 겨우 24살이었다고 하는데 조각이 공개됐을 당시 일각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보다 더 젊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반박했다는군요.

"마리아처럼 성스러운 동정녀가 평범한 여인들처럼 늙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살았다는 미켈란젤로니까요.
그리고 아마 저런 말이 나온 더 중요한 이유는, 그는 평생 여.자.를. 몰.랐.대.요.

모르는 게 약!   오키


세계 최고의 성당이라는 산 피에트로에 가서 어찌 이것만 보고 왔겠습니까마는 구경한 예술품들을 하나 하나 늘어놓자면 한도 끝도 없을 뿐더러 곱게 내부에 전시되어 있던 예술품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정작 밖서 보고 왔기에 그것을 소개할까 합니다.

 

대성당과 바티칸 박물관 주변에는 말이죠,
요렇게 맵시있는 옷을 차려입은 꽃사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바티칸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병들이죠.


지금은 유명한 관광국이자 시계와 비밀은행으로 유명한 스위스이지만 중세 시대의 스위스는 타국에 용병을 수출하여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끼리 전쟁을 할 때도 스위스 용병들이 싸웠을 정도로 말이죠.
바티칸 역시 스위스 근위대와 계약을 맺었고 뉘신지 모르지만 그 은혜로운 결정을 내린 윗 분 덕분에 옷으로 가렸으나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저 사내의 흉근과 대퇴근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죠.

떡 벌어진 어깨, 느껴보고 싶은 가슴, 왠지 금욕적으로 조인 듯한 허리, 달리기를 시켜보고 싶은 허벅지까지!

좋은 육체로다~ 


참고로 저 바람직한 근위대의 제복 역시 미켈란젤로님이 디자인하셨다고 합니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한참을 구경하고 나왔더니 배가 고프더라구요.
갈 길이 바쁘니 식사보다는 요기를 할까 생각했는데 이탈리아의 먹거리라고 한다면 역시 젤라또죠!

 

화려한 젤라또 가게를 자주 볼 수 있어서 하나 사 먹었는데 별다른 기억은 없지만
일기에는 이 한 줄적혀 있었습니다.

젤라또: 2.60 유로

그 때의 저는 젤라또 맛은 잘 몰라도 지출기입은 확실히 하는 아이였나 봅니다.


(아마도) 맛도 없는 주제에 2.6 유로씩이나 했던 젤라또를 먹으면서 바티칸 성당과 지척에 있는 천사의 성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Wikipedia.org)

바티칸에 전란이 있을 때마다 교황의 요새로 사용됐다는 이 견고한 성은
제일 꼭대기에 있는 대천사 미카엘의 청동상 덕분에 천사의 성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니까 저 천사를 보려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건데요...
폭염 속에 헉헉대며 올라가려니 죽을 맛입니다.
가이드북에 나온 내용을 보니 로마에 흑사병이 돌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한 적이 있는데 당시 흑사병 퇴치 기도를 하고 있던 교황이 이 성을 지나면서 돌아보니 성 위에 대천사 미카엘이 칼을 칼집에 꽂고 있는 환영이 나타났고 그 후 흑사병이 물러갔다고 합니다.
그것을 기리기 위해 교황이 본 그대로 칼집에 칼을 꽂아넣고 있는 미카엘 동상을 세운 것이죠.

전설이고 뭐고 헉헉거리며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는 입에서 고운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분을 보고 난 뒤 놀랍게도 육신의 고통이 잦아들고 강 같은 평화가 찾아왔답니다.

 

미카엘님이 이런 몸매를 가진 분이라는 걸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게다가 천사들이 상체에는 날개만 걸친다는 황홀한 사실요.
역시 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저는 이 날 이후 결심한 것이 하나 있어요.

언제 죽더라도 기필코 천.국.에. 가.야.겠.다.

거긴 저런 ↑ 존재들이 나발 불고 아..아니, 나팔 불고 노래한다는 곳 아니겠어요?
죽어서라도 호강을 하고야 말겠다.

 

식스팩 장착하고 상의탈의한 꽃미남 천사가 '착한 일을 하면 내가 더 좋은 구경을 시켜주지~'하며 유혹하는 곳!
뭔데? 뭔데? 더 좋은 구경이 뭔데?! 

바티칸은 진정 성스러운 도시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착한 일을 하여 천사님의 전부를 볼 수 있.. 아... 아니, 천사님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맑.고. 순.수.한. 영혼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