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이야기

오랜만에 한국에 가시는 엄마가 걱정이 많은 이유

by 이방인 씨 2012. 6. 4.

바로 오늘 아침, 저희 어머니께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셨습니다.
6년전쯤 한번 가보시고 오랜만에 다시 고국땅을 밟게 되셨는데요.
올해 만으로 예순이 되셨지만 마치 소풍을 앞둔 어린 아이처럼 며칠동안 한껏 들떠 계시더니 정작 출발일이 다가오자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시더라구요.
저 같으면 신나서 비행기가 아니라 제 두팔로 날아갈 텐데 왜 수심이 가득하시고 여쭤보았더니 어머니께서 털어놓으신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토록 가고 싶은 한국이지만 무서워하실 수 밖에 없는 한국의 그 어떤 것들! 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첫번째 - 어딜가나 넘치는 인파

제가 사는 곳은 미국에서 면적대비 인구가 적은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입니다.
땅은 어마어마하게 넓지만 사람은 적으니 시내에 나가거나 쇼핑몰에 가도 붐비는 적이 거의 없고 주택가를 벗어나면 거리에서 사람 마주치기도 쉽지 않은 곳이죠.
이런 곳에서 10년 넘게 살다보니 어머니께서 미국인들이 왜 그렇게 모르는 사람을 봐도 웃으면서 말을 거는지 아시겠다고 하더라구요.
어머니의 생각엔 워낙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우니, 만나면 누구든지 반갑다네요. ^^
반면 한국은 사람 구경하기가 세상에서 가장 쉬운 나라중 하나죠.

저희 식구들은 한국에 살 때도 서울에 비하면 인구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강원도에 살았었던지라 서울에 갈 때마다 정신줄을 놓곤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어머니가 서울에 묵기로 하셨기 때문에 더 겁이 나신거죠.
저도 몇년 전에 서울을 방문했을 때 뭣도 모르고 러시아워에 지하철 2호선을 타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는데요.
일생 통틀어 지하철을 몇 번 못타본 저는 그 날 지하철 안에서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답니다.
사람이 흔들리는 차안에서 손잡이도 잡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끼어서 흔들림 없이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 태어나서 처음 알았거든요.

안습아...난 이렇게 고국에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죽는다해도 이렇게 꽉 끼어있으니 바닥에 쓰러지지도 못해서 아무도 눈치 못 챌거야...


젊은 저도 이렇게 당황했으니 어머니가 미리 걱정을 하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두번째 - 찜통 더위와 불쾌지수

한국의 여름을 표현할 때 찌는 듯한 더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죠?
기온도 높지만 특히 습도가 높아서 그럴 테지요.
반대로 제가 사는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더위는 불볕 더위입니다.
온도는 한국보다 훨씬 높지만 습도가 거의 없습니다.
미국은 기온을 섭씨가 아닌 화씨로 측정하는데요.
저희 동네 여름 최고 기온은 화씨 100-110도 정도로 섭씨로 변환하면 무려 38-43도입니다.
한국은 아무리 더운 곳도 38도 이상은 잘 오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렇게 더운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 하실지도 모르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습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덥지 않습니다.
습기가 없으니 공기로 전달되는 열기가 없어서 일단 햇빛만 피하면 시원하거든요.
한낮에도 직사광선을 피해 나무 그늘에만 들어가면 서늘합니다.
그래서 여름에도 땀은 그다지 흐르지 않는 대신 피부가 바싹 익어버리죠.
한국은 쪄 죽는거고 여긴 타 죽는 겁니다.
결국 죽는 건 다 마찬가지구나... 그랬구나... 흥4

그렇지만 습도가 높은 곳에서는 불쾌지수가 상승하게 되어있죠.
아주 오래간만에 그런 축축한 불쾌감을 맛 볼 생각을 하니 어머니께서 벌써부터 불편하신 듯 합니다.


세번째 - 살인적인 과일값

한국의 과일값, 정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더군요.
TV에서 수박 한통에 만오천원은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동네 마트에서는 $6 그러니까 한화 7천원에 씨 없는 수박 큰 걸로 2통을 팔고 있거든요.
바나나는 한 묶음에 99센트에 파는 날도 많구요.
과일 시장에 가면 복숭아나 자두, 살구는 박스채로 사 먹어도 별로 부담되지 않는 정도죠.
망고, 오렌지, 포도, 키위, 멜론 심지어 두리안까지 먹고 싶으면 크게 가격 신경 쓰지 않고 사 먹을 있을 정도로 저렴합니다.
미국인들이 빈부를 떠나서 죄다 뚱뚱한 이유가 바로 먹을 것이 싸서 그렇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식재료값이 싼 편이죠.
물론 가공식품은 값이 나가지만 가공을 하지 않은 육류와 과일류는 한국에 비하면 거저라고 할 정도로 값이 쌉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미국 가격을 생각하면 한국가서 비싼돈 주고 먹기 아까워서 못 사드시겠다고 하시네요.

??한국의 과일값, 도대체 왜 그렇게 비싼 건가요??

 

이상 세 가지가 어머니가 말씀하신 한국 나갈 때 걱정되는 것들인데요.
사실 저는 걱정하는 것이 따로 있답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저희 가족들은 죄다 촌사람들이라는 거죠!
저희 오빠는 2004년에 한국에 나갔던 적이 있는데요.
한국 여행을 하다가 지방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올라오려고 역에서 표를 끊었답니다.
"서울가는 표 한 장 주세요" 하고 받아든 표를 보니 청량리라고 적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리 라는 것은 우리 고향같은 시골에나 있는 줄 알았던 우리 오빠님....
다시 매표소로 가서 한다는 말이...

흥 저기요, 서울가는 표를 샀는데, 무슨 리로 가는 표를 주셨네요.


매표원이 '이 사람....이게 재밌다고 농담하는 건가? 아니 혹시 농담이 아니라면....어디 모자라나?' 하는 얼굴로 쳐다 보며 "청량리역은 서울에 있는 기차역 이름이예요." 했다네요.
그리고 오빠는 너무 창피해서 빛의 속도로 도망쳤구요. ㅋㅋㅋ
아무쪼록 저희 어머니는 무사히 서울구경을 마치셔야 할 텐데 말입니다. ^^
여러분 활기찬 월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