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십 년 넘게 미국에 살았지만 이런 미쿡인은 또 처음 봤네!

by 이방인 씨 2014. 10. 21.

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주말 이틀을 쉬고 다시 만난 동료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다가 자연스레 각자 주말에 한 일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죠. 저는 뭐 평소처럼 꾸준~히 늘어져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할 말이 없어 듣고 있는데 Robert라는 40대 초반의 미국인이 주말에 친구가 이사하는 걸 도왔다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난 토요일에 반나절 동안 친구 이사하는 걸 도왔어.
나는 일이 없는 날에도 돈을 번다구~"


여기까지 듣고 저는 잠시 제가 집중을 하지 않아 제대로 듣지 못한 게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친구 이사하는 걸 도왔는데 "돈을" 벌었다니요... 아무리 미쿡이라지만 지나친 공사의 구별이잖아요? 저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는지 같이 듣고 있던 미국인 여성이 대뜸 이렇게 묻더라구요.


"You got PAID?? 돈을 받았다고?
You don't help JUST TO HELP? 그저 돕기 위해 돕지 않고?"

 

 

여기서 저는 속으로 또 한 번 당황했답니다. 친구 이사하는 걸 돕고 돈을 받았다는 미쿡인Ⅰ도 놀랍지만, 단박에 "그냥 도와주고 싶진 않고?" 라고 대놓고 묻는 미쿡인 Ⅱ도 놀랍잖아요. Robert가 무안해할까 봐 제 얼굴이 화끈거리려는 찰나, 그의 대답은???


"어차피 일하는 사람 불렀으면 그 사람한테 돈을 지불했을 거잖아.
그래도 내가 친구니까 싸게 받은 거지."


 

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설득당하고 싶지 않은 째째한 논리군...
내가 덩치값을 해야지, 이 몸무게로는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이다!


무안해할까 봐 걱정한 제 예상과는 달리 로버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렇게 말한 뒤 개~운한 얼굴로 떠나갔습니다. 질문을 던졌던 미국인 II도 다시 제 갈 길을 가고, 저만 홀로 살짝 쓴웃음을 지었을 뿐이랍니다.

미국인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돈에 철저한 사람들이지요. 돈,돈,돈, 거린다는 뜻이 아니라 "내 돈, 네 돈"의 구분에 엄격하다는 말입니다. 블로그 초창기 시절 미국인들의 더치페이에 관해 쓴 적도 있지만, 쿨하다 못해 서늘할 정도로 '너와 나의 관계는 관계고, 돈은 돈이다'라는 사고방식이 딱히 문제될 것 없는 곳이 미국이죠. 십 수년을 살며 몸소 느껴왔지만 로버트처럼 이. 정.도.까.지. 하는 사람은 또 처음 봤네요.  아무리 미국이라도 친구들끼리는 대가 없이 돕는 때가 더 많거든요. 그런데 자기 입으로 Friend라면서 굳~이~ 단 돈 $20이라도 받아야 일을 돕는다는 로버트를 보니 저도 모르게 한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그 말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래 친구 이사 돕고 일당 받으셔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물론 문화 차이, 개인의 성향 차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가감없이 고백하건데, 저는 간혹 이렇게까지 개인주의적인 미국인을 보면 이 나라에 정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재밌는 사실은 연배가 높은 미국인들을 만나면 저랑 같은 말을 한다는 거예요. 미국도 예전부터 이렇지는 않았다고 토로하며 혀를 차죠.

변화의 속도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도 인심이 예전 같지 않고, 젊은 세대가 개인주의적 성향을 띄게 됐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친구 이사하는데 당.당.히. 돈 받고 도와주는 한국인은 없을 것 같은....


설마... 어..없..죠???
있다면...

대.충.난.감


자꾸 옛날 옛적 한국인 티내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한국에 살던 15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든 친척이든 이웃이든 이사를 돕는 날에는 새 집에서 신문지 펼쳐 놓고 자장면 시켜 먹으면 그걸로 그만이었는데 요즘은 또 어떤지 모르겠네요. 시대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긴 해도 싸늘함이 어느새 일상이 되는 사회가 되지는 않기를...

여러분 신나는 자장면 유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