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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솔직한 미국인들에게 솔직히 말할 수 없는 한 가지

by 이방인 씨 2012. 11. 21.

제게는 미국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실수나 치부를 드러내는 데 솔직하고, 또 그런 솔직함에 관대한 것이 미국인들이지만 제 비밀만은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할 수 없는 저의 비극적 약점은 바로... 바로...!

 

저는 개(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무서워합니다.

 

이 까짓게 무슨 비밀이냐구요?
만약 여러분이 저처럼 개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미국에서는 비밀로 하는 것이 이미지 관리에 좋을 겁니다. ^^;;
미국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암묵적 진리가 두 가지 있습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고, 개를 좋아한다. -.-

 

프랑스인들이 요란한 애견가들이라고 하지만, 제 생각에 미국인들도 절대 뒤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개를 사랑하는 것이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거의 민족성이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개를 좋아하거든요.
이런 사회에서 "아... 저는 개는 별로입니다." 라고 말하면 분위기 묘해진답니다.
실제로 제가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듣고 있던 미국인들 조금 난감한 듯 하더군요.

입으로 한 말:  아.. 그렇구나. 개를 안 좋아하는구나.

표정으로 전하고 있던 말:  세상에... 개를 안 좋아한다니.. 넌 대체 어떤 차가운 인간인거니?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법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이 사람들의 기본 인식은 보통 사람이라면 개를 좋아하지 않을리가 없다는 겁니다.
개처럼 사랑스러운 동물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는 거죠.
마치 한국에서 "난 아기 별로 안 좋아해" 라고 하면 어딘가 조금 쌀쌀맞고 인간성 별로인 사람처럼 여길 가능성이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들은 정말 개를 인간을 사랑하듯이, 아니 그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한국이라면 보통 "여자와 아이는 건들지 마시오!" 겠지만 미국에서는 여차하면,

아이와 개는 살려주시오~!

라고 나올지도 몰라요. ㅋㅋㅋ

 

난 내 개가 생각하는 내가 되고 싶어요. 

애견가만 주차하세요.
나머지는 견인됩니다.

개들은 당신의 가슴에 영원한 개발자국을 남깁니다.

 

내 아이들은 발이 네 개 있어요.

 

저도 개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은 압니다.
다만 제가 기억하는 한, 저는 어릴 때부터 개를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진으로만 사랑을 하고 있는데요. ^^;;

몇년전 어느 날, 저는 애견가 동네주민과 한번 마찰이 있었던 적이 있답니다.
제 글에 자주 등장하는 집 근처 공원 아시죠? ㅋㅋㅋ
그 날도 어김없이 그 공원을 산책하던 중이었죠.
그런데 공원 입구에 보면 안내판이 하나 있는데 '개들을 산책시킬 때는 반드시 목줄을 하십시오' 라고 써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개들을 맘껏 뛰어놀게 하고 싶어서 목줄을 하지 않고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이 꼭 있죠.
저는 멀리서 목줄을 하지 않은 개들이 눈에 띄면 무서워서 다른 길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 날은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뒤쪽에서 뭔가 맹렬히 달려오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더라구요.
돌아보는 순간 심장마비 오는 줄 알았습니다. -.-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대형견 한 마리가 엄청나게 긴 혓바닥을 흔들면서 저를 향해 돌진해오는 게 아닙니까.
저는 너무 겁을 먹어서 완전히 그 자리에 두 발이 붙어버렸습니다.
개들의 습성상, 사람이니까 무조건 달려온 것 같은데 도망갈 엄두도 못내고 찍소리도 안 나오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얼어있는 제 몸에 앞발을 세우고 몸을 일으키는데 우와~ 왜 이렇게 큽니까...
저 진짜 나이 먹을만큼 먹고 그 나이에 엄마 찾으면서 울 뻔 했어요.
한 20초쯤 있다가 개를 따라잡은 주인이 막 허허허 껄껄껄 웃으면서 개를 떼어가서 막 쓰다듬더라구요.
저한테 건성으로 "Sorry" 하더니 개를 붙들고 "굿보이 굿보이" 난리를 칩니다.
저는 조금 화가 나서 말했죠.

 

공원에 데리고 오실 때는 목줄을 반드시 하셔야죠.
개들의 안전도 그렇지만, 세상에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남자, 이렇게 되묻네요.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거요?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렇게 목줄이 풀린 개가 달려들어서 지금 굉장히 놀랐습니다.


하니까  유난스런 인간을 다 보네 하는 눈길로 쳐다보더라구요.
그리고는 "Alright, I'm Sorry" 하고 개를 끌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마나 놀랬는지 다리가 계속 후들후들 떨렸죠.

그런데 그 일이 있고 한 4개월인가 후에, 저희 동네에서 목줄을 풀고 산책을 하던 그레이트 피레니즈 한 마리가 산책로를 벗어나서 도로로 뛰어들었다가 달려오던 차와 완전히 쾅! 충돌을 해버렸습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엄청나게 크게 다쳤다고 하더라구요.
그 후로는 더더욱 반드시 목줄을 매라는 규칙이 강화됐지만 요즘도 공원 가보면 목줄을 풀어놓은 개들이 간혹 보입니다.
그런데 개들은 훈련이 잘 되어 있어도 밖에 나가면 흥분하고 충동적 행동도 곧잘 하잖아요.
언제 어디로 달려갈지 모르는데 해맑게 굿보이 외치고 있는 주인들 볼 때마다 겁이 납니다.
개들은 굿보이인데, 몇몇 지각없는 주인들이 굿보이가 아니예요. -.-^

그리고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어색해질 것 같은 이 분위기 속에 저는 오늘도 저의 비밀을 꾹~ 지키고 있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 글은 미국 전역의 사정이나 미국인 모두를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