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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단신(短信)

사이버 범죄로 고소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by 이방인 씨 2013. 12. 18.

틀 전에 쓴 제 글 밑에 이런 댓글이 달린 것을 확인했습니다.

 

글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토론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전형적인 배설형 악플이네요.

제 나이를 가늠하시면서 저를 아이라고 칭하는 걸 보면 연배가 있으신 분 같은데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하십니까.

 

여러분, 사이버 모욕죄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형법 제 311조에서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모욕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이버상 모욕죄가 성립되려면 공연성, 특정성, 고의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답니다. 한마디로 공연히 모욕을 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어야 죄가 성립된다는 건데 저 댓글을 한 번 살펴 볼까요.

1. 공연성

이 블로그는 하루 평균 6,000여명 이상이 드나드는데 저 댓글이 게시되었던 날은 2만 명 이상이 방문했고 해당 게시물은 1만 명 이상이 읽었습니다. 이 정도면 불특정 다수로 인정되어 공연성을 띕니다.


2. 특정성

"이방인 씨의 블로그"라는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사이버 모욕죄가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실명을 거론해야 죄가 됐지만 미니홈피나 블로그 운영이 활성화되면서 이제는 ID만 적어도 특정성이 인정된다는군요.


3. 고의성

저 댓글은 저와 토론 중에 나온 말이 아닙니다. 게시물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댓글도 아닙니다. 뜬금없는 막말과 욕설로 가득한 댓글은 "공연히 타인을 모욕하려는" 고의가 분명히 보입니다.


모욕죄 성립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췄으니 위 댓글을 쓴 사람을 제가 고소한다면 그는 형법에 의거한 처벌을 받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런 법률 지식을 알고 있느냐구요? 댓글을 발견하고 곧바로 경찰청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가입하고 사이버 모욕죄 판례를 찾아보았습니다. 아니, 사실은 이 사람의 댓글과 IP를 캡쳐하고 사이버 범죄신고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악플다는 사람들아...
당신들을 범죄자로 고소하는 과정에서 가장 번거로운 게 회원가입입니다.
그것만 끝내면 사람 하나 경찰에 신고하는 게 참 쉽더라구요.
악플 달기 전에 인터넷 검색 한 번 해 보세요.
블로그나 카페에서 욕설 댓글 달고 경찰 조사 받고 벌금형 또는 징역형 받은 사람들 많습니다.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명예훼손만 범죄가 아니라
공연히 타인을 모욕하는 것도 대한민국 형법에 명시된 범죄입니다.

 

공연성과 특정성이 인정되어 범죄가 성립되는 경우 처벌 수위는 모욕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합니다. 사이버 모욕죄 판례들을 보니 "쓰레기 같은 글 올리지 마라 XX야" 라는 가벼운(?) 욕설을 한 네티즌에게 3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졌더라구요. 여러분이 보시기에 제 글 밑에 달린 댓글이 저것보다 훨씬 악질적이지 않나요? 제가 저 댓글을 신고하면 IP 191.XXX.XX.XX 를 사용하며 서울 특별시 종로구에 (사실 동과 번지수까지 다 알 수 있었습니다만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거주하는 어떤 사람이 최.소.한. 몇 십 만원 벌금형에 처하게 되겠죠.

악플이 처음도 아니고 익숙하긴 하지만 이 댓글은 그 본질이 다릅니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또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비매너 댓글은 하다못해 '내 생각과 달라서 마음에 안든다'는 최소한의 이유라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 댓글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제가 쓴 글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욕'만 들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공연히 "타인의 인격적 가치와 명예를 무시/경멸하는 의사표시를 한다"는 모욕죄에 완벽히 들어맞는 댓글 아닙니까. 이 댓글을 쓴 사람을 고소한다고 저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귀찮은 회원가입까지 마치고 신고 내용 다 쓰고 마지막 버튼을 클릭하려다 보류한 이유는 다만... 사이버 모욕죄로 처벌받는 자는 전과자가 된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서였습니다. 저는 죄 짓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전과자라는 말을 들으니 인생에 엄청난 빨간 X표가 새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저 댓글을 쓴 사람은 아마 그 정도 X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저는 남의 인생에 빨간 X를 붙이고 싶지 않아 참으려고 합니다.

이.번.에.는.요.

블로그 초반에는 이보다 더 심한 악플을 받아도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미국에서 총 맞아 뒈지라"는 악플도 있었답니다.) 고소하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습니다. 그냥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니 참는 수 밖에 없다고 여겼죠. 그런데 계속 피해를 입으며 세월이 흐르니 저도 달라지네요.

인간적 당부와 호소로도 해결이 안되면 법에 의지해야죠.
법의 존재 목적이 거기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회원가입을 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넘어가겠습니다. 덕분에 다음에는 번거로운 가입 절차 없이 바로 악플러를 고소할 수 있겠네요. 인터넷에서 사례를 조사해 보니 악플 달 때는 그렇게 패기 넘치던 사람들이 실제로 경찰 조사를 받을 때는 선처해 달라며 울기도 한답니다. 사이버 세상이라고 너무 쉽게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는 사람은 실제 세상에서 경찰서 의자에 앉아 눈물 콧물 다 짜게 될 수 있다는 진리군요.

키보드 워리어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게 웬 약한 모습이랍니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난생 처음 보는, 아니 본 것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저런 막말과 욕설을 듣는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내가 자주 가는 블로그가 있는데 거기 블로거가 악플에 당하는 걸 보니 좀 안 됐더라~' 이런 거 말고 여러분이 직접 겪으신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