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단신(短信)

블로거 생활 3년, 악플보다 더 질리는 것은?

by 이방인 씨 2014. 9. 4.

로그 3주년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요즘 저는 블로깅에 회의를 느끼는 중이랍니다. 글 쓰는 일은 여전히 즐겁지만 저를 질리게 하는 복병들이 끊이질 않네요. 온라인에 글을 게재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한다면 역시 '악플'이겠지만 그보다 더 근절하기 힘든 병폐는 바로...


불펌 및 무단도용입니다.


적발하고 또 적발해도 끝없이 반복되네요. 악플이야 삭제한 뒤 해당 댓글을 남긴 IP를 차단하면 일단락되지만 불펌 및 도용은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납니다. 악플보다 더 명백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이 절망적이구요.

저는 듣도 보도 못한 인쇄매체에 제 글이 버젓이 실렸다는 제보도 여러 건 받았고, 온라인 상의 불펌은 당연지사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글을 가져가며 "퍼가요." 한마디 통보하고 가는 사람은 셀 수도 없고, 제가 동의하지 않은 곳에 퍼져 있는 링크도 많고, 교묘하게 도용하는 치사한 인간들도 있고...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이 모든 무단이용 사례들, 엄연한 범법행위입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블로거들이 같은 피해를 입고 있지만 중과부적이라 당해낼 수가 없는 지경이네요. 저작권 존중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 널리 퍼졌다고 하는데도 왜 아직 나아지지 않는 걸까요. 블로그를 운영하며 제 나름대로 느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첫번째 - 교육의 부재

불펌 및 도용을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학.생.들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대학생들마저 과제에 이용하겠다며 그냥 가져가버리더군요. 숙제로 내야 되는데 오른쪽 클릭 금지해놓았다며 "글 가져가지도 못하게 하는 뭐 이런 거지 같은 블로그가 다 있냐"며 역정을 내.시.고. 가신 고등학생이 있질 않나, 프레젠테이션에 써야 하니 글을 자기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지.시.하고 가신 대학생이 있질 않나, 자신이 다니는 교회 홈페이지에 제 글을 열심히 퍼나르신 열성 신도가 있질 않나... 아휴~ 일일히 열거하려면 제 손가락만 피곤할 뿐입니다.

저작권이 뭔지도 몰랐던 시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도 아니고, 2013년 현재의 중,고등,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인식이 이러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타인의 지적재산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 아닐런지요.


미국인들을 보며 느꼈지만 '선진 시민의식'은 개인의 윤리·도덕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교육과 법의 힘으로 구현됩니다. 즉, 미국인들의 (굳이 미국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제가 직접 경험해 본 나라가 미국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작권 인식이 한국인들보다 낫다고 한다면, 그 까닭은 그들의 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교육과 법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죠.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작권 교육에 철저합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친구의 과제를 베끼거나 책의 내용을 그대로 써서 낸 학생들은 0점을 받기도 했고 더 곤혹스럽게는, 부모님 소환이라는 무시무시한 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미국에서 다닌 제 사촌동생들의 말을 들어 보면 초등/중학교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제 표절 및 도용 금지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그 때부터는 저작권 명시 전쟁이라 표현해도 될 정도로 철저한 규칙을 따라야 합니다. 과제 내용 중 다른 곳에서 인용한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명시해야 하고, 원작자의 표현을 그대로 따랐다면 그 또한 따옴표로 철저히 표시해야 하고, 책에서 봤다면 몇 페이지에서 봤는지도 써야 하고, 본문이 끝나면 참고문헌표를 통해 모든 출처를 다 밝혀야 합니다. 온라인에서 참고한 내용이라면 웹페이지의 주소와 웹문서 등록 날짜까지 명기해야 하죠. 이러한 형식을 지키지 않은 과제는 아예 받아주시지 않는 교수님들도 계셨고, 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하면 일단 조교들이 먼저 본문 내용 중 온라인이나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베낀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게 하신 교수님들도 계셨습니다. 표절이나 도용이 적발되면 과제를 0점 처리 받거나 강의에서 퇴출되는 정도가 아니라 학칙에 따라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되고 표절이 심각한 수준이라 판단되면 단번에 퇴학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제 말이 과장으로 들리시나요?

 

미국 야후 지식인에 올라온 질문들입니다.

"표절 때문에 대학에서 퇴학당했어요."

라며 너무 심한 처벌이 아니냐고 묻고 있네요.
과제 베끼기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할까 봐 두렵다는 어린 학생도 보이구요.


대학에는 과제 표절 및 도용을 감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따로 있기 때문에 1차 적발은 담당 교수가 하더라도 그 이후의 처벌은 그곳에서 하기 때문에 선량한 학생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학교 다닐 때 혹시나 실수로 인용의 출처를 빠트리거나 참고문헌표의 까다로운 형식이 틀리지는 않았을까 과제 제출 때마다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답니다. 제가 지금도 블로그 글을 쓸 때 '이 내용은 어느 신문에서 봤고, 어느 사이트에서 봤고, 어느 기관의 통계 조사에서 봤고...' 하며 약식으로나마 주절거리는 건 그 교육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문으로 듣자니 한국의 중고교에서는 오로지 대학입시와 직결되는 교육만이 환영받고, 그리하여 대학에 진학하면 그 때부터는 또 취업준비만이 최우선과제라고 하더군요. 그건 학생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고, (학생들은 오히려 피해자죠.)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학교 측을 원망할 수도 없고, 결국은 사회 탓이겠지요.

저작권 무시(?) 멸시(?)는 요즘 한국인들을 분노케하는, 목숨이 오가는 문제들과 비교하면 하찮은 일이겠으나 이 또한 인문(人文: 인류의 문화, 인륜의 질서) 교육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두번째 - 제 무덤 제가 파는 블로거들

저작권 존중 교육의 부재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저를 열.받.게. 하는 건 뻔뻔하기 그지없는 일부 블로거들의 작태입니다. 자신도 글을 쓰는 블로거라면서 다른 사람의 글을 함부로 도용하는 사람들이 있습, 아니 많습니다.

최근에 저는 제 글을 교묘히 도용한 한 블로거의 글을 읽었습니다. 전문을 다 베낀 것이 아니라 부분을 도용한 것인데, 영문을 제가 직.접. 번역한 부분까지 가져갔더라구요. 블로그에 가 보니 프로필에 "시나리오 작가, 무슨 무슨 책의 저자"라고 쓰여 있더군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도용한 솜씨 한 번 좋아서 제 문장을 가져다 여기저기 바꾸고, 자기 문장과 짜깁기하고는 시미치 뚝 떼고 있지만, 제 context의 도용은 분명하고 제가 쓴 몇몇 표현을 그대로 옮긴 데다가 결정적으로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그냥 베껴 가는 바람에 어처구니 없는 실수가 있어 댓글로 고쳐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제가 발견한 것 중 가장 솜씨 좋은, 그러나 가장 치사하며, 고의성이 짙은 도용이었습니다. 읽어 보니 저보다 글도 훨~씬 잘 쓰시던데 대체 왜 그런 짓을 하시는 건지 원... 공개적으로 누군지 다 밝힐까 생각도 했지만 잘못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스스로 프로라는 사람이) 애초에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 소 귀에 경 읽기 싫어 그만 두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같은 사람에게 불펌 피해를 당하는 블로거도 계시고, 참다 못해 공개적으로 경고문을 올려 놓은 블로거도 봤습니다. 같은 블로거에게 무단도용 당할 때의 그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자신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글을 쓴다면서 어찌 그리 타인의 글에 대한 존중이 없단 말입니까. 제가 알기로 저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블로거들은 출처만 밝힌다면 링크 및 이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예 가져가지 말라고 원천봉쇄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져가거나 참고할 때는 사전에 말.한.마.디. 하라는 건데 그게 무리한 요구인가요?


다른 글을 참고하여 자신의 글을 작성하고 싶다면,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거나 그것도 못하겠으면 참고 및 인용 출처를 밝히면 됩니다.


누군가의 글을 참고하여 작성했다는 사실을 밝힌다고 해서 그 사람의 글재주나 글의 수준이 저평가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남의 글을 몰래 가져가거나 베끼는 행위가 그 블로거의 양심을 추락시키고 있다는 것만이 사실이죠.

더욱 큰 문제는 일부 블로거들의 이러한 짓거리 탓에 글을 읽는 사람들 역시 블로거의 글을 쉽게 가져가 맘대로 쓸 수 있는,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 정도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당연하죠.


블로거들끼리 서로 베끼는 마당에 누가 그 저작권을 존중해 주겠습니까.


네티즌들의 저작권 인식을 향상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블로거들의 자정이 선결과제입니다. 정말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사랑하는 블로거라면 그런 짓은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오늘은 글이라기보다 성토가 되었네요.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게 된다는 긴 시간인데 제가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불펌 및 도용 피해는 별반 다르지 않기에 조금은 암담한 기분이랍니다.


뭔가 맛있는 걸 먹어야겠어요!



이걸 핑계로 먹을 구실을 만드는 건 절대 아니... 아니...

라고 말할 수 없는 제 자신이 차~암~ 여전하네요.
사람 변하면 죽는다던데 한.결.같.은. 식욕으로 따지면 저는 곧 십장생의 반열에 오를지도요.


여러분, 신나는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