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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인들의 의외의 모습-그들의 순진함에 대하여

by 이방인 씨 2012. 5. 5.

오늘은 지난 글에 이어 제가 본 미국인들의 의외의 모습 - 그 두번째 이야기 입니다.
그들의 두번째 의외의 모습은 사실 제가 미국인들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너무 순진해 사랑스러운 내 미국 친구들

순진하다는 표현을 보고, 많은 분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네요.

어이~ 한국사람들도 미국 영화나 드라마 많이 보고 사니까 뻥 치지 마시라구! 

제가 말하는 순진함은 성(sexual)적으로 "아무것도 몰라요...."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사에 대한 이해 또는 태도가 전반적으로 순진하다는 것이지요.
사실 명확히 설명하기 난감한 부분이라 오늘 글을 어떻게 써내려가야할지 막막하지만, 일단 운을 뗐으니 계속 가보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본국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더 뼈저리게 느끼실테지만, 한국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사회라고 할 수 있죠?
좁은 땅, 한정된 자원에 인구는 많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죠.
그와 정반대로 미국은 넓디 넓은 땅, 풍족한 자원, 그리고 그에 비해 적은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이들도 인간들이니 경쟁을 하며 살아가긴 하지만, 한국에 비하면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 수준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똑똑하다못해 영악하게 키워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미국인들은 보편적으로 세상사에 순진한 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실제 제 친구들의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1. 대학 친구 로라 

로라는 아르바이트로 수영강사를 할 만큼 운동을 잘 하고, 몸매도 좋은 빨간 머리의 시원시원한 친구입니다. 이 친구 학교생활의 약점은 바로 Chemistry를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른 과목은 성적이 잘 나오지만, 유독 화학만은 시험을 볼 때마다 평균을 훨씬 밑도는 성적을 받곤 했죠.
100점 만점에 47점이라고 빨간 글씨로 쓰여있는 시험지, 한국이라면 누가 볼까 무서워서 감추는 학생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특히 친한 친구간이라도 친구는 성적을 잘 받았다면 아마 절대 보여주지 않겠죠.
그런데 로라는 서슴없이 친구들에게 매번 시험지를 내보이면서 틀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이건 비단 로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적어도 제가 고등학교때부터 대학까지 만난 미국 친구들은 시험 성적을 감추거나, 성적이 나쁘다고 부끄러워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한 번 로라에게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혹시 실망스런 성적 받으면 다른 친구들한테 감추고 싶거나 한 적 없어?" 
그 때 별 희한한 질문을 다 한다는 얼굴로 로라가 대답하길, "왜 감춰야되는데? 내가 모르는 거 아는 친구한테 물어보면 좋잖아."
로라의 대답을 듣고, 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가 이민자라서 문화적 차이를 알고 싶어서 질문하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어." 하고 결정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친구가 나보다 성적 잘 나왔을 때, 내 못 본 시험지 보여주는게 좀 자존심 상하고 창피하진 않아?" 했더니, 크게 웃으면서 

그게 뭐가 창피해? 시험 좀 못 봤다고 내 가치가 떨어지는건 아니잖아?
그리고 점수 잘 받은 친구는 공부 열심히 해서 보상을 받았으니까 잘 된거지, 그 때문에 내가 창피할 일이 뭐가 있어??
친구들도 내가 시험 못봤다고 날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을텐데. 

평소대로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로라를 보며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2. 그냥 아는 친구 스티브 

말 그대로 그냥 아는 친구인 스티브는 대학을 졸업한 지 꽤 됐지만, 일을 하기 싫어서인지 취직이 안되서인지 근근히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친구입니다.
스튜디오라고 하는 작은 원룸에서 남자 혼자 사는 티 팍팍 내면서도 늘 헤벌쭉 웃는 얼굴입니다.
아마 냉정한 잣대를 가지신 몇몇 한국분들은 찌질하다고 할 지도 모르죠.
스티브에게는 2살 위의 사촌형이 하나 있는데, 미서부의 명문 버클리의 비지니스 스쿨까지 마친 잘 나가는 억대 연봉자입니다.
기묘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그 사촌형에게는 같은 비지니스 스쿨 동기 친구들이 많은데, 모두들 샌프란시스코에 번듯한 집이 있고 번쩍거리는 고급차들을 타고 다닙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모두 주말이면 그 으리으리한 차들을 몰고, 스티브의 좁아터진 방으로 모여듭니다.
장정 4-5명이 들어가면 산소가 부족할 것 같은 그 방에서 피자 시켜놓고 캔맥주 마시면서 실없이 낄낄거리다 돌아갑니다.
스티브는 그 친구들과 놀 때가 가장 즐겁다 하고, 친구들 역시 매주 몰려들 정도로 스티브를 좋아하죠.
저는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인격수양이 덜 된 인간이라 그런지, 내 처지가 궁핍한데 잘 나가는 사촌이 매주 잘 나가는 친구들을 이끌고 내 방에 와서 놀다간다면 맘 놓고 반기지만은 못할 것 같거든요.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잘 나가는 친구들이라면 그들과 레벨이 안 맞는 초라한 원룸을 친목장소로 애용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스티브에게 또! 양해를 구하고 로라에게 했던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걔네가 돈 잘 벌고 잘 사는거랑, 내가 못 사는 거랑은 우리가 같이 노는데 아무 관련이 없잖아?
돈 잘 벌어서 성공했으면 걔들한테 잘 된거니까 난 기쁜데...(I'm happy for them.)
걔들도 내가 가난하건 말건 신경 안써. 

로라에 이어, 저는 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때부터 경쟁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이러하더군요.
이렇게 말하면 "미국인들이 더 지는거 싫어하더라" 하며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요.
제가 느끼기에 미국인들은 단순히 승리를 좋아하는 호승심은 강하지만, 누군가를 이겨내야만 내가 산다는 식의 절박한 혹은 애처로운 경쟁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의 주변에 있는 역시나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죠.
달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미국의 대기업이나 상류층 사람들은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겠죠.
하지만 제가 한국의 평범한 여학생으로 살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공기처럼 존재하는 무언의 경쟁심과 함께 자라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은 의외로(?) 순진무구한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해보았는데요.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 글의 요지는 "그래서 미국이 더 좋다" 가 아닙니다.
그저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겪어보니 이러했다" 라는 것 뿐이니, 오해 없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