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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서 땅으로 꺼지고 싶을만큼 창피했던 실수담

by 이방인 씨 2012. 12. 3.

이쯤되면 블로그에서 제 각양각색의 어벙함을 빼면 도대체 뭐가 남을지 궁금해집니다. ^^;;
오늘도 어김없이 아주 쉽사리 기억이 났네요.
이민 온 지 3개월 즈음하여 제 미국 친구들을 웃다가 쓰러지게 만들었던 저의 실수 한 가지가 말이죠.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토론을 빙자한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습니다.
미국 정착 3개월 밖에 안됐을 때라 저는 간간히 한마디씩 할 뿐 주로 listening에만 매진하던 때죠. ㅋㅋㅋ
지금은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이야기의 시작은 채식주의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갑자기 미국 아이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말도 안되는 음식들을 먹는다며 분위기가 이상한 쪽으로 흐르더라구요.
물론 꼬맹이들이었으니까 악의없이 어린 마음에 장난으로 이야기를 꺼낸거지만 아시안들은 별 걸 다 먹는다며 중국 이야기도 하고 또... 개나 고양이를 먹는 아시안들도 있다는 말까지 나오길래 저는 왠지 항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문화의 상대성에 대해 더듬더듬 영어로 말을 하면서 이 아이들을 단박에 설득하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미국 음식을 말해줘야겠다 고민하다가 번뜩 제가 처음 듣고 엄청나게 충격 받았던 미국 요리 이름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이거라면 너희들도 별 수 없을거다!" 하며 의기양양하게 한마디 던졌죠.

 

그러는 니들은 버팔로를 먹잖아!!

 

여러분, 버팔로가 뭔지 아시죠?

 

이 카리스마 넘치는 아프리카 물소의 이름이 바로 Buffalo죠.

 

그 당시 저는 분명히 미국인들이 Buffalo Wings 라는 음식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거든요.
그 음식의 이름만 들어봤을 뿐 본 적은 없는 저는 스펠링도 완전히 똑같은 Buffalo 니까 당연히 저 물소의 고기일 것이라 짐작했었습니다.

그런데 제 한마디를 들은 미국 친구들은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만 깜빡거리더라구요.
그러더니 잠시 후 어떤 아이 하나가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얘 지금 혹시 Buffalo Wings 말하는 건가??

그러자 눈 깜빡이던 아이들이 전부 빵빠라 빵빵~ 터져서 웃느라 쓰러지지 뭡니까.우하하
영문을 모르겠는 저는 아이들이 너무 심하게 웃어 제끼니까 황당하기도 하고 서서히 기분이 나빠졌죠.
얼굴이 빨개져 있는데 친구가 여전히 낄낄거리면서 Buffalo Wings는 그 버팔로가 아니라고 알려주더라구요.
그러다가 엉겹결에 수업이 끝났지만 저는 개운치 않은 마음에 집으로 달려와서 당장 버팔로 윙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낯팔림과 함께 찾아온 버팔로 윙은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여러분은 이게 뭘로 보이시나요?
네... 맞습니다.

버팔로 윙은 물소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냥 닭날개 튀김이었던 겁니다!!

닭날개를 튀긴 뒤 빨간 고추가루로 만든 소스에 버무린 미국식 양념치킨이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죠.
이걸 가지고 "니들은 버팔로 (물소) 도 먹잖아!" 라고 말했으니....집에서 혼자 너무 창피해서 땅 밑으로 꺼져버리고만 싶더라구요.
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의 썰렁한 유머인 "그럼 붕어빵에는 붕어가 들어가냐?" 를 마음편히 들을 수 없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Buffalo Wings 라는 이름을 듣고 저만 물소를 떠올린 것이 아니었는지 미국의 프랜차이즈 음식점 중에 이런 이름이 있습니다.


 

진짜로 버팔로 등에 날개를 달아놨죠? ㅋㅋㅋ

 

어쨌든 버팔로 윙의 실체를 알고 나니 엄청난 걱정에 휩싸인 저였습니다.

나 내일부터 학교 어떻게 나가.... 엉엉

다행히 친구들은 그 날 실컷 웃을 만큼 웃어제낀 모양인지 다음날 저를 놀리지는 않더라구요. 휴우~
아마도 외국에서 갓 온 아이라 있을 법한 실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간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를 망신살 뻗치게 한 이 양념치킨은 도대체 왜 이런 이름이 붙은 걸까요?!!
정답은 미국 지도에 들어있습니다.

 


보이십니까?
뉴욕주에는 Buffalo 라는 도시가 있는데, 바로 이 곳에서 저 닭날개 튀김 요리가 탄생했기 때문에 지명을 따서 Buffalo Wings 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랍니다.
아니 이걸 제가 무슨 수로 알았겠느냐구요.......

지금도 제 친구들에게 제가 예전에 이런 실수를 한 적 있다고 말해주면 다들 빵 터진답니다.

 

아니, 어떻게 우리가 물소를 먹는다는 생각을 했어? 
먹고 싶다고 해도 그걸 무슨 수로 구해?? ㅋㅋㅋㅋㅋㅋ


하며 되묻길래 저도 제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졌습니다. 
14년전의 저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wild 한 상상을 했을까요.... ^^;;

활기찬 월요일, 저의 또 하나의 어이없는 실수담으로 시작하네요. ㅠ_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