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이야기

미국에서 결정적 도움이 된 한국식 영어교육

by 이방인 씨 2012. 9. 24.

요즘은 전국 초중고교에 원어민 교사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십여년전에 제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단어 암기와 문법만이 학교 영어수업의 전부였어요.
당시에는 "중고등학교 6년동안 제1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데 왜 외국인과 대화를 제대로 못하냐" 며 한국의 영어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었죠.

저 역시 미국 이민을 앞두고서,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현지에 가면 크게 도움이 못 될거라는 판단하에 원어민 선생님이 계시던 회화학원을 6개월 가량 다녔습니다. 
실제로 미국에 살아보니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역시나... 일상회화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그러~나!! 어휘와 문법에 치중하는 한국식 영어교육법이 미국에 온 첫 해, 가장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 한 방으로 저를 도와주었답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정착한 곳이 San Francisco 인데, 샌프란시스코에는 Newcomer High School 이라는 이민자 전용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공립학교를 선택한 많은 신참 이민자 학생들이 이 Newcomer 고등학교에 배정되죠.
물론 이 학교가 미국과 영어에 낯선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능하다면 빠른 현지 적응을 위해서 현지인들이 다니는 일반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여기 사시던 이모에게 들으니 비영어권 나라 출신 학생들의 상당수가 일단 Newcomer 고등학교로 배정받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속으로 '아... 그럼 나도 이 학교에 다니게 되겠구나' 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공립학교 배정을 신청한 저에 대한 최종결정은 해당 교육국 담당자가 내리기 때문에 한국에서 들고 온 학교 성적표를 가지고 교육구청에 갔습니다.
어리버리하고 영어도 잘 못할 때인데, 성적표 심사가 끝나자 담당자가 저를 데리고 작은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영어실력 테스트를! 시작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올 것이 왔구나! 싶어 초긴장 상태가 됐는데, 얼굴에 바로 드러났는지 거의 할머니에 가까워보였던 담당자분이 웃으시면서 별 거 아니니까 떨지말라며 친절히 백지 한 장을 주더라구요.
그러더니 저더러 미국인에게 한국여행을 추천하는 글을 한 편 써내래요!!!
헉! 시험도 아니고, 듣기 평가도 아니고, 작문?! 그것도 즉흥적으로 할머니 머릿속에서 나온 주제로요??!!
그래도 별 수 있습니까?
미국인들이 징~하게 좋아하는 이 노란 No.2 펜슬을 하나 받아들고 그 때까지의 짧은 일생동안 가장 절실하게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죠.

한국여행 추천이라... 일단 여행지하면 생각하는 건 제주도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하면 떠오르는 건 바람, 돌,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라는 것과 신혼여행지로 유명하다는 것이었죠.
간신히 떠오른 그 두 가지로 A4 용지 한 장을 우려내느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
다른 건 다 잊어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유치했답니다. ㅋㅋㅋ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하면, 설령 미국인과 하게 되더라도, 신혼여행은 꼭 제주도로 갈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글을 마치고, 담당자 할머니께 드렸더니 바로 읽기 시작하시네요.
읽으시면서 슬쩍 슬쩍 웃으시더니, "나도 한국에 가게되면 꼭 제주도에 가보고 싶어지는구나" 하시더라구요.
그리고나서 종이를 내려놓으시더니 제 운명을 판가름할 이런 말씀을!!

 

단어를 제법 많이 아는구나! 문법이랑 시제도 잘 썼고. 이 정도면 Newcomer 말고 다른데 가도 되겠다.

 

띠용~~!!  그렇게 담당자 할머니가 마지막에 제게 쥐어준 서류에는 Newcomer 가 아니라 일반 고등학교의 이름이 떠~억 찍혀있었답니 다.
지금 생각해보면, 엉성한 작문 실력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글의 뜻은 다 통했던 모양이지요. ㅋㅋ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모에게 종이를 보여줬더니 너무 기뻐하시더라구요.

 

어머? 일반 고등학교 배정 받았네?!! 잘했어!! 정말 잘됐다~

 

그 때 정말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지루하기만 했던 영어 수업이 어찌나 고마워지던지 모릅니다.
재미없다는 이유로 그 마성의 초록색 성문 영문법 시리즈 책에서 벗어날 궁리만 하던 제 자신을 맹렬히 꾸짖었답니다. ㅋㅋ
결정적 순간에 크게 한 방! 저를 도왔던 것이 바로 한국식 영어교육법이었으니까요.

미국에 오는 목적이 여행이 아니라, 여기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라면 회화 못지않게 Academic English 실력이 중요합니다.
빠르게 주제를 읽어내는 독해능력뿐만 아니라 각종 과제 및 에쎄이를 쓰는데 필수인 문법과 어휘실력이 뒷받침 되어야하죠.
그런 면에서 제 어릴적 한국식 영어교육법은 제가 미국에서 대학교까지 무사히 마치는 데 크게 일조했답니다.
이후로 내내 그 시절 영어선생님들께 감사하곤 했었죠. ^-^

한국식 영어교육법이 한 몫 톡톡히 한 저의 미국 고교배정 이야기, 어떻게 보셨나요?
활기찬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