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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는 에누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한국보다 더 하네요

by 이방인 씨 2012. 11. 22.

저희 가족이 미국에 와서 가장 처음으로 저지른 실수가 바로 자동차 구매였답니다.
차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에 온 만큼 시차 적응되자마자 가장 처음 한 일이 자동차를 산 일이었죠.
그런데 그 날의 일은 13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부모님의 기억에 '어리버리했던 실수' 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오래전이고 시골 소도시였기 때문에 모든 장사에는 "흥정" 이 있었습니다.
대형마트니, 가격정찰제니 이런 것이 드물던 시절의 이야기죠.
아, 이 세상에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딨어? 라는 노래 가사도 있었잖아요. ^^
그런데 미국은 왠지 흥정이고 덤이고 없이 부르는 가격 그대로 내고 사는, 계산이 정확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외국 나가면, 함부로 물건값 깎고 그러면 안돼~

 

뭐 이런 근거를 알 수 없는 말도 종종 들려오던 시절이었으니까요. ㅋㅋㅋ
그러다보니 처음 자동차를 살 때 판매자가 부르는 가격을 아무 의심없이 그대로 믿고 샀죠.
미국 사정을 잘 알리 없는 저희 부모님은 그 당시만 해도 이 나라는 뭐든 정찰제고, 함부로 흥정을 하는 것은 비매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미국인들이 더 레벨이 쎈! 흥정을 시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
흥정은 영어로 Haggle 이라고 하는데요.


 

 

몇년전에 저희 어머니가 제게 미국 신문 한 장을 건네 주시면서 읽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Haggle Like A Pro!

 

기사 제목이 프로처럼 흥정하라니... 전문 흥정꾼이라도 있단 말인가?! ㅋㅋㅋ
저는 비싸면 차라리 안 사고 말지 왠지 낯 뜨거워서 깎아달라는 말은 절대 못하는 성격인데 저희 어머니는 그런 제가 어벙해 보였는지 신문 기사를 읽어보라고 주신 겁니다.
어쨌든 한번 피식 웃고는 읽어보니 내용이 참 대단하더라구요.
정말 이 정도 레벨의 흥정은 전문 "꾼" 쯤이나 되야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시장이나 개인 상점의 물건은 어느 정도 흥정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기사를 보니 아무리 정찰제라고 못 박아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라도 흥정은 가능하다는 게 아닙니까!
신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There is no such thing as fixed price. 이 세상에 정찰제라는 건 없다!

 


 

정찰제라고 이렇게 명시한 곳에서도 주저말고 흥정을 시도하라는 조언에 저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흥정할 때 하면 좋은 말이라던가, 하면 안되는 행동이라던가 실질적 Tip을 많이 실은 기사였지만 사실 저는 한 번 읽고 그냥 던져버리고 말았는데요.
반면에 모르는 단어는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기사를 정독하신 저희 어머니, 두둥~!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프로처럼!

 

그것도 신문에서 말한대로 정찰가격이 바코드로 찍혀나오는 그런 대형 마트에서! 두 번씩이나!
한번은 집에 TV를 새로 들여놓았는데 Best Buy 라고 하는 대형 전자제품 전문 매장에서 구입을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 $800불 정도를 지불했었는데 한 2주쯤 지나서 MP3 플레이어를 사려고 다시 매장에 들렀더니 저희가 산 TV 모델이 세일 품목이 되었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냥 '아... 2주만 기다렸다 살 걸 그랬네..' 하고 조금 아쉬워하고 말았는데, 계산대에 섰을 때 저희 어머니께서 점원에서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저 TV 세일 시작한 지 얼마 안됐죠? 우리 저거 2주전에 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기다릴 걸 그랬네요. $100불이나 내렸네요. 아휴...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냥 아쉬움에서 나온 하소연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냥 빨리 집에 가자고 하는데 점원이 말하더라구요.

 

그러세요? 그럼 $100 돌려드리겠습니다. ^-^

 

에~~~??? 뭐라굽쇼?? 그렇게 쉽게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집에 가서 영수증 찾아서 보여줬더니 정말로 세금까지 해서 $104불 정도를 돌려받았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이렇게 돌려줄 줄 알고 말씀하신거냐고 여쭤보았더니 대답하시길,

 

아니, 그냥 그 때 신문기사에서 보니까 되든 안되든 무조건 말은 꺼내보라고 하길래 해봤지.

 

이렇게 말만 꺼내보았는데 할인 받은 경우가 또 한번 있었습니다.
이 때도 대형 운동기구 전문 마트에서 자전거였던가... 뭘 한번 사는데 저희 어머니께서 점원의 제품설명을 내내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가볍게 한 마디 하시더라구요.

 

이거 마음에 드네요. 그런데 이것과 똑같은 제품 다른 매장에서 $00 에 파는 거 봤는데...


그래서 저는 또 속으로 '어머니 그럼 그 매장가서 사시고, 여기서 그런 말씀 안하셔도.....' 했죠.
그런데 그 점원 금방 대답합니다.

 

그러세요? 그럼 거기 가격 확인해보고 맞춰드릴게요.

 

헉 또요? 또 이렇게 금방요???
이건 뭐랄까... 흥정을 어렵게만 느끼는 저 혼자 다른 세상에서 뚝 떨어진 아이 같았습니다.
저는 또 한번 어머니께 깎아줄 걸 예상하셨느냐고 여쭤봤죠.

 

응. 신문에서 보니까 라이벌 업체 이야기를 꺼내면 성공확률이 높다고 써 있었어.


띠용~~ 이것이 바로 Haggle Like A Pro!!!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쉽게 깎아주는 것이 오히려 개운치가 않아서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미국의 Haggle 상식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결론은 "우는 아이 젖 준다" 였답니다. ㅋㅋㅋㅋ
많은 사람들이 대형 마트에 가면 정찰제에 눌려서 흥정의 시도조차 안 하는데 일단 조금이라도 여지가 있는 듯 보이면 무조건 말을 하라고 하더군요.
위의 예에서 보듯이, 정찰제를 시행하는 대형 매장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에누리" 정책은 존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들 아시는대로 점원 쪽에서는 깎아준다는 말을 절대로 먼저 꺼내지 않죠.
고객이 먼저 적극적으로 흥정을 걸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가격만 조금 낮춰주면 분명히 살 의향이 있다" 는 것을 밝히는 것이라고 하네요.
판매하는 쪽에서도 가격 조정만 잘 하면 이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흥정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희 어머니께서 쓰신 방법처럼 "경쟁 업체" 를 슬며시 언급하는 것도 좋은 요령이라는군요.

미국에서는 심지어 이런 방법으로 병원비를 흥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종합병원은 무리겠지만, 개인 의사가 하는 병원에서는 말하기 나름이라네요.
어떻게 보면 무리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신문에서 흥정요령을 다룰 정도니까 미국 사람들의 흥정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알 수 있죠?
무조건 시도하고 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답니다. ^--^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여지가 있는 듯 보일 때!" 막말이나 지나친 억지를 삼가하고, 매너를 갖춰서 흥정을 시도하신다면 성공확률도 높을 뿐더러 점원이나 업체의 눈총 받을 일도 없으니 미국에 계신 분들이라면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이 쉽지 저도 도저히 입이 안 떨어져서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

역시... 엄마는 대단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