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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생활 최대위기! 내가 법정모독죄를 지었다고?!

by 이방인 씨 2014. 1. 2.

이제껏 국가기관에서 받은 처벌(?)이라고는 2시간 주차시간 초과 범칙금이 전부였던 이방인 씨가 12월 30일에 일대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건의 발단은 제 이름으로 날아온 이 한 장의 종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2013년 12월 30일에 배심원으로 소환된 것입니다!

두둥~

 

배심원 소환장은 무작위로 발송되는데 제게 날아온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지만 처음 받았을 때는 귀화 전이라 갈 필요가 없었고 실제로 출석해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죠. 
연말에 법원에 갈 생각을 하니 귀찮았지만 배심원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사유가 없었기 때문에 명시된 날 아침 8시까지 법원에 출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운명의 12월 30일 월요일에 제게는 정말이지 이방인스러운, 이방인다운, 이방인ish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느낌표

새.까.맣.게. 잊.고. 안.간.거.죠. 


아침 8시까지 출석인데 오후 1시쯤 "너 오늘 배심원 갔었어?"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서야 기억이 났습니다.


안돼
!


친척들 중에도, 주변 친구들 중에도 배심원 소환에 갔었다는 얘기만 들었지 시~원하게 망각한 사람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는 이방인 씨는 순간 급!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어떤 미국인에게 물어보면 좋을지 급히 생각하다가 전 세계인의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인 친절한 구글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주마다 법이 다를 테니까 구체적으로 물어야죠.) 배심원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검색하자 주르륵~ 글들이 나오더라구요.

 

같은 질문이 많은 걸 보니
나만 요따우로(?) 모냥(?) 빠지면서도 겁나는 실수를 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 안심했답니다.

 

하지만 안심한 것도 잠시, 내용을 읽어 보니 소환 날짜 10일 전에 불참을 통보하지 않은 사람이 당일에 나타나지 않으면 contempt of court (법정 모독죄)에 해당되어 bench warrant (법원의 체포영장)가 발부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법..법정 모독?!
이게 지금 법정스님의 법정은 아니겠지...
(아니 물론 그 분도 모독하면 안되지만!)
게다가 영..영장?!
이것도 영장류의 영장은 아니겠지...

엉엉엉


주차시간 초과 티켓이 유일한 범칙 기록인 이방인 씨는 bench warrant라는 단어를 보고 또 잠시 당황했으나 마저 읽어 보니 "원칙적으로는 그러하나 한 번 불참한 것으로는 보통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느 속편한 현자(賢子)의 답변이 올라와 있더군요.
하지만 그 바로 밑에는 이런 의견도!

 

내가 읽은 바에 의하면, 캘리포니아가 가장 엄격하대.

캘리포니아가 가장 엄격하대
캘리포니아가 가장 엄격하대
캘리포니아가 가장 엄격하대


담배2

이런 된~장, 작년부터 이~상하게 오하이오주로 이사가고 싶더라니...

 

올라온 답변들을 꼼꼼히 읽어 보니 실수로 한 번 빠진 걸로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는 않는다는 중론이었지만 법원에 먼저 연락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 뭡니까.

"법원에서 빠지는 사람들 체크하고 그러지 않아. 긁어부스럼이니 Don't call them!"

VS.

"먼저 자수(?)하지 않으면 정말 머리 아픈 일이 발생할 테니 Call them!"

전화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이 짱구 굴려야 할 일이로다~
재깍 자수를 하되 긁어부스럼 만들지 않는 방법은...?

이메일이죠!

저는 곧바로 법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구구~절절~ "내가 오늘 소환에 불응한 것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나의 분연한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만하기 짝이 없는 나의 뇌 속의 해마 탓"이라며, 흡사 알츠하이머 환자의 심경을 토로한 듯한 대서사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자수의 이메일은 보냈지만 사실은 눈치채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죠.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몇 시간 후 메일박스를 확인해 보니 법원에서 답장이 왔더군요!

 




아~~ 벌써 왔어?! 
소송하는 사람도 많고 총질하는 놈들도 많은 나라라 일이 많을 텐데 왜 이리 처리가 빠르냐...


어떤 처벌이든 의연하게 받겠다는 다짐을 한 뒤 클릭한 이메일에는 놀랍게도 딱 한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비굴하기까지 한 참회의 이메일을 보냈건만 돌아온 대답은 단 한 줄!

과연 뭐라고 써 있었을까요?
궁금하시죠?
여기까지 읽었는데 제가 답장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약오르시겠죠?

에헷~ 에헷~

 

독자 모독죄로 처벌받기 전에 순순히 제 입으로 불도록(?) 하지요.
단 한 줄의 답장은 이러했습니다.

 

당신이 속한 그룹은 오늘 소환되었으니까 그냥 내일 8시에 오세요.

응?!
??

일단 그냥 내일 오라는 걸 보면 난 처벌을 받을 것 같진 않으니 다행이야!

그런데 이 문장, 요~상하게 말이 되질 않아!
내가 속한 그룹이 오.늘. 소환되었으니 그.냥. 내.일. 오라니??!!

 

말 잘 듣는 시민인 저는 시키는대로 "내일" 그러니까 여기 날짜로 12월 31일 아침 8시에 법원에 갔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이 앞뒤가 안 맞는 회신의 의미를 알 수 있었죠.
평소에 크게 관심이 없다가 생애 처음 경험해 보는 배심원 소환이라 그동안 몰랐던 것이 많다는 걸 깨달은 12월 31일의 이야기는 내일 계속됩니다!
미국에 사시는 분들 중에 이런 답장이 온 이유를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스포일러 금지입니다!

여러분 신나는 하루 유후~


요즘 또 제가 같잖게 바쁜 척을 해대느라 답글이 밀리고 있네요. 2-3일만 지나면 다시 따라갈 수 있으리라 사료되오니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