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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친구에게 설명하다가 웃음 터진 한국 물건

by 이방인 씨 2013. 8. 27.

오늘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받았던 자잘한 문화충격에 얽힌 에피소드입니다.
미국 학교에서 처음으로 그룹 과제를 하게 돼서 친구네 집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죠.

생애 최초로 외국 친구의 집에 방문하려니 나름 긴장을 하고 갔는데 그 친구의 집은 샌프란시스코의 면적이 좁고 땅값이 비싼 지역에 있었습니다.
겉모습은 한국의 아파트와 비슷했는데 안으로 들어갔더니...?
저는 집 안 바닥 전체를 대리석으로 꾸밀 수 있다는 걸 14년 전 그 날 처음 알았네요.
실내가 으리으리했던 것은 물론이고 친구 방에 들어서니 제가 그 때까지 TV에서만 보았던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이 방 안에! 전시되어 있었어요.
'전시'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기타와 드럼이 너무 화려하게,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도 저와 마찬가지로 여고생이었는데 그녀의 방은 제 방과 사뭇 다르더군요.
방이 온통 검고, 붉고, 보라색이고, 벽에는 저는 알지도 못하는 거칠어 뵈는 Rock band의 포스터가 많이 붙어 있었죠.
방을 한 번 둘러 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숙제 말고 작두를 타야할 것 같아.

이런 귀신 잡는 방에서는...

 

제게는 너무 생경한 방에서 엉거주춤 앉을 곳도 찾지 못하고 서 있던 그 순간, 제 눈에 들어온 물건 하나!

 

이것과 똑같은 모델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생긴 징그러운 손이었습니다. 

만난지 얼마 안됐음에도 날 집으로 초대해 준 친절한 미국 친구야,
네 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날 용서해 줘...

 

신비로운 방에서 정신줄 놓고 있는데 친구가 "이건 이렇게 쓰는 거야." 하면서 갑자기 저 물건으로 등을 긁는 시늉을 하더라구요.

생각중 아하~! 건 미국에서 파는 효자손, 아니 좀비손이었던 겁니다!

 

등긁개는 영어로도 아주 간단히 Back Scratcher라고 하는데 미국의 등긁개 중에는 아주 장난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제품이 많습니다.
친구 집에 있었던 좀비손도 그렇거니와 한국의 효자손과 기능은 비슷하지만 모양은 많이 다르죠.

 


(annabelchaffer.com)

야무지게 웅크린 다섯 손가락으로 앙칼지게 긁어 드립니다.

 

(cinoa.org)

왠지 모르게 오뉴월에 서리내리게 할 것 같은 한이 느껴지는 여자의 손

 

이건 곰발바닥을 본 뜬 등긁개라네요.
척추까지 시원하겠는걸~

 

(klinestaxidermy.com)

이왕 본 뜰려면 진짜와 구분 안 갈 정도로 만들어야지!
곰발바닥 등긁개의 이미테이션 A급

 

(riversedgeproducts.com)

정확한 종은 모르겠지만 조류의 발
닭발 꼬치구이로 보이는 건 나 뿐인가?

 

(riversedgeproducts.com)

사실감이 지나친 닭발 제품과 그 사용의 모범답안

 

(carolsthoughtfulspot.com)

징그러워 죽겠는 건 둘째치고 이 정도로 굽어있으면 긁히지도 않을 것 같은데...

 

(parrotislandbirdtoys.com)

곤충류: 거미
잘 골랐네! 발이 여덟개나 되니까!

 

 (backscratcherworld.com)

식물류: 선인장
가지가지 한다, 증말!

 



(discussions.texasbowhunters.com)

사슴뿔로 만든 고가의 등긁개

계속 보고 있자니...
이 사람들은 대체 등이 어떤 지경까지 가려운 걸까?

이 정도로 가려우면 어디 아픈 거 아냐??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형태들

 

엽기 효자손 구경하느라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다시 제 친구의 방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죠.
친구에게 그 좀비손이 등긁개라는 사실을 듣고 한국에도 비슷한 물품이 있는데 매우 다르게 생겼다고 설명을 해 줬습니다.
대나무로 만들어서 아주 가볍고 작아서 요리조리 잘 긁을 수 있다고 말이죠.
그러다가 이름을 알려주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어떻게 웃지 않고 효자손을 영어로 번역한단 말입니까?!

Good son's hand? Filial son's hand?

말하다가 빵 터져서 혼자 웃다가 친구에게 한국에서는 대나무 등긁개를 Good son's hand라고 부른다고 했더니 친구도 같이 터지더라구요.
하기야 자기네 집에서는 좀비손으로 긁으니까 안 웃고 못 베기죠.
원래도 한창 잘 웃을 나이인 십대 여학생들이니까 한참 깔깔대다가 제가 말했습니다.

"좀비보다는 효자가 훨~씬 낫지."

"그래, 부모님 등을 긁어주다니 진짜 Good son이다. 난 한 번도 우리 엄마 아빠 등 긁어준 적 없거든."

친구네 집에서 좀비손을 보고 나니 더욱 동서양의 문화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 '효'라는 생각은 아마 서구 문화권에는 없을 테니까요.
제 취향에는 난해하기만 했던 친구의 방에서 좋은 구경했죠?

여러분, 즐거운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