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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초보운전 시절 트라우마, 제일 무서운 건 소방차!

by 이방인 씨 2013. 12. 21.

미국 고등학교에서 '운전자 교육' 과목을 들을 때부터 매우 중요하게 들었던 주의사항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구급차, 소방차, 경찰차 및 기타 응급차량이 사이렌을 켜고 달리면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가장자리로 비켜 정차한다.

 

응급차량의 사이렌이 들려오면 무조건 길 가에 차를 세워야 합니다.

 

이 도로법을 지키지 않고 적발되면 $100 ~ 250 사이의 벌금을 내게 됩니다.
벌금도 벌금이지만 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청난 무개념 행동 취급을 받게 되죠.

십여 년을 봐 왔지만 미국인들은 정말 이 법을 귀신같이 잘 지킵니다.
응급차량의 진행 방향을 몰라도 사이렌 소리만 나면 무조건 차를 갓길에 정차시키는 사람들도 있어서 뒤를 따라가던 저도 황급히 차를 가장 오른쪽 도로에 정차시키고서 보니 정작 소방차는 반대쪽 도로를 달리고 있었던 적도 있었답니다.

 



위 사진에서 응급차와 소방차가 달리고 있고 차들은 줄줄이 가장자리로 비키고 있죠?
도로는 제법 뚫린 것처럼 보이는데요.
샌프란시스코에서 찍힌 이 사진...
응급차량에게 도로 양보하기 실패사례로 보도되었답니다.

이 정도가지고는 안된다는 거죠.
더 빠르게! 더 확실하게! 도로를 빵빵 뚫어줘야 한다고 기사가 났습니다.
도시 면적이 좁아 도로사정이 열악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도로가 홍해바다인 양 쫙- 쫙- 갈라지는 차들을 보고 놀라던 것도 오래전 일이고 지금은 저도 웨~엥~ 하는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차를 정차시키는 반사신경이 생겼지요.
사실 이건 다 초보운전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2003년에 8월 말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채 두 달도 안 지난 10월 초에 저는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도로에서 사이렌을 켜고 맹렬하게 달려오는 커다란 소방차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가 좌회전 초록 신호를 받고 턴을 하는데 소방차도 좌회전을 하려고 달려오더라구요.

아~ 정말이지 이런 경박한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그 당시 저의 솔직한 심정은...

헉4
캐난감 


아니, 초보운전자에게는 직선으로 달리다가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차선을 넘어 가장자리에 정차하는 것도 버거운데 좌회전을 막 시작해서 차체가 커브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리를 빨리 피해줍니까!
게다가 커다랗고 시뻘건 소방차가 정신 사납게 사이렌을 울리며 마구 달려오니까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좌회선 도로 그 자리에 정차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그게 오히려 회전하는 소방차의 진행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번개같이 좌회전을 마치고 좌측 가장자리에 세워야겠다 싶어 최대한 좌측에 붙어 좌회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번.개.같.이. 라는 건 어디까지나 저의 상상 속에서나 일어난 일이지요.
좌회전 선에서 당황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초보운전자가 무슨 수로 번개같이 회전을 합니까.
아마도 저는 삐걱거리며 좌회전을 한 듯한데 (정확한 기억이 없습니다. ) 소방차를 운전하고 있던 대원이 그 와중에 보기에도 웃겼는지 좌회전을 해 지나가면서 저를 슥! 0.3초쯤 쳐다보고 갔습니다.
분명히 일부러 쳐다봐서 저와 눈이 마주쳤죠.
그 때 그 대원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한데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심지어 선글라스를 쓴 상태였는데도 얼굴로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어리바리는 뭐야?

꺼져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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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만 되면 태양계 바깥으로 꺼져주고 싶어요.

 

그 때 소방차의 색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집으로 돌아온 저는 그 다음부터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정신줄 꽈~악~ 부여잡고 재깍재깍 살 길 찾아 정차하게 되었다는, 뭐... 결과적으로 보면 매우 교육적인 이야기입니다요. 네네.

여러분 행복한 토요일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