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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이웃의 세월호 이야기에 진땀 뻘뻘 흘렸네

by 이방인 씨 2014. 10. 6.

난 번 포스팅에서 저희 옆집 아주머니의 한국 드라마 사랑 이야기를 전해 드렸죠? 그런데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결코 즐겁게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불.시.에. 제주도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꺼내신 게 화근이 되었죠.

옆집 아주머니: 드라마를 보면 한국은 "아름다운 남자들이 많은 아름다운 나라"인 것 같아. 나랑 같이 한국 드라마 보는 사람들이랑 내후년 쯤에 함께 한국에 가려고 계획하고 있어. Jeju Island에 꼭 가고 싶거든!

이방인 씨: 아, 제주도요! 저도 한국에 있을 때 한 번 가 본 적 있어요. 한국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죠.

옆집 아주머니: 그럼 너도 Ferry 타고 갔었니? 왜, 그 페리 사고 나서 아이들 많이 죽었잖아?

이방인 씨: (속으로 뜨~억~ 그 이야기를 아주머니도 알고 계시다니... ㅠ_ㅠ) 아, 그렇죠... 네... 그 불행한 재앙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하늘로 갔죠.

옆집 아주머니: 그 캡틴이 잘못한 거지? 배가 가라 앉는데 그냥 배 안에 있으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도대체?? 그것 때문에 자살한 사람도 있지 않아??

이방인 씨: 아...네... 맞아요. 그 학교의 교감 선생님이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으셨죠.

옆집 아주머니: 세상에, 선생님이 무슨 죄니? 그래, 그 horrible한 캡틴은 어떻게 됐어??

이방인 씨: 아, 그 사람은 아직 재판 중이예요.

옆집 아주머니: 최고형 받았으면 좋겠다.

이방인 씨: 그러게요...


아주머니께서 한국의 "아름다운 남자들" (beautiful men) 운운하실 때까지만 해도 웃느라 분위기 좋았는데 갑자기 세월호로 일격을 가하시는 바람에 저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말았습니다. '워낙 한국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비교적 상세히 알고 계신 걸까?' 생각했지만 다시 떠올려 보니 당시 미국 주요 언론에서도 연일 세월호 소식을 전했었네요. 뉴스를 보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실제로 그 때 여러분께 말은 안 했지만 제가 한국인임을 알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듣기도 했구요.

몸이 너무나 머~언~ 곳에 떨어져 있다 보니 어느새 저는 세월호를 서서히 기억 속에 묻는 중이었는데 옆집 아주머니의 날벼락 같은 소리에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혹시 아주머니께서, 또한 그 뉴스를 접한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구요. 아주머니와 헤어져 집으로 들어와서도 잠시 소파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빠졌습니다.

미국에 온 첫 해부터 지금까지 뻔질나게 받고 있는 안전교육 및 대피훈련이 있습니다. Evacuation Plan (대피/탈출 계획) 이라고 하는 것인데 아마 미국에서 학교 및 회사를 다시니는 분들에게는 익숙한 단어일 겁니다. 지진, 화재 또는 그 밖의 응급상황에 신속하게 안전하게 대피하는 방법을 말하는데, 단체로 교육을 받고 1년에 서너 차례씩 불시에 비상벨을 울려 대피훈련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복도 곳곳에 이런 안내도가 걸려 있습니다.

 

내가 지금 건물의 어느 위치에 있고, 비상시 어디로 빠져나가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저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진과 화재대비 훈련을 많이 했고 미국 내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많이 터지자, 총격 사건을 대비한 탈출 훈련까지 받았습니다. 실제 경찰들이 와서 강의실을 돌며 학생들에게 무기나 총을 가진 사람에게 대응하고 탈출하는 훈련을 시켜줬죠. 물론 천.만.다.행.으로 그 때 배운 탈출방법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만.

십여 년을 미국에서 살면서 접한 많은 Evacuation Plan 중 하나가 유독 기억에 남는데, 5층짜리 건물의 화재대피 방법이었습니다. 그 건물에서는 화재가 나면 4개의 탈출구를 통해 일사분란하게 건물을 빠져나간 뒤 10분 거리에 있는 커다란 공원까지 빠르게 이동하여 집결하도록 교육하고 있었죠. 그런데 교육을 받는 도중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탈출구 4개 중 3번이 가장 통로와 입구가 넓어 사용이 용이한데다가 공원으로 통하는 최단거리의 안전한 길이 확보되어 있는데 저희더러 절대 3번으로 나가지 말라는 겁니다!

아니, 무사히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려준다면서
제일 좋은 길은 왜 못쓰게 하는 거야?!


알고 봤더니... 3번 탈출구는 아.이.들. 전.용.이었던 겁니다. 그 회사에는 직원들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Day Care Center가 있는데 응급상황시에는 무조건 아이들과 아이들을 인솔하는 인원들이 가장 먼저 3번 탈출구로 직행하여 공원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성인들에게는 응급상황시 3번 탈출구 사용 금지령이 내려진 것은 물론이고 공원으로 가는 도중에도 빨리 가려고 아이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는 절대 하지 말라는 지시사항이 있었죠.

 

호오~ 과연!
"위험할 때는 아이와 여자, 강아지 순으로 구한다" 
는 미국의 우스개가 농담이 아님을 알 수 있죠?


가끔씩 제가 미국인들의 못말리는 영웅주의에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지만, 평상시에 반복 교육과 훈련을 통해 위급한 순간에는 무조건 아이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본받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월호가 한국에 남긴 것이 상처 뿐이서는 안되겠죠. 철저한 안전교육 및 훈련을 위대한 유산으로 남겼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도 무사히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