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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인 노부부를 보고 우리 엄마가 안쓰러웠던 이유

by 이방인 씨 2013. 7. 29.

어제 <결혼을 앞둔 남자가 여자에 대해 알아야 할 20가지 사실들>을 포스트하고 났더니 몇 년 전에 있었던 작은 사건(?)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저희 어머님께 있었던 일인데 지켜보던 제가 더 씁쓸했었지요.
그 이야기를 하려면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하니 조금 들어 보세요.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60대 초반이십니다.
구세대라고 하면 구세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요즘 60대 초반이면 얼마든지 젊은 생각으로 살 수도 있는 나이잖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이고 비가정적인 고리타분한 한국 남편/아버지의 모습을 두루 갖춘 분이시죠.
아버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큰아버지들과 비교해도 너무 구식이실 정도로요.
아무리 저희 아버지시지만 솔직히 얘기하면 '좋은 남편'이라고는 절대 못 한답니다. ^^;;
단적인 예를 들자면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도 자식들이 대신 챙겨주길 바라는 분이시거든요.
심지어 결혼 30주년 기념일도 시시하게 지나가셨을 정도로 말이죠.
제가 볼 때는 한숨만 나오지만 어머니는 30년 넘게 그렇게 살아오셔서 익숙해지신 건지 포기하신 건지 별 말 없이 지내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 그렇듯 사건은 '그러던 어느 날' 벌어집니다.)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에 잠시 일손을 도우려 나갔었는데 왠 미국인 부부가 가게에 들어오셨습니다.
저희 부모님보다 한 7-8살쯤 손위이실까요?
중년보다는 노부부라고 불러야할 듯 보이는 분들이셨는데 부인 손에는 신선한 향기가 나는 빨~간 장미 한 다발이 들려있었죠.


인사를 건네면서 어머니가 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왠 꽃이예요? 색이 너무 예쁘네요~

아, 방금 우리 남편이 주더라구요.

남편이요? 오늘 부인 생일이신가요?

아니요.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예요.

이 때 남편이 옆에서 말을 거듭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꽃집이 있길래요. 아내가 장미를 좋아하거든요.

'노부부라도 참 훈훈하시네~'하며 듣고 있었는데 저희 어머니가 처음 보는 그 부인에게 속내를 털어놓으시더라구요.

아휴~ 정말 좋겠네요. 부러워요. 우리 남편은 평생 나한테 꽃 한 송이 준 적이 없거든요.

평생? 아니 결혼한지 얼마나 되었는데요?

30년도 넘었죠.

Oh My... 30년이 넘는 동안 한번도 없었다구요?

네. 한번도 없었어요.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제 기억으로 단.한.번. 딱.한.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는 35년간 단.한.번. 받은 거나 한번도 못 받은 거나 똑같았나 봅니다. ^^;;

지켜보기 슬펐던
일은 다음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듣던 부인이 갑자기 들고 있던 꽃다발에서 장미 한 송이를 빼서 어머니께 내밀더군요.

 

 

This is for you.
당신을 위해서요.


라며 부인이 주고 간 장미꽃 한 송이를 컴에 담아 두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같은 여자로서 제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구요.
아버지가 그런 분이시라는 걸 알기 때문에 때가 되면 저나 흥할 인간이 반드시 꽃다발을 필수로 준비하긴 하지만 자식들이 주는 것과 남편이 주는 것은 다르겠죠.

어제 남자가 알아야 할 것들 리스트 마지막 20번이 '말 한마디, 꽃 한 송이라도 로맨스는 필요해!' 였는데 저희 어머니는 남편이 아니라 외간 여자에게 한 송이 꽃을 선물 받으셨네요...

혹시 독자분들 중에 중년/노년의 남편분이 계시다면 작은 말 한마디라도, 단 한 송이의 꽃이라도 부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
언젠가 미국에서 들은 말 중에 제가 몹시도 공감했던 명언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제 생각에 이 말은 정말 진리 중의 진리인 것 같아요.
특히 어머니와 자식이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한국 가정에서는 결국 어머니가 행복해야 온 집안이 행복하잖아요.
저도 아버지가 제게 잘해주시는 것보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시는 게 훨씬 좋더라구요.
아버지들은 내색하지 않으셔도 딸바보인 분들이 많으시다는데 제가 딸로서 한 가지 팁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딸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버지를 가장 사랑한답니다. 오키


여러분, 사랑스런 한 주 시작하세요~


※ 제 글을 읽고 모든 미국인 남편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거, 알고 계시죠? 또한 모든 한국 중년 남편분들이 저희 아버지 같지도 않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