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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사회복지사를 옆에서 보고 감탄한 이유

by 이방인 씨 2013. 7. 23.

어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며칠 전에 제가 미국의 Social Worker를 관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Social Worker마다 전문 분야가 따로 있지만 어쨌든 통칭하여 '사회복지사'라고 번역할 수 있죠.

며칠전 제가 만난 사회복지사는 '아동복지' 담당이었답니다.
신고를 당한 한인 교포분이 가정폭력. 그리고 그로 인한 아동학대의 의혹을 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이 조사를 나온 것이죠.
예상보다 심각한 사안인 것을 알고 난 뒤 저까지 괜히 긴장이 됐었는데 이 미국인 사회복지사가 정말 친절하고 프로페셔널하더라구요.
3시간 동안 부인과 딸을 차례로 면담했는데 옆에서 지켜 보고 느낀 몇 가지를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 친절로 시작해 친절로 끝난다

이 분 정~말로 친절하시더군요.
천성인지 직업의식인지 모르겠지만 '사회복지사'란 직업은 이런 분들이 해야겠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일단 집에 들어서자 마자 집안 이곳 저곳에 걸려있는 아이들의 흔적을 하나하나 보며 다정한 말을 건넸습니다.
아이들 사진, 아이가 그린 그림, 벽에 만들어 붙여놓은 장식까지 언급하며 긴장해 있는 듯 한 부인에게 "아주 사랑스런 집이네요." 하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끄시더라구요.

자리에 앉아 본격적으로 면담을 할 때도 미리 전화로 무슨 일 때문에 언제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다시 어떤 이유로 이런 자리가 마련됐으며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며 오늘 할 질문들의 목적까지 꼼꼼하게 설명했습니다.
제가 통역을 마치고 나자 다시 한번 천천히 이렇게 물으시더군요.

 

그럼, 이제 제가 질문을 해도 될까요? Yes? 시작해도 되나요? 그럼 좋아요. 이야기를 해 보죠.

 

면담이 이어지는 내내 부인은 자신과 남편을 변호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셔서 그런지 질문의 목적을 벗어나 전혀 상관없는 대답을 내놓기 일쑤였습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결국은 '이 모든 건 사실 별 일 아니다. 가족 간의 스트레스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일 뿐'이라는 대답을 자주 하셨죠.
그래서 결국 같은 요지의 질문을 반복해야 하기도 했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끝끝내 못 듣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충은 아이를 면담할 때도 반복 됐습니다.
아이 본인 생각에 조금 곤란하다 싶은 질문에는 '모르겠다'고 답했고 엉뚱한 소리도 곧잘 했습니다.
한참 질문을 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오늘 하교길에 자신이 구경한 재밌는 광경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구요.
물론 아이들이란 집중력이 부족하니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중요한 질문을 못하고 있는데도 아이의 단어 하나하나에 맞장구를 쳐 주며 끝끝내 잘 들어주더군요.

친절하고 참을성 있다는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을 면담을 마치고 나서 부인에게 안내문을 한 장 내밉니다.
내용을 보니 오늘을 비롯한 앞으로의 조사과정에서 권리를 무시 당하거나 불쾌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complain하라는 안내문이었습니다.

생각중 아~ 이래서 친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나??

 

앞서 말했듯이 친절함과 참을성이 이 사회복지사의 천성인지, 직업의식인지 혹은 불만이 접수될까 봐 몸을 사린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이유야 어쨌든 조사를 받는 사람들이 편안했다는 사실은 제가 증언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긴장해서 얼굴이 잔뜩 굳어있던 부인은 저희가 집에서 나올 때 쯤엔 훨씬 누그러진 얼굴로 미소까지 지으며 배웅을 했으니 말이죠.

하지만 반대로 사회복지사는 그다지 밝은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집 밖으로 나와 제게 "별로 알아낸 것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더라구요.


두번째 -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 아니, 3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별로 알아낸 것이 없다니요??

의아하지만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
아까 말했 듯이 부인과 아이는 곤란한 질문에는 단답형으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No"라고 답하거나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렸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도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그 질문으로 알아내고자 하는 대답을 못 들은 것이 더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사회복지사는 절대로 대답을 강요하지 않더라구요.

막무가내로 면담을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사전에 자세한 고발 보고서를 숙지하고 왔기 때문에 이 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폭언이 있었는지 어떤 신체접촉이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있었는데 그런 사실이 있었냐고 확인을 해도 부인은 부정하거나 대답을 피했습니다.
그래도 '진실이냐 거짓이냐' 묻지 않고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 적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부인의 말이 다 사실일 수도 있지만요.
이것도 그들의 작업 메뉴얼일 테지만 (아마도??) 대답을 강요하거나 유도하거나 하는 일 없이 그저 부인의 동문서답을 잠자코 들어 주었습니다.
'내 질문은 그게 아니다'는 말도, '대답을 하라'는 말도 단 한 번도 하지 않더라구요.
말을 옮기는 제가 답답할 정도로 부인은 질문과 상관없는 말만 반복했지만 그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는 사회복지사의 모습을 보니 '세상에 쉬운 일 없다지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장장 3시간의 면담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별로 알아낸 게 없다"는 말이 나온 거죠.


세번째 - 목적은 돕는데 있다

이 면담으로 알아낸 것이 없는 이유는 부인이나 아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밝힐 의향이 없었기 때문이죠.
남편이 처벌을 받을까 봐 두려워 하고 계셨으니까요.
하지만 사회복지 담당기관은 경찰/검찰이 아닙니다.
처벌이 아니라 상황을 타개할 조치를 취하거나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인 곳이니까요.

이 날도 부인과 면담하는 내내 여기 저기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의 연락처를 건네주더라구요.
아이들과 무사하게 지낼 수 있는 shelter를 제공하는 기관,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 이혼을 원한다면 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까지 동그라미와 별표까지 쳐 가면서 반복해서 알려주었죠.
또한 물리적 폭행만이 가정폭력이 아니라며 부인을 무시하는 언행, 언성을 높여 소리를 지르는 것, 생활비를 주지 않는 것, 말을 하지 않고 고통을 주는 모든 것이 다 가정폭력이라며 만약 부인이 그런 일들을 당했다면 전혀 괜찮은 일이 아니니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을 것을 권유했습니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로 혹시라도 집안에서 누군가 다치거나 큰 소란이 있으면 911에 전화를 하라고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더군요.
아이가 911에 신고하면 부모님이 끌려가는 것 아니냐며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거부하자 911은 경찰이 아니라 아픈 사람이나 다친 사람을 도와주러 오는 것 뿐이라며 차근차근 아이가 알아듣게 설명을 했습니다.

조사를 받는 입장에서야 두려움과 긴장으로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지만 제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사회복지사가 파견된 이유는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것일 뿐 단죄하거나 처벌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남편을 다른 곳에 머물게 하는 제재를 가하거나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조치를 할 수도 있다고 하긴 하셨지만 만약 아이들이 위험하다면 그건 당연히 해야할 일이잖아요.


그간 Social Worker라는 말만 들었지 이 분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는 잘 몰랐는데 알고 나니 간단한 일이 아니네요.
사실 저는 이런 사연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기분이 개운치 않았거든요. 담배2

그런데 이 분들은 하루에도 이런 면담/조사 스케쥴이 몇 건씩이나 있더라구요.
물론 일을 제대로 해서 삶의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보람이 있겠지만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위해 일하는 분들께 박수 쳐드리고 싶네요.

여러분,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