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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법원에서 날아오는 "행운의 편지"

by 이방인 씨 2012. 7. 25.

삼일전에....날아오고야 말았습니다...
미국판 "행운의 편지" 가 말이죠.
행운의 편지라 함은...다들 아시죠?
"이 편지는 0000년에 어디에서 시작되어..." 로 시작되서 누군가에게 미친듯이 복사해서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 재수꽝! 행운의 편지 말입니다.
미국인들의 재수꽝 편지는 바로 이겁니다! 

Juror 는 배심원이라는 뜻으로, 이 편지는 배심원 소환장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에는 시민 배심원 제도가 있습니다.
재판이 열리는 지역의 주민들 중, 랜덤으로 선발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배심원 소환장이 배달됩니다.
참석할 수 있는 사람은 소환장에 쓰여진 날짜에 정해진 법원으로 가면 되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참석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이유를 체크해서 다시 법원으로 편지를 반송하면 되는데요.
A 부터 G 까지 7가지의 면제 사유중에는 미국 시민권자가 아닙니다, 18세 미만입니다, 이 지역 주민이 아닙니다, 영어실력이 부족합니다 등등 이 있습니다.
랜덤으로 오다보니 저는 이제껏 딱 한번 받았을 뿐이지만, 너무 자주온다 싶을 정도로 받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딱 한번 날아왔던 소환장을 받았을 당시에 저는 18살 미만이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답니다.

그런데 제가 이 배심원 소환장을 "행운의 편지" 라고 쓴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ㅋㅋㅋ
미국의 배심원 제도는 형사사건일 경우, 원래 12명을 정원으로 하여 12명의 만장일치가 있어야만 판결을 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각 주마다 배심원 정원과 평결방식이 다양해져서 8-9명 이상이 찬성하면 유죄판결이 가능한 곳도 있고, 정원이 6-8명으로 적은 곳도 있다고 하네요.

저는 참여해 본 경험이 없지만, 예전에 저희 이모부께서 배심원으로 참석하셨을 때 아주 고생을 하셨다더라구요.
그 당시에는 12명의 만장일치가 있어야만 판결이 끝나고 배심원의 의무를 마칠 수가 있었는데요.
미국인들은 워낙 토론을 치열하게 하고, 왠만해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도무지 이 만장일치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겁니다.
원래도 그 날 스케쥴을 뺄만큼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저의 이모부는 아주 된통 당하신 모양이더라구요.
12명이 긴 테이블에 앉아 문 닫힌 방 안에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는데, 결론이 나지 않으니 점심 먹고 다시 모이고, 그 날 결론이 나지 않아 집에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모여서 모두가 지친 끝에 결국 만장일치를 보긴 했는데 아주 파김치가 되셨다고 합니다.
재밌는 것은, 여럿이 모여서 무엇을 할 때도 남의 눈치를 안 보는 미국인들 답게 10명이 찬성을 했는데 나머지 2명이 곧 죽어도 뜻을 굽히지 않더라는군요.
나머지 10명도 각자의 뜻을 존중해야 하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한숨을 푹푹 내쉬더라네요. ㅋㅋㅋ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보니 미국인들도 배심원의 의무를 이왕이면 피해갔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지요.
사실 저희 이모부말고도 예전에 대학 교수님도 강의를 마치고 말씀하시길,

미안하지만 내일은 내가 교수실에 없을 걸세.
내일 배심원 소환날이라 시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엿 먹으러 가야되거든.

강의실에 있던 저희 모두는 직접 참여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주변에서 익히 들었던터라 교수님 말씀의 뜻을 알고 모두들 빵 터지고 말았죠.
타인의 인생을 놓고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논의가 계속되니 왠만해선 타협하기가 힘든 것이죠.
모두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회의가 엿가락처럼 늘어나도 한숨만 쉴 뿐, 빨리 결정하자고 화를 내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또한 때로는 죄질이 나쁘거나 증거가 확실할 경우, 빠른 시간내에 만장일치의 고지에 다다르기도 하구요.
주변 미국인들을 보니, 배심원의 의무를 약간 귀찮아 하긴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당연히 참석해야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사법제도를 적극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구요.
저도 한번은 해 보면 좋을 경험인 것 같아서 은근히 배심원 소환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글 첫머리에 쓴 3일전에 날아왔다는 편지는 제가 아니라 저희 오빠를! 소환했답니다. ㅋㅋㅋ
아놔~ 이거...저는 운수가 좋다고 해야되나요....?

언젠가 제가 배심원의 의무를 다하는 그 날! 생생한 현장을 포스트 하겠습니다.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