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미국 동료들과 한식당에서 밥 먹은 이야기: 맨밥은 힘들어~

by 이방인 씨 2019. 12. 28.

오늘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말이죠, 세 명의 동료들과 함께 한국 음식점에 갔습니다. 세 명중 두 명은 캘리포니아 출신 미국인이고, 나머지 한 명은 인도계 미국인이었죠. 저희 넷은 사무실에서 같은 쪽에 줄지어 앉아 일하는데다가 모두 여성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금방 친해져서 자주 붙어 다니곤 합니다. 그런데 미국인 중 한 명이 LA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음식을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나 김치를 어마 무지하게 좋아하죠. 그래서 틈만 나면 한국 음식점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 날이 바로 오늘이었네요.

 

LA 출신 동료를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베지테리언인 데다가 한국음식을 한 번도 안 먹어봤다기에 약간 걱정이 됐는데 정 먹을 게 없으면 비빔밥이라도 추천하자 싶어 그냥 데리고 갔습니다. 제가 고른 한식당은 반찬을 여러 가지 주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주문 메뉴에 상관없이 10가지 이상의 다양한 한식 반찬을 소량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오늘 먹은 반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금치 무침, 고사리 무침, 진미채 볶음, 어묵 볶음, 감자 맛탕, 배추 김치, 오이소박이, 멸치 볶음, 작은 게 볶음, 무생채, 계란말이, 브로콜리 두부무침, 무 장아찌

다행히 채소를 이용한 밥반찬이 많이 나와 베지테리안 동료들도 아주 좋아했습니다. 주메뉴로는 저는 돌솥 비빔밤을, 채식주의자 동료들은 야채 순두부찌개를, 그리고 LA 출신 동료는 김치 순두부찌개를 먹었죠. 오우~ 그런데 LA 출신 미국인은 역시 다르더라고요. 

 

김치를 어찌나 살~벌~하게 잘 드시는지...

 

김치 순두부를 시켰으면서, 반찬으로 나온 김치마저 찌개에 넣어 같이 먹어버리더라구요.

 

다행히 동료들이 모두 너무 맛있다며 잘 먹어서 저도 즐거웠는데, 그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니 희한한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맨밥을 못 먹어요!

한국인에게 쌀밥이 어떤 음식입니까. 맨밥만 먹어도 맛있고, 김치만 있어도 한 공기 뚝딱이며, 매운 찌개와 함께라면 2-3 공기도 먹을 수 있는 주식이자 soul food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밋밋한 맛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밥은 먹기 싫어한답니다. 캘리포니아의 미국인들이 처음 밥을 접하게 되는 경로는 대부분 중식 fried rice (중국식 볶음밥)이나 멕시칸 rice (멕시코식 양념이 들어간 밥)인데 둘 다 한국의 쌀과 달리 낟알이 가늘고 긴 쌀로 만들어서 찰기가 적고 아주 가볍습니다. 게다가 다른 부재료와 양념을 섞은 밥이기 때문에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는 밥 요리이지요. 

 

미국에서 Fried Rice라고 부르는 중식 볶음밥입니다.

이건 Mexican Rice

이런 밥 요리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한국식 쌀밥을 낯설어합니다. 하얀 쌀밥은 국 또는 찌개를 비롯한 반찬들과 함께 먹어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건데 그런 식문화에 익숙지 않은 미국인들은 도대체 이 밥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잘 모르는 겁니다. 


오늘 같이 밥을 먹은 동료 세 명이 밥 먹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재밌던지요.

 

LA에서 나고 자란, 김치에 환장하는 B는 한식에 나름 익숙하지만 맨밥은 도저히 취향이 아닌지 공깃밥을 받자마자 뚜껑을 열고 간장을 휘~휘~ 두르고 다시 밥뚜껑을 닫아놓더라고요. 그러더니 저를 보며 살~짝 부끄러워하며 말하기를,

 

"이렇게 해 놓고 한참 있다 먹으면 맛있어. 난 솔직히 맨 밥은 못 먹겠어."

그러더니 조금 있다 뚜껑을 열고 밥 위에 엄청나게 큰 김치 조각을 넣더니 같이 먹더군요. 그러니까 B는 김치 순두부에 생김치를 추가로 넣고, 간장을 부은 밥 위에 또 김치를 얹어 순두부와 함께 먹은 겁니다.

 

너어... 는
아마 전생에 김치를 못 먹어 죽은 한국인인 모양이로구나...

 

그다음으로, 한국 음식은 처음 본다는 T는, B가 하는 걸 곁눈질로 보더니 간장을 한 껏 뿌리고 소금+후추를 (앗, 아앗... 그건 설렁탕 시키는 사람들 먹으라고...) 왕창 치더니 위에 순두부찌개 국물까지 잔뜩 뿌려서 먹더라고요.

 

주... 죽는 거 아냐?

 

게다가 저한테 이 여러가지 작은 음식들을 (반찬) soup (순두부 찌개)에 다 같이 넣어서 섞어 먹는 거냐며 반찬 그릇을 집어 들길래, 제가 황급히 말렸더랬죠.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날 나온 밑반찬들은 찌개에 넣었어도 그다지 큰 사단은 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단지 순두부 찌개가 잡탕찌개로 변하긴 했겠죠.

 

마지막으로 심히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는 인도계 미국인 S는, 제가 T를 말리고 정신 차려 보니 이미 밥에 고추장 소스를 들이부어서 하얀 부분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어요. 밥이 빨간 정도가 아니라 시뻘~겠어요.

 

아아...
아아...
망했다... 난 이제 모르겠다.

  늬들 멋대로 드세요. 

 

역시 포기하면 마음 편하다던가요? 저는 동료들이 하고 싶은대로 놔두고 제 비빔밥에 열중하여 맛있게 먹었어요. 그런데 밥에는 생화학적 테러를 가한 저들도 찌개와 반찬은 다 맛있었는지 싹싹 비우고 심지어 반찬 몇 개는 리필까지 해서 잘 먹더라고요. 다들 너무 맛있었다며, 오길 잘했다기에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왔답니다. 동료들은 다음에 또 와서 그 때는 해물파전에 도전해 보고 싶다니,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사뭇 기대가 되네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