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미국 공항에서 본의 아니게 미국인들 놀래킨 사연

by 이방인 씨 2012. 11. 3.

제가 이민 오던 날, 운 좋게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한 적이 있던 입국심사관을 만났던 이야기 전에 해드린 적이 있죠?

2012/08/19 - [I'm a stranger/캘리 이야기] - 미국 이민 오던 그 날, 입국심사대의 기막힌 행운

사실, 이 날에 얽힌 또 하나의 깨알같은 에피소드가 있답니다.
저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샌프란시스코 할머니댁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병풍을 보고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지 뭡니까...
제가 본의 아니게 미국인들을 놀래켰던 13년전 여름으로 돌아가봅시다~!

입국심사까지 다 마치고, 공항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었던 그 때! 저희 가족 네 명은 전부 다 각자 책임져야할 어마어마한 양의 이민짐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 짐들 중에는 할머니의 지인분이 할머니께 보내시는 병풍도 포함되어 있었죠.

 

 

이런 6폭짜리 병풍이었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존하자면 그 당시에 대한항공에 한 10만원인가를 내고 싣고 왔었던 것 같아요.
6폭짜리라도 접어놓으면 무거운데다가 엄청나게 길더라구요.
그걸 공항 카트에 싣고 빠져나와야 되는데,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까 아, 글쎄 이 병풍이 제 카트에 올려져 있지 뭐겠어요??

 

왜????? 가족 중에 제일 어리고 힘 없는 나한테 왜???? 엉엉

 

이 의문은 햇수로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오빠 모두가 정신이 없어서 그랬던건지 아니면 정신이 없는 척하며 제게 떠넘긴건지... 무서운 진실을 알게될까 봐 아직까지 사건의 진상을 가족들에게 묻지 못하고 있습니다. -.-z

그런데 어쨌든 저도 같이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제게 주어진 그 무거운 짐을 거부할 생각조차 못한 채 낑낑거리며 카트를 밀고 나갔죠.
카트 맨 위에 길게 눕혀놓았는데 무게보다 길이가 도저히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그런데 병풍을 감당 못한 건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게이트를 빠져나가자 밖에서 저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미국인들이 전부다 '저건 대체 뭐야...???' 하는 눈으로 쳐다보는게 아닙니까.
아마 그 날 그 공항에서 가장 공격적인 수화물을 끌어야했던 게 저였을 거예요. ㅠ.ㅠ

그런데!! 정작 그들을 놀래킨 건, 보기 드문 부피의 병풍이 아니었습니다.
저를 쳐다보던 군중들 중 한 열 두세살 쯤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애가 외친 영어 한 마디를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Oh my God. Look at that girl's fingers!  헉! 저 여자애 손가락좀 봐봐!

 

저 여자애는 저를 말함이고! 좀 보라는 손가락도 제 손가락이지요!!
왜?? 그들은 제 손가락을 쳐다봐야만 했을까요....?
정답 사진을 보시면 웃지 않으실 수 없을 겁니다.
.
.
.
.
.
.
.

 

(이 사진은 제가 구글 검색을 통해 찾아서 주인분께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게재를 허락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고맙다 현중아"님 blog.daum.net/thdmsgml )

 

그렇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8월초! 한국에서는 여름에 한창 봉숭아물을 들일 시기였던 것이죠.
저 역시 3-4일 전에 봉숭아물을 들인터라, 손톱 뿐만 아니라 손가락 중간까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답니다.
이 사진은 아주 색이 고운 빨간색이지만, 당시 제 손가락은 너무 진하게 물이 들어서 군데군데 검은 빛마저 감돌았거든요.
한국에서라면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겠지만, 미국인들은 어찌나 신기하게 쳐다보던지요.
심지어 당시 제가 얼핏 알아들은 영어로 이런 말도 하더라구요.

 

도대체 뭘 먹은거야?? (그들 입장에서는 손에 음식물 소스가 배었다는 추측을 했나봐요.)

헐아니 도대체 뭘 먹으면 이리 되는지 내게도 좀 알려줘보오~!!

 

저는 안 그래도 병풍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난생 처음보는 외국 사람들이 시선집중해서 제 손가락만 보고 있으니 너무 당황스럽더라구요.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인천공항처럼 넓지가 않아서 게이트와 기다리는 사람들의 거리가 비교적 가깝습니다.
미국인들 특성상 큰 소리로 수군대는 사람은 어린 애들 뿐이었지만  제가 지나가는 동안 쭉~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어머니는 왜 하필 이 때 봉숭아 물을 들여주셔야만 했을까?
게다가 색은 또 왜 이리 독하누?
꽃과 잎의 비율이 안 좋았나? 아님 명반을 너무 넣었나? 그것도 아니면 너무 오래 둔걸까?
아~~ 누굴 탓하리오. 나는 왜 손가락에 미리 크림 바르는 것을 그리 귀찮아했을까..... ㅠ.ㅠ

 

어쨌든 다행히도 마중나온 이모가 빨리 저희 가족을 반겨주었기 때문에 저는 무거운 병풍과 그보다 더 버거웠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봉숭아 구경 못하신지 오래된 이모와 할머니는 봉숭아물 진하게 잘 들었다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예뻐해주셨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그 이후로는 한번도 봉숭아물을 못 들여봤네요.
요즘도 한국에서는 첫 눈이 내릴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낭만을 가장하여 순진무구한 소녀들을 우롱하는(?) 이야기를 하나요?? ^-^

행복한 토요일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참고로 제가 그렇게 고생 끝에 모셔온 병풍은 글 첫머리에 쓴대로 창고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지난 14년간 그 병풍이 한 일이라고는 우연히 제 눈에 띄어서 오늘 이 글의 소재를 제공해 준 것 뿐이네요. 그래서 운명처럼 제 카트에 올라와 있었던 걸까요???

 

 

그냥 오빠가 떠넘긴거야~ 망할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