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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무식한(?) 미국인들을 위한 해명 1,2,3

by 이방인 씨 2012. 11. 2.

제 블로그의 몇몇 글들을 살펴보면 보편적 미국인들은 한국 기준으로 보면 일반상식이 부족하다고 언급하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기준을 한국인으로 삼은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한국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흔히 알고 있을 인문, 교양, 문화, 예술, 역사 등의 상식을 모르는 미국인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요즘 세대보다 더더욱 잡다한 상식 교육을 혹독하게 받고 자라신 중장년층 이민 1세대 어른들은 미국인들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시죠.
실제로 제가 대학에서 만나 본 미국 친구들 중에서도 한국의 중학생이 알고 있을 법한 작가라던지 예술작품을 듣도보도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구요.
단적인 예를 말씀드리자면 어떤 친구는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를 제 입을 통해 처음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 유명 작가나 작품들을 알고 있어야만 유식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본 교양교육에 대한 양국의 의식이 이렇게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인들의 상식부족에 대해 변명이 아닌 해명을 하자면 다음의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 - 실리주의와 Down- to- earth 태도

미국인들의 삶을 관통하는 생활철학이라면 역시 실리주의죠.
살아가는데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인데, 미국에 와보니 이 실리주의란 것이 여러모로 편하긴 하더군요. ^^
대표적으로 여성들이 일상에서 화장이나 옷차림에 소탈한 것도 매일매일의 생활에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실리주의가 깃들어 있는 것이죠.
또는 수학시간에 계산기를 사용하는 것과 과학 과목의 공식을 외울 필요없이 시험시간에 선생님이 아예 표로 나누어 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산기라는 물건이 있는데 굳이 불필요한 암산을 할 필요 없고, 공식이란 실제 문제를 풀기위해 사용할 줄만 알면 되는 것이지 외워야하는 것이 아니란거죠.

실리주의와 그 궤를 같이하는 태도가 바로 Down-to-earth 입니다.
공중에 붕 뜬 것이 아니라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뜻의 표현으로, 뜬 구름 잡지 않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태도라는 뜻이죠. 
미국인들에게 down-to-earth 라는 말은 긍적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허황되지 않고 겉치레 없는, 소박한 삶의 자세를 가졌다는 뜻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문화권에서 인문교양 교육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데미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또는 드가, 고갱, 샤갈의 작품들을 알고 있는 것이나 혹은 세계의 나라이름과 수도이름을 줄줄 꿰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일상을 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스스로 관심을 가지는 이들을 제외하면 미국인들에게 인문교양상식이란 건 "쓸모 없는" 메모리의 낭비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두번째 - 최소한의 과목만 가르치는 공교육

하지만 단지 실제적 쓸모가 없어서 모르는 것만은 아닙니다.
가장 큰 원인은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죠.

제 미국친구들이 저의 한국 이야기를 듣다가 가장 놀라는 대목 중 하나가 바로 초중고 12년 내내 음악, 미술, 체육이 반드시 정식 학과목으로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초등학교의 사정은 제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공립중고등학교에서 예체능이 반드시 3-4년 내내 들어야하는 필수교과목인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교육구와 학교마다 다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부분 1년 정도 들으면 의무 코스를 마치게 되거든요.
미국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가 처음 학교배정을 받으러 갔던 샌프란시스코 교육국에서 심사관이 한국에서 가져온 제 성적표를 보고 대체 음악, 미술, 체육을 왜 이리 많이 수강한 거냐며 황당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기도 했었어요. ^^;;
미국 학교의 음악, 미술, 체육은 대부분 특별활동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론 수업은 없지만 학창시절 내내 예체능 특별활동을 하는 셈이죠.

저는 한국에서 음악, 미술, 체육 이론 수업을 내내 받고 왔기 때문에 DNA 검사도 필요없다는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해 인상파 화가, 입체파 화가를 거쳐, 올림픽 마크를 쿠베르탕이 그렸다는 사실도 전부 시험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반면 어렸을 때 미국에 건너왔거나 여기서 태어난 제 사촌동생들은 거의 다 그런 쪽으로 지식이 부족합니다.
오죽하면 저희 삼촌 이모들이 미국에서 자란 본인들의 자식들에게 무식하다고 농담을 할까요. ㅋㅋㅋ

비단 예체능 뿐만이 아니라 여타 인문, 문화, 역사, 철학 등도 U.S History 를 제외하면 선택과목일 뿐 필수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제가 종종 지적한 세계지리나 역사, 국제사회 정세를 모르는 미국인들의 상식부족은 배우지 못한데 기인하고 있는 셈이죠.

 

세번째 - 스페셜리스트 (Specialist) 를 지향하는 사회

가르쳐주지 않아도 관심있는 사람은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고 배우더군요.
오히려 원하지 않는데도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보다 혼자 좋아서 공부하는 과목이 더 성과가 좋은 법이죠.
미국 아이들 중에서는 교과목과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스스로 깊이 파서 놀랄만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마 한국처럼 학교교과에 많은 시간을 뺏기지 않아도 되니 스스로 알고 싶은 것들을 공부할 여유가 있는 것이겠죠.
이렇게 한 분야에 올인해 뛰어난 지식과 수준을 갖추게 된 사람을 specialist 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인들처럼 다양한 분야에 일정 수준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generalist 라고 부르죠.

 


미국에는 자신의 성향을 이렇게 specialist 혹은 generalist 라고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각자의 성향에 맞는 일과 취미를 가져야 한다는 말도 많이 하죠.

제가 한미 양국에서 살아본 경험으로 이야기하자면, 미국은 아이가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성향대로 자랄 가능성이 높은 반면, 한국은 천성과는 관계없이 모두가 generalist 로 키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학교에서 10개 이상의 과목을 배우고 음악 미술 학원에 심지어 줄넘기 과외까지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요즘 한국사회는 분명히 generalist 들을 키워내고 있는 것이겠죠.

사실 저는 specialist 와 generalist 둘 중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개개인의 성향에 맞는 교육 방침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죠.

언젠가 제가 미국인들은 한국인과 비교하면 조금 단순하고 순간적인 두뇌회전이 느리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밑에 이런 악플이 달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꼴값하고 있네. 그렇게 잘났다고 떠드는 한국에는 왜 스티브 잡스가 없냐?

 

댓글 매너가 턱 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네요.
미국인들보다 머리 좋고, 공부 잘한다는 한국인들 중에 왜 스티브 잡스가 없냐는 그 분의 질문에 이 글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의 성향을 고려하기보다 모든 것을 다 엄청나게 잘하는 초 울트라 수퍼 generalist (아마도 이것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엄친아 엄친딸"이 될까요?) 가 되어야 한다는 풍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동안 제가 본의 아니게 상식부족이라 성토해왔던 미국인들을 위한 해명을 해 보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늘 말씀드리지만 제 글은 미국 전역의 사정이나 미국인들 모두를 일반화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