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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대통령의 여인들! 미국이 열렬히 사랑한 First Lady들

by 이방인 씨 2012. 12. 1.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여성들이 자주 쓰곤하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Behind every great man, there is a great woman

위대한 남자 뒤에는 항상 위대한 여성이 있다.

 

얼마전 미주판 중앙일보에서 미국 First Lady들의 역사에 대한 기사와 사진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이 말이 떠오르더라구요.
한국식으로 번역하면 "훌륭한 남자 뒤에는 훌륭한 여성의 내조가 있다" 쯤 될까요?
사실 이 말은 굉장히 여성을 존중하는 듯 들리지만 6-7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쓰던 말이라서 지금 시대에는 좀 뒤쳐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12년을 살아가는 세대로서 말한다면 Behind (뒤에) 가 아니라 Beside (옆에) 정도로 고치면 어떨까 싶네요.
신문에서 소개한 First Lady 들이야말로 뒤가 아니라 옆에서 혹은 전면에 나서서 대통령 남편들을 보좌한 대단한 아내들이랍니다.

세계 최초로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미국이지만, 대통령의 역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답니다.
First Lady 라는 명칭을 탄생시킨 나라 역시 미국으로, 제 4대 대통령인 James Madison의 부인 돌리 매디슨이 사망하자 애도와 존경을 표시하는 의미로 First Lady 라는 수식어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초대 대통령인 George Washington 부터 이번 재선에 성공한 44대 대통령 오바마까지 미혼인 상태로 당선이 된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옆에는 늘 First Lady 가 있었습니다.
미국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점점 더 그 역할이 커지긴 했지만 모든 First Lady들이 다 남편과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동안 백악관을 거쳐갔던 안주인들 중 지금까지도 First Lady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1. 최초의 백악관 여주인 Abigail Adams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재임기간에는 백악관이 없었기 때문에 최초로 백악관에 입성한 대통령은 2대인 John Adams 였습니다.
그의 부인 에비게일 애덤스가 최초로 백악관의 살림을 맡았던 안주인이 된 것이죠.
건국 초기였던 미국의 불안한 정세 탓에 존 애덤스는 늘 예민했다고 하는데 온화한 에비게일의 내조가 매우 큰 위안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내조에만 전념하는 전통적 여인상과는 거리가 멀어서 영국 VS. 프랑스의 문제 등의 정치적 안건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남편에게 조언을 했다고 하네요.
또한 그녀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기도 하답니다.
남편과 마찰이 있을 때도 본인의 뜻을 굽히지 않고 관철시키기 위해 편지로 부부싸움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남아있습니다.
이쯤되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녀는 자녀들의 교육에도 현명한 어머니였는데 아들인 존 퀸시 애덤스는 미국의 제 6대 대통령이 되기도 했습니다.

 

2. 최초의 First Lady Dolly Madison

 

 

앞서 설명한대로 가장 최초로 First Lady 라는 칭호를 얻은 돌리 매디슨입니다.
제 4대 대통령인 James Madison 의 아내였던 그녀는 미국인들에게 남편보다 더 큰 사랑을 받은 First Lady 이기도 합니다.
1812년 미국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영국과의 전쟁을 하던 중, 백악관에 불이 나려고 하자 돌리는 조지 워싱턴의 초상화와 백악관의 중요한 물품을 챙겨 탈출하는 기지와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하네요.
그 때 그녀가 지켜낸 워싱턴의 초상화는 현재 미국 국립초상화박물관에 소중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따뜻한 마음과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딜 가나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누군가 그렇게 사람들을 거느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국민들을 거느리는 비결이요??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을 뿐더러 바라지도 않습니다.
오직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뿐이예요.

 

3. 최장기간 First Lady Eleanor Roosevelt


 

드디어 초상화에서 사진의 시대로 넘어왔네요.

 

제 32대 대통령인 Franklin Roosevelt 는 그야말로 징~하게 오래 백악관에 머무른 대통령입니다.
대통령 중임제한이 없었던 당시 루즈벨트는 무려 4선에 성공을 해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대통령직에 있었답니다.
그의 부인이었던 엘러노어 루즈벨트는 강인한 First Lady 의 표상이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다녔던 남편을 대신해 직접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대공황 극복을 위한 New Deal 정책의 진척상황을 점검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경제 대공황을 극복한 뉴 딜 정책이야말로 루즈벨트를 4번이나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은 1등 공신이죠.

그녀는 남편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신문 칼럼으로 비판을 할 만큰 대담한 성격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겨우 10살에 고아가 되어 온갖 고생을 하며 자란 탓에 돈을 "눈물의 종이조각" 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애잔한 일화도 전해지네요.
가난한 자와 약자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권보호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차별받는 흑인들과 여성들을 위해서라면 뜻을 굽히는 법이 없었기에 최초의 여성인권위원장이 되었죠.
평생을 사회운동에 헌신했던 그녀는 말년에 자신의 삶을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만약 내 인생의 이야기가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평범한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듯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 하나로 결국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4. First Lady 의 상징 Jacqueline Kennedy Onassis


 

 

제 35대 대통령 John F. Kennedy 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는 설명이 필요없는 아름답고 우아한 First Lady의 대명사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죠?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것으로도 모자라 뛰어난 패션센스까지 갖춘 그녀는 31살의 젊은 나이에 백악관의 안주인이 되었습니다.
재키 스타일은 금새 미국인들을 사로잡았고, 그녀는 당대 최고의 패셔니스타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남편인 존 F. 케네디가 재클린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여성이었던 마릴린 먼로와 염문에 휩싸이고, 갓 태어난 아이마저 잃으면서 재키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결국 남편이 암살 당하는 비극까지 일어나자 미국인들은 그녀에게 지극한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재키가 영원히 케네디의 아름다운 미망인으로 남아주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 맨 뒤에 붙은 Onassis가 말해주듯이 재키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했고, 이로 인해 실망한 미국인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죠.
그러나 개의치 않고 당당했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평생을 한 사람만 품고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예요. 왜 여러분은 하지 못하는 일을 나에게 강요하나요?

 

새로운 사랑 앞에 용감했던 그녀지만, 안타깝게도 두번째 남편인 오나시스와도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혼 당시 받았던 엄청난 액수의 위자료와 함께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재키는 출판업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결국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과 매혹적인 모습만은 아직도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죠.

 

5.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 리더 Hillary Clinton


 

 

뛰어난 여성 리더의 대표적 예로 친숙한 Hillary Clinton 입니다.
재임기간중의 엄청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제 42대 대통령 Bill Clinton 의 부인이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클린턴의 외도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시 받아준 용서의 아이콘입니다. ^^;;
2008년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였지만 오바마에게 간발의 차이로 경선에서 패하고 현재는 국무장관직에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차별에 강하게 반발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NASA에 편지를 보내 우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여자는 선발하지 않는다" 는 답변에 불 같이 화를 냈다는 일화도 전해지네요.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홀로 알래스카로 여행를 떠나 연어 통조림 공장에서 내장을 제거하는 아르바이트로 여행비용을 충당했다고 합니다.
그 여행에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해병대에 지원한 것이었죠.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했고, 격분했다고 합니다.
정말 기상이 용솟음치는 분이시네요. ^^;;

또한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빌 클린턴과 결혼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는군요.

 

그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였기 때문이죠.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멋지십니다~~ ㅎㄷㄷ


 

6. 검은 재키로 불리는 그녀 Michelle Obama


 

 

저희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시는 미쉘 오바마입니다. ^^
미국 언론에서는 간혹 그녀를 재클린 케네디에 견주어 Black Jackie 라고 부른답니다.
그만큼 그녀의 우아한 미모와 패션센스가 뛰어나다는 소리죠.
저도 사진을 찾으러 구글 검색을 했더니 연관 검색어로 미쉘 오바마 패션, 미쉘 오바마 드레스가 뜨더라구요.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 최초의 대통령으로 세계적 유명세는 훨씬 대단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미쉘 오바마 역시 만만치 않은 여성이랍니다.

그녀는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을 때 충격받았던 일로 BMW를 소유한 학생들을 본 것이었다는 말을 할 만큼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제적 차별, 인종적 차별을 모두 극복하고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일류 로펌의 변호사가 되었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사회봉사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오마바와는 시카고의 한 로펌에서 만났는데 오바마의 연설하는 모습에 반해 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고 하네요.
역시... 연설할 때의 오바마는 그 시절에도 멋졌던가 봅니다. ^^

남편이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 당시, 미쉘은 이미 성공한 변호사였지만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남편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아름답고 유능한 흑인 여성의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에 많은 미국인들이 호감을 가졌습니다.
얼마전 있었던 대선에서도 미쉘의 인기가 후보였던 오바마나 롬니를 능가할 정도였으니 과연 대단하죠?

재클린 케네디처럼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른 미쉘의 패션 비결은 당당함이라고 합니다.
마치 헐리웃 여배우처럼 화려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면을 보면 공식석상에 고작 40불 짜리 드레스를 입고 나올 정도로 소신이 뚜렷한 First Lady 입니다.
또한 백악관 뒷마당에 직접 온갖 채소를 심어 어린이들과 나눠먹을 정도로 특히 미국 아동건강에 많은 관심을 기울리고 있습니다.
과연 미국인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죠?

 

오늘은 남편은 물론이고, 미국 국민들이 열렬히 사랑한 First Lady 들에 관한 이야기였는데요.
정말 대~단한 여성들이죠?
같은 여자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정말 위대한 남성 옆에는 늘 위대한 여성이 있나 봅니다. ^-^

즐거운 토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