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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너무 솔직해서 날 난감하게 하는 미국인들

by 이방인 씨 2012. 12. 28.

평범한 미국인들이 가식/내숭 없는 솔직한 사람들이라는 건 저도 몇 번 말씀드렸고 아마 여러분의 짐작도 그러하실 텐데요.
말과 행동 모두 왠만하면 직구 승부를 하기 때문에 속마음을 파악하느라 고민할 필요도 없고 같이 어울리기 편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간혹 너~무, 지나치게, 필요 이상으로, 솔직한 나머지 저를 당황시키는 때도 있답니다.
제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산뜻한(?) 이야기, 한번 들어보세요.

 

첫번째 - 안 좋은 일일수록 널리 알려라??

얼마전에 한 백인 할아버님을 만났는데 겉으로는 60대 초반으로 보이시더라구요.
절 보자마자 요즘은 늙어서 힘들다고 하시길래 제가 65세도 안되셨을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이냐며 웃었더니

 

65세? 거기다 최소한 10살은 더 보태야 돼!

 

하시길래 깜짝 놀랐습니다.
속으로 '백인' 치고는 엄청 젊어보이신다고 생각했죠. ^^;;
처음 만나서 거기까지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할아버님이 예고도 없이 불쑥 말씀하십니다.

 

우리 집사람은 알츠하이머 환자야.

 

헉  그.. 그러십니까??

 

말도 잘 못하고 실수도 많이 해서 큰일이야.

그러세요... 아휴~ 정말 안되셨네요...

 

생전 처음 본 할아버님이 그나마도 본 적 없는 할머님의 치매 이야기를 털어놓으시면 도대체 어떤 반응을 해야할까요.
처음에는 할아버님의 신세한탄일까 싶어서 듣고 있었는데 물론 슬픈 마음도 있으시겠지만 너무 캐쥬얼하게 수다를 떠시길래 오히려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가 더 어색해 보였습니다.

이 할아버님 말고도 미국인들은 본인이나 혹은 주변사람들의 병 이야기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잘 합니다.
제가 처음 대학 갔을 때는 교수님이 수업 첫 날 자기소개를 하시다가 갑자기 루게릭을 앓고 계시다는 부인 이야기를 꺼내서 그 때도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첫 날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셔도 괜찮나?' 생각했었죠.

사실 한국에서는 큰 병이나 인식이 좋지 않은 병에 대해서는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알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잖아요?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제가 말씀드린 예처럼 묻기도 전에 먼저 말하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는 예전에 알바할 때 식당에 처음 온 손님이 주문대 앞에서 "오늘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라고 말한 적도 있답니다.
맙소사~ 주문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던 저는 몸둘 바를 모르다가 "정말 유감이네요" 하고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데 그 손님이 말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평안한 죽음이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기념하려고 가족들과 식사를 하려고 왔죠.

아..예... 그러셨군요... 다행이네요..

 

저한테 말씀 안하셨더라면 저도 평안한 주문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
이렇게 안 좋은 일도 숨김없이, 자발적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미국인들 때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많답니다.

 

두번째 - 나는 너와 네 남자친구가 지난 밤에 한 일을 알고 싶지 않다!!

소제를 보고 짐작하셨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성생활에도 솔직합니다.
아마도 제가 젊은 여성들과 어울려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도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일이 꽤 있습니다.
한번은 여성 친구 하나가 남자친구의 워크샵 사정 때문에 3주 정도인가 떨어져 지내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수다 떨다가 그 친구가 말을 꺼내더라구요.

 

어제 남친한테 전화왔었는데 못 말려~

왜?

밤에 보고 싶다고 전화가 왔는데 얘기 들어보니까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거였어. ㅋㅋ

 

뭐 그 자리에 미성년자는 없었으니가 여기까지는 이해한다고 칩시다. ^^;;
그렇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고 듣고 싶을리도 없잖아요?!!
왜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계속 진행하는건데?? ㅠ_ㅠ

아아악~~~ 내 귀는 이제 타락했다!! 그것도 100% 타의에 의해서!!

게다가 귀로 듣고 뇌가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니....

아아악~~~ 내 뇌도 이제 타락했다!! 하지만 이건 100% 자의였어!!!

아휴~ 암튼 Sex and the City가 미국 여자애들도 수 없이 버려놨어요. 쯧쯧쯧...

 

세번째 - 그...그 동안 실례가 많았습니다

제가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강의를 들을 때 겪은 일입니다.
굉장히 쉬운 클래스였는데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취미 삼아 많이들 들으셨어요.
그 중에 굉장히 통통하시고 목소리 걸걸하신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수업시간에 어찌나 잘 떠드시는지 수다내공이 보통이 아니신 분이었어요.
굉장히 사교성이 좋으신 데다가 매번 수업 시간에 작은 사탕이나 초콜렛 같은 걸 주변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눠 주셨기 때문에 저도 여러번 얻어 먹었었죠.
제 머리속에 그 분은 부담없는 아주머니로 입력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저를 후덜덜 떨게 만드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학교에서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창피했던 순간 (the most embarrassing moment)에 대해 발표를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 차례가 되자 이런 이야기를...

 

내 인생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때는 우리 아들이 보는 앞에서 체포되서 수갑 찼던 순간이예요.

 

뭥미응??? 방금 "체포" "수갑" 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에이~ 저 아주머니가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아직도 이렇게 리스닝이 안되나?? 영어 공부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겠어!!

그러고 있는 와중에도 아주머니의 고백은 계속 됩니다.

 

그 후 8년간 복역을 했는데 아들이 면회올 때마다 울었어요.

 

!!!!!!!!!!!!!!!!!!!!!!!!!!!!!!!!!!!!!!!!!!!!!!!!!!!!!!!!!!!!!!!!!!!!!!!!!!!

제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실제로 상습 폭행과 절도 혐의로 경찰에게 체포되서 여성감옥에 8년간 계셨대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왜? 왜?!!! 그런 이야기를 솔직히 다 하셔야 했나요!!
이제 아주머니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할지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그 동안 실례가 많았습니다. 혹시 제가 언짢게 해드린 건 없나요? ㅠ_ㅠ


제가 미국인이 아니라서 이해할 수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털어놓을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더라구요. ^^;;

너무 솔직해서 절 어찌할 바 모르게 만든 미국인들의 이야기,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셨나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