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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너무 당당하게 거만한 미국인 때문에 울화통 터지네

by 이방인 씨 2019. 11. 26.

미국인들이 국제사회 정세에 무관심하고, 외국어를 배우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는 사실은 꽤 널리 알려져 있죠? 하나 덧붙이자면 세계지리 최고 무식자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지요. 프랑스의 수도가 파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아~주 재미난 곳이랍니다.

미국인들의 거만함과 무지함에 대해서는 오래전 한 번 쓴 적이 있습니다만 (2012/10/31 - [Welcome to California] - 거만하고 무지한 미국인에게 망신 주었던 사연), 최근 더 강력한 거만함으로 무장한 미국인을 만난 일이 있어 그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반평생 넘게 미국에서 살다 보니, 미국인들의 자국에 대한 지나친 자긍심과 타국/타민족에 대한 무지함에 지치다 못해 체념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말해봐야 제 입만 아프고, 1명의 미국인을 상대하는 동안 2명이 더 나타나는 양상이라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거든요. 이제 달관했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전, 거만함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미국인을 알게 되어 기가 차다 못해 말문이 턱 막혔답니다.

저를 아연실색하게 만든 S는  두 달 전 저희 회사 경력직에 입사한, 저보다 예닐곱 살 많은 새로운 동료입니다. 그간 오며가며 인사만 나누다가 며칠 전 점심시간에 우연히 회사 근처 식당으로 걸어가다가 마주쳤지요. S도 같은 식당에 가던 중이라, 자연스럽게 같이 걷게 되었습니다. 어색해서 별 말 않고 있는 저와 달리, S는 붙임성 좋은 미국인답게 제게 이것저것 묻더군요. 동양인을 보면 빠지지 않는 흔한 질문인 "너 어느 민족이니?"가  "그럼 넌 여기서 태어난 거야? 아님 한국에서 온 거야?"로 이어져, S와 저는 자연스레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지도 않게 S는 핵무장을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갈등을 제외하고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죠.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는 게 조금 무안했던지 S는 제게 딱히 의미는 없는 예의상 사과를 하더군요.

미안,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계속 질문만 하네.

하기에 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했더니 S는 웃으며 말합니다.

그래, 우린 그런 거 잘 몰라.

듣고 있자니 사실이라, "하긴 그건 그래요. 하하." 했더니, S는 또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그렇지. 왜냐하면 우린 알 필요가 없어서.

너무 당당하기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가 한 번 더 물었습니다.

왜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 같이 사는 세계 아닌가요?
그런가? 근데 우린 조금 다르지. 전 세계는 미국의 영향을 받으니까 알아야 하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 영향을 안 받으니까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어.

뜨아아아아~~!
이것은 진. 짜.
진짜가 나타났다.

이쯤 들으니까 어쩐지 살짝 짜증이 나려는 겁니다. 그래서 가볍게 말해봤습니다.

그거 상당히 거만한 생각인 거 알아요?

했더니, 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응, 알아. 우린 원래 거만해.
거만뿐만 아니라 무지한 것도 알아요?
그럼, 알지.
근데 왜 안 고쳐요?
고칠 필요가 없잖아.

뭐요??!!

안 고쳐도 되는데 굳이 왜 고쳐?
아니, 스스로 거만하고 무지한 걸 알면 고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그런데, 실제적으로는 안 고쳐도 아무 불이익도 없는데 뭘 고쳐?


이 인간은 뻔뻔한 것인가,
아니면 외계인과도 말이 안 통한다는 완전체인 것인가?

분통이 터지기 일보직전이라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히며 물었습니다.

그럼 불이익이 닥쳐야만 고치겠다는 말이에요?
불이익이 오면 아마 고쳐야겠다는 인식이 늘겠지. 근데 그럴 일 없어. 우리한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나라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우린 이대로 살아도 돼. 하하 핫!

이 무슨 끔찍한 정신 고문이람?

S의 말을 듣고 있자니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화산처럼 폭발하려는 울화가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더 괴로운 사실은,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기가 차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무언가 치밀어오르기는 하는데, 이 사람을 어떻게 대적해야 할 지 도무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어마어마한 무력감을 느끼며 빨리 걷는 데에만 집중하여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받아 돌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 저는 S와는 날씨 이야기와 일 이야기만 하겠노라 결심했답니다.

정말이지 미국인들에게 이골이 났다 생각했는데 역시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강적을 만나게 될 줄이야. 아니, 그것보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미국에 몇 명이나 더 있는 건지... 어쩐지 정신이 아득해지는 하루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