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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내가 아시안이라 만만하게 본 미국인과 다툰 사연

by 이방인 씨 2012. 12. 5.

지난 14년간 미국에 살면서 딱 한번! 미국인과 크게 싸운 적이 있습니다.
합리적인 의견조율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한판 붙었죠. ^^;;
대학 다닐 때였으니 둘 다 어린애도 아니었는데 싸움이 시작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생물학 강의를 들었는데 실험시간에는 늘 2인 1조가 되어 실험을 했었습니다.
저는 Rachael 이라는 이름의 백인 여학생과 한 조가 되었어요. 
어찌된 일인지 Rachael 이 먼저 저한테 같이 하겠냐고 물어왔거든요.
뭐 어차피 짝은 있어야 되고 호의로 물어봐줬으니 저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문제는 이 여학생이 미국인 중에서도 유독 Bossy 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었죠.
Bossy 하다는 건 쉽게 말하자면 어디서든 대장 노릇을 못하면 직성이 안 풀리는 성격을 말하는데요.
자나깨나 리더 행세하는 걸 좋아하는 미국인들인지라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Rachael 때문에 일주일에 2번 있는 실험시간만 되면 저는 몸과 마음이 너무 피곤한 겁니다!
실험 도구 준비며 세팅이며 제가 다 해놓으면 정작 실험은 자기 혼자 독차지하고 또 끝나고 나면 뒷정리까지 제가 하는 상황이 벌어진거죠.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어떤 정신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당당하게 이거 해와라 저거 해와라 저를 부려먹더라구요.
하다못해 실험에 쓰이는 시험관 하나도 본인 손으로 안 씻고, 더러워진 튜브를 저한테 넘기며 이러네요.

 

You better go wash this first.  이거부터 씻어와야겠다.

헐

 

사실 철이 덜 든 미국인들 중에는 Rachael 같은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간혹 정말 가끔 있습니다.
미국 문화를 대변하는 "개인주의" 라는 것은 양날의 검 같은 생활태도거든요.
타인을 본인만큼 존중하며 폐 끼치지 않는 올바른 개인주의 매너 교육을 받고 자랐다면 문제 없지만, 자칫 균형을 잃으면 자기중심주의 혹은 이기주의로까지 번질 수 있으니까요.
Rachael 같은 경우가 바로 잘못된 개인주의의 예라고 볼 수 있겠죠.

그래도 16주나 되는 한 학기를 함께 지내야하니 왠만하면 마찰은 피하고 싶어 참았지만 3주 정도 지나니 저도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실험시간이 끝나고 그 아이를 붙들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우린 동등한 입장의 실험 파트너니까 공평한 역할분담을 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더니 이 아이는 도무지 영문을 몰라합니다.

 

그 말은 네 생각엔 우리가 지금까지 공평하게 일하지 않았다는 뜻이야?

 

아휴~ 넌 정말 답도 없다.....
그래서 다시 매 실험시간마다 나는 허드렛일 하느라 바쁘고 정작 공부가 되는 실험은 너 혼자 다 해왔다고 알려주자 또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게 역할분담인 줄 알았는데?

 

-.-^ 그러니까 이 아이 머릿속에서는 저는 준비담당, 본인은 실험담당으로 아예 구분지어져 있었던 거죠.
숨겨왔던 본성이 나오려고 스물스물대고 있던 저는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며 이제부터는 나도 실험에 참여할 것이고, 너도 준비 및 정리에 참여해야한다고 못 박았죠.
제 말을 듣고 얼굴을 삐죽대던 Rachael 이 마지막 한마디를 날립니다.

 

난 네가 조용한 아시안이라 (the quiet Asian) 잘 맞을 줄 알았는데...

 

3

2

1

 

 

이런 이런 그러니까 내가 아시안이라 만만해보여서 골랐다?!
너 두번 다시는 니네집 애완견 Tommy랑 원반던지기 하면서 Good boy 소리 못하게 해줄까?


이후에 벌어진 일은 저의 이미지 보호차원에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 다음시간부터 Rachael이 튜브를 제깍제깍 잘 씻어왔다는 것만 알려드릴게요. ㅋㅋㅋㅋ

Rachael 의 말에서 알 수 있지만 미국에는 Asian Stereotypes (고정관념)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보면 이렇습니다.

1. 아시안들은 학교에서 조용하다.

2. 아시안들은 성격이 강하지 않다.

3. 아시안들은 공부만 한다.


이 밖에도 수 없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이 세 가지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Rachael 은 제가 조용하고 얌전한 아시안일테니까 본인이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구성원간의 화합을 중요시하는 아시안들이 단체생활에 해가 되는 갈등을 피하는 성향을 미국인들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판단하려고 하니 "자기주장이 없는 약한 성격" 으로 치부되어버리는 것이죠.
정말 속을 들여다보면 아시안들이 훨씬 "강한" 성격이라는 것을 이들은 잘 모른답니다.

제가 겪어보니 미국인들은 실제보다 강한 척하는 허풍이 조금 있더라구요. ^^;;

사실 이 사람들은 화나면 그냥 큰 소리로 Fxxx만 몇 번 하면 그게 다거든요.
게다가 남자들도 본격적 싸움을 무서워해서 완전 울끈이 불끈이끼리도 입으로만 쫑알쫑알 거리는 경우가 더 많구요. ㅋㅋㅋㅋ
왜 미국 영화보면 자주 나오잖아요?
덩치 산만한 남자 둘이서 손끝 하나 안대고 그냥 얼굴만 마주대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는 장면이요.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온순해서 덩치는 커도 마음 약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별로 싸울 일도 없어서 14년간 딱 한번 뿐이었던거죠.

Rachael 도 겉으로만 Boss 흉내내는 아이였는데 제가 "전형적 아시안 타입" 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에 힘 주고 목소리는 낮게 깔고 진지하게 화를 냈더니 움찔~ 하더라구요. ^^;;
그 후로는 평등한 관계로 잘 지냈지요.

제가 오늘 이 사연을 전해드리는 이유는요....
바로 어제 제 방명록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미국 아이들 친절하니까 걱정말고 학교 나가라고 대답해주었더니 그래도 여전히 떨린다고 글을 남겼더라구요.
이 학생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갓 온 아이들은 아무래도 주눅들고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저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아서 초창기에는 분명히 쭈뼛쭈뼛 속으로 위축되어 지냈죠.
그러다 지금 생각해보니 억울해서 말씀드려요. ^^;;
저처럼 이렇게 나중에 알지 마시고 처음부터 밀리지 마시라구요. ^-^
겪어보니 앞서 해드린 이야기처럼 미국인들이 그렇게 레벨이 강한 상대가 아닙니다. ㅋㅋㅋ
게다가 친절한 미국인들이 훨씬 많아서 마찰이 생기거나 싸우게 될 일도 별로 없지만, 혹~시나 혹시나 정의를 위해서! 미국인과 맞서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위축되지 마시고 당당하게 상대하세요!
대체로 우리 아시안들의 기(氣) 가 훨씬 쎕니다.
그러니 이런 고민을 하며 미국에 온 한국 학생들, 아무 걱정말고 씩씩하게! 학교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좋은하루

* 여러분~ 이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 기준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미쿡인들 중에서도 갱단에 몸 담고 있다던지, 총기를 소지했을 것으로 보인다던지 혹은 체급차이가 지나치게 나는 사람은 그냥 피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