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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내가 미국인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이유

by 이방인 씨 2013. 7. 12.

미국 이야기를 자주 쓰는 이 블로그의 특성상 미국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댓글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 반, 나쁜 이야기 반인데 나쁜 이야기 중 가장 단골은 '미국인들은 무식/무지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악평의 근거는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에서는 일반상식으로 취급되는 지식을 모른다는 점이죠.
그 때문에 심하게는 '백인이 동양인보다 태생적으로 멍청하다'는 말씀을 하신 분도 계셨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의 기준에 미국인들이 무식해 보인다는 거겠죠.
그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쓴 적이 있으니 관심이 있는 분은 한번 읽어 보세요.

2012/03/15 - [방인씨 이야기/미국 이야기] - 한심한 미국 VS. 대단한 미국
2012/11/02 - [방인씨 이야기/미국 이야기] - 무식한(?) 미국인들을 위한 해명 1,2,3

특히나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이 미국인들의 '국제사회에 대한 백지장 같은 무지'일 텐데요.
간단하게 원인 분석을 하자면 미국 학교에서는 세계사를 잘 가르치지 않을 뿐더러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자국 일에만 관심을 가지기도 벅차기 때문입니다.

이런 미국내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저도 간혹 미국인들이 외국 사정을 너무 모른다거나 잘못된 정보를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해서 더 말하기도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특히 아시아 지역의 국가나 문화에 대해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해댈 때는 열이 오르기도 해서 속으로

차라리 아는 척을 말고 햄버거나 야무지게 잡수셔~  안습

하고 만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 친구들에게 '너희들 몰라도 너무 몰라!' 하고 크게 외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결국 저도 똑같더라구요.
제가 알고 있는 국제사회 상식이라는 것도 결국 일천하기는 매한가지라는 걸 알게 해 준 친구들을 미국에서 많이 만났거든요.


첫번째 - 들어는 봤나?

지금이야 아프가니스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이건 9/11 테러사건이 터지기도 전의 일입니다.
제가 그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고는 달랑 나라 이름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만나고야 만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친구를....  헉4


친구라고 해서 학교 친구나 나이가 비슷한 친구가 아니라 저희 동네 Security 회사에서 근무하는 중년 남성분이셨어요.
어느 날 우연히 말을 트게 됐는데 제게 아시아의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물으시기에 한국이라 대답을 하고 저도 마찬가지로 그 분의 출신국을 물어봤죠.
그 때 그 아저씨, 왠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네가 맞춰 봐.' 하시더라구요.
아저씨의 외모를 설명하자면 피부색은 백인계 같았고,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어두웠으며 가느다랗게 양쪽으로 정리된 콧수염을 가지고 계셨답니다.
겉모습만 보고는 그.냥. 외.국.인. 다섯글자 밖에 안 떠오르길래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이 아저씨 그냥 말해주면 될 걸 힌트를 주겠다며 이런 단서를 투척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인도랑도 가깝고 러시아랑도 가까운 무슬림 국가야.

흐음... 안들려 인도랑 러시아 사이에 있는 무슬림 국가라...?


파키스탄이요??

땡, 틀렸어!

그럼 카자흐스탄?

땡!

우즈베키스탄?

땡, 또 틀렸어!

그럼 거기 어디더라... 키르 뭐시기... 키르 뭐시기 스탄??

푸하하하하 땡 땡땡땡땡!

흥4이런 된~장... 밑천 다 떨어졌네.


제가 더는 모르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아저씨는 자신이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때는 9/11 사건 전이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소식을 들을 일이 거의 없는 시절이었죠.
솔직히 말하면 어디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 전혀 모르고 그저 가끔 들은 나라 이름만 알고 있었거든요.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내가 무식해 몰라서 그랬다고 미안하다 했더니 아저씨는 웃으시며 미국에서 17년을 사셨지만 아프가니스탄을 바로 맞추는 사람을 이제껏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며 괜찮다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왠지 괜찮지 않은 기분이었죠.
그 때까지 같은 이유로 남몰래 미국인들을 비웃곤 했으니까요.



두번째 - 네가 알랑가몰라~

두번째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다행히 이 친구는 너무 뚜렷한 히스패닉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라틴 아메리칸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또 출신국 이야기가 어김없이 나오고야 말았습니다.
캘리포니아에는 워낙 외국 출신들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항상 출신국 질문이 빠지지 않거든요.
그나마 우리 같은 동북아시아인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중일 삼국은 동남아시아인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 때문에 대부분 세번 안에 맞추니까요.
많은 한국분들이 외국 나가서 Chinese냐 Japanese냐 질문을 받고 기분 나쁘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렇게 세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
미국내 라틴 아메리카계의 국적 가능성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콜롬비아, 칠레, 온두라스,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등 잘못 짚었다가는 한도 끝도 없이 스무고개가 펼쳐집니다.

다행히 이 친구는 제게 묻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과테말라 출신이라고 밝혔기에 안심하고 있다가 기습공격에 당했습니다.

그런데 너 과테말라가 어디 있는지는 아니? 커피한잔


세계지리에 워낙 무지한 미국인들 틈바구니 속에서 나름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온 이민자들이 이런 질문을 할 때 그 속내는 뻔합니다.
앞서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맞춰보라고 했던 아프가니스탄 친구와 마찬가지로 '흐음~ 과연 네가 알까?'하고 떠보고 싶어하는 마음인 거죠.
짧은 찰나 저는 번개 같이 머리속 정보 스캔을 시작했습니다.

과테말라... 라틴 아메리카에 속하는 건 확실히 알지만 남미냐 중미냐가 헷갈리는데...
분명 파나마보다는 위에 있을 거야... 위에 있겠지...???

그렇다면...!   생각중 정답은 중앙 아메리카렷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야 당연히 알지! 과테말라 Central America에 있잖아.

 

제 예상은 적중하여 그 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제게 악수를 청하는 것으로 정답을 확인해 주었답니다.


이 두 친구들 말고도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등등 출신국 알아맞추기 퀴즈를 내서 저를 진땀나게 했던 사람들이 참 많았답니다.
미국에 와서 저는 정말이지 '세계는 넓고 미국으로 이민 오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제가 미국인들에게 은연 중에 우월감을 가졌던 지구촌 상식도 결국 별 거 없더라구요.
소위 말하는 '서구열강' 나라들만 꿰고 있었으니까요.
특히 제가 여행해 보고 싶은 나라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못내 뜨금하더라구요.
제가 미국인들을 쉽게 흉볼 수만은 없겠다 싶은 순간들이었답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한국에 대해 모르는 미국인에게도 답답해하기보다 참을성 있게 가르쳐주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가르쳐주지 않아도 꽤 정확히 알고 있는 미국인들이 참 많아졌어요.
K-POP과 한국 대기업들의 세계적 활약 덕분이기도 하고 남북긴장관계 탓이기도 한데 어쨌든 이제는 절더러 단박에 Korean이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으니 장족의 발전이죠.
그래서인지 요즘은 한국 출신이라고 하면 미국인과 한~참 수다 떨 때가 있어요.
예전에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아~ 그렇구나...' 하고 지나갈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저마다 한국에 대해 아는 것 하나씩 다 끄집어내더라구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외국 사는 입장에서 이런 일들이 흐뭇하다고 하면... 절 촌스럽다고 하실 건가요? ^-^

여러분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