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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 이민와서 조금 더 행복해진 이유

by 이방인 씨 2012. 9. 29.

우선 제목을 보고 오해하신 분들이 혹시 계실까봐 말씀드리면, 한국에 있었을 때 불행했다는 뜻은 아니랍니다.
그저 미국에 왔더니 비교적 더 행복해진 이유가 하나 있었다는 이야기죠. ^^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 건 사실이지만, 때로는 저를 안일하게 살게 만드는 미국 문화, 과연 무엇일까요?


미국은 다양한 외모에 너그러운 사회

미국 사람들은 타인에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제가 독심술을 아직 깨치지 못하여, 그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성인들에게도 그렇지만, 특히! 아이들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지적하는 것은 굉장히 몰지각한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이웃 어른들이 동네 꼬맹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목격했습니다.

"아휴~ 잘 먹는 모양이네. 근데 어릴 때 뚱뚱하면 커서도 뚱뚱해! 엄마가 살 좀 빼줘야겠다."

"이 집 애는 나중에 쌍커풀 수술 좀 시켜야겠다."

"콧대가 없는게 아빠 닮았나보네. 호호호."

물론 귀여운 마음에 그러시는 걸 수도 있지만, 듣는 쪽에서는 마음 편히 웃을 수 만은 없을 것 같지 않나요?
미국에서는 아이와 그 부모 앞에서 아이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지적하는 사람을 찾으려면 모르긴 몰라도 50개주를 다 뒤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는 13년 동안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인들이 아이의 외모에 대해 말할 때는 통상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가 일반적입니다.
조금 더 호들갑스러운 사람이라면 "천사같다" 는 말도 하죠. ㅋㅋ
미국인들의 몸에 배인 립서비스성 칭찬일지언정 이들은 어떤 외모의 아이를 봐도 우스개소리로라도 나쁘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니, 자연히 어른들도 본인과 타인의 외모에 관대합니다.
미국에도 못 생긴 사람,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이 많이 있지만 이들 중 타인의 지적이나 무시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 외모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감이 부족하고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경우는 있지만, 남이 나를 못났다고 평가하고 농담의 소재로 삼기 때문에 위축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자극적 코메디나 미디어에서 혹은 철 모르는 아이들이 그러는 경우는 있지만, 인성이 다 자란 성인들은 남의 외모를 지적하거나 비웃는 행동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타인이 나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분명 그런 평가나 지적 때문에 받는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런 소리 한두마디는 듣고 살려니 여기며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같구요.
이것은 때때로 자극제가 되서 외모를 향상시키거나 아름답게 유지하려는 노력을 이끌어내기도 하죠.
아마 한국에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들이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모두가 이런 결과를 낳는다면 이런 문화는 이점으로 작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잘 알려진대로 자신감 결여나 대인관계 기피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자신보다 나은 외모를 가진 사람을 맹목적으로 선망하거나 혹은 질시한다던지, 자신보다 못한 외모를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생겨나구요.

저 역시 한국에서 나고, 머리가 굵어진 이상 이런 틀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얼굴은 평범하디 평범하고, 몸매도 지나칠 정도로 친근하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는 예쁜 여성들을 보면 부러워하거나 '나도 좀 저렇게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하곤 했죠.
그런데 미국에 온 뒤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횟수가 서서히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당연히 길에서 예쁜 여자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왜 나는 저 여자처럼 태어나지 못할걸까...' 하는 마음은 들지 않더라구요.
외모 비교평가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줄어서인지 저는 이곳에서 조금은 더 행복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인간 내면의 다양성만큼이나 외모의 다양성도 인정하는 문화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단점이라면, 이렇게 살다보니 너무 안일해졌어요. T-T
화장은 안한지 2년도 넘은 것 같고, 다이어트를 해 본 기억도 가물가물한데다, 머리는 맨날 질끈 묶은 상태죠.
가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가도 밖에 나가서 다른 여자들도 다 그러고 있는 걸 보면 또 마음이 풀어져요. ㅋㅋㅋ
전에도 언급했지만, 특히 캘리포니아는 "편한게 최고!" 주의거든요.
그리고 헐리웃 스타들 파파라치 보면 아시겠지만 정말 한국의 일반인보다도 더 신경 안쓰고 나다니는 연예인들도 많잖아요. ^--^
외모로 먹고 사는데다가 매일 사진 찍히는데도 그러고 다니는 걸 보면, 일반인들은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흐음.. 그러니까 오늘 포스트의 결론을 내리자면 저는 후줄근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ㅋㅋㅋ
어떻게 보셨나요?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이 글은 미국인 전부를 일반화할 수 없음을 밝힙니다. 또한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는 주장도 아니라 단지 제가 경험한 미국 문화를 소개하고 있을 따름이니 오해 없으시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