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내가 미국 대학에서 시험 때마다 능력자 취급받던 이유

by 이방인 씨 2013. 7. 26.

저는 대학 다닐 때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답니다.
강의실 중간에 앉아 적당히 수업 듣고 눈치 봐 가며 적당히 조는 그런 학생이었는데요.
미국 대학에는 '같은 과 동기'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매일 붙어다니는 과 친구들은 없지만 같은 조에 속한 멤버들과 함께 과제를 하고 밥도 먹으면 친하게 지내는 정도죠.
그런데 이 친구들이 시험기간이 되면 유독 저를 부러워하는 일이 생깁니다.

바로 이 카드 한 장 때문에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용지를 Index Card라고 합니다.

 

친구들 중 몇 명은 시험 기간이 되면 이 카드를 한 장씩 들고 제게 찾아옵니다.
시험칠 때 사용할 힌트 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죠.

학교마다 교수님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일부 과목 교수님들이 시험 시간에 딱 한 장의 Index Card를 허용하셨습니다.
3X5 인치 (약 세로 8cm 가로 12cm) 크기의 이 작은 종이에 무엇이든 적어와서 시험 시간에 볼 수 있도록 용인하는 거죠.
쉽게 말하면 합법적 cheating 카드라고 할까요?
과목 별로 다르겠지만 저는 주로 물리 시간에 이런 카드를 많이 썼었는데 복잡한 공식과 예상 문제를 빼곡히 적어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왜 제게 이 카드 작성을 부탁했냐구요? ??

그건 바로.......

 

(sodahead.com)

얘들은 글씨가 이 모양이잖아요.  안습
요따우로(?) 쓰다가는 그 작은 카드는 실속없이 다 채워지고 맙니다.


반면 꼼수의 달인이었던 저는 제가 봐도 훌륭한 card 제조기였었죠.
지금은 다 버려서 찾을 수 없지만 인터넷을 뒤졌더니 제 것과 비슷한 수준의 인덱스 카드를 몇 개 찾았습니다.

 

(www2.isye.gatech.edu)

쉬운 과목이라면 가볍게 이 정도로,

 

(sj-jester-things.tumblr.com)

외울 게 많은 과학 과목이라면 카드 한 줄에 글씨 3-4줄을 구겨넣는 수준으로 찍어냈었습니다.
문제 풀이 그래프와 그림까지 그려넣을 수 있었으니까요.


저희 교수님은 오로지 손으로 직접 쓴 인덱스 카드만 허락하셨기 때문에 글씨를 작고 깔끔하게 쓰지 못 하는 학생들은 그 작은 카드에 많은 정보를 담기가 무척 어려웠답니다.
그 불리함을 상쇄하려면 써 오는 대신 외워 오면 되지만 그렇게 바람직한 학생은 많지 않죠.
그래서 저와 친한 친구들은 시험 때만 되면 인덱스 카드를 들고 제게 와서 이것 이것 이것을 써 달라고 부탁하곤 했답니다.
저야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훈련받은 '빽빽이' 실력으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까짓 카드 한 장 쓰는 거야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요.
이런 날을 위해 선견지명이 남다르셨던 한국의 선생님들이 빽빽이를 그토록 쓰게 하셨나 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익혔던 필살의 스킬을 시전하여 글씨를 못 써 슬픈 중생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안겨준 이방인씨랍니다. ^-^v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회에선 기술이 최고지요.  슈퍼맨


여러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모든 미국인이 글씨를 못 쓴다는 일반화는 할 수 없다는 것, 알고 계시죠? ^^
제 친구들도 심하게 못 쓰는 건 아니었지만 제가 워낙 카드 찍어내기 달인이다 보니 부탁했던 거죠.
물론 걔 중에는 정말 손가락이 정상이 아닌 건 아닐까 의심하게 하는 남자 사람 친구도 있었지만요. ㅋㅋㅋ

미국이라고 다 이런 카드를 시험 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교수님마다 방침이 다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