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가자지구 소식에 분노했는데 유태인과 친구가 되었다

by 이방인 씨 2014. 10. 17.

제 뉴스를 보니 반기문 UN 사무총장께서 가자지구를 방문하셨더군요. 국제 뉴스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올 여름 전 세계를 들끓게 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물론 이 갈등은 올 여름만의 일은 아닙니다만.) 그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 무엇보다 어린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희생되었기 때문에 세계인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죠. 저 역시 처참한 아이들의 시신 사진을 보고, 서기 2014년에도 그러한 야만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잊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스라엘에게 또는 유태인들에게 분노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유태인이라...


Shakespeare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는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유태인이죠? 약속한 기일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살 1파운드를 떼어 받겠다는 조건으로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는, 그야말로 잔혹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당시 영국인들의 반유대 감정 덕분에 샤일록이라는 악역 캐릭터가 탄생했다고 하더군요.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유태인을 적대시했다지만 1차대전 후에는 유태인 국가 건국을 지지하는 바람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영국이죠....)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히브리인들을 이끌던 기원전 2천 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역사를 가진 민족답게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유태인들이지만 타민족들로부터 미움받은 세월도 그 못지 않게 긴 것 같습니다.


유태인 파워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는 현대 미국에서도 유태인들을 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답니다. 미국 금융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법조계와 정치계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태인들의 영민함과 대를 이어 부를 축적하는 그들의 자녀교육 방식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있는 반면, 양심은 약에 쓸래도 없는 탐욕스런 돈벌레들이라고 경멸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사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유태인들의 세력은 막강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대선에 출마하는 정치인들은 마치 통과의례처럼 유태인 로비단체인 AIPAC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 Committee)에서 연설을 하기도 한답니다. 유태계 세력의 지지를 얻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죠. 이쯤되면 "미국 국회의원은 이스라엘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고 말한 어느 하원의원의 말도 납득할 수 밖에요.

돈과 권력을 가진 무리가 하는 일은 더러울 때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이방인 씨, 평소 유태인들에게 딱히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유태인과 친구가 되었네요. 아니, 선후관계를 명확히 하자면 친하게 지내던 좋.은. 사.람. 한 명이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얼굴만 보고 미국인인지, 유럽인인지, 유태인인지 제가 어찌 알겠어요?! 미국 이름 중에는 성경에서 온 히브리 이름들도 많으니 이름으로 구분하기도 불가능하죠. 당연히 미국인이겠거니 했는데 이틀 전에 우연히 수다를 떨다가 그가 자신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왔다고 하는 바람에 알게 되었답니다.

TV에서, 온라인에서 가자 지구 뉴스를 접할 때마다 솔직히 '이스라엘 놈들 나~쁜 놈들'이라며 혀를 끌끌 찼는데 막상 그가 유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가자 지구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겠더라구요! 오~ 그 친구는 정말 좋은 사람이랍니다. 아시아 문화에 심취해 있는지라 한국말도 몇 마디 할 줄 알고, 김치도 먹을 줄 알고, 전화를 받을 때는 "여보세요?"라는 말도 할 줄 알지요. 한중일 뿐만 아니라 티벳, 몽골, 타일랜드 등등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아시아인들은 수천 년전부터 훌륭한 문화를 꽃피웠다"고 말하는 사람이죠. 아시아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스라엘이 소아시아 (Asia Minor) 끄트머리에 있기 때문에 자기도 "(우기고 우겨서) 변두리 아시안"쯤은 된다고 한답니다. 굳이 아시아에 대한 사랑을 들먹이지 않아도 그는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사람이니 이스라엘 출신인 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와 저의 관계가 달라질 것 같진 않네요. 어린 아이들이 몰려 있는 학교에도 폭격을 서슴치 않았다는 이스라엘은 싫지만 이스라엘인인 친구까지 미워지지는 않는 걸요.


사람과 사람이 벗하는 일은 이토록 쉬운데
'사람들 VS. 사람들'은 왜 이리 어려운지요...


 

하여간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내 편 네 편' 패싸움은 할 짓이 못되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사이좋은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