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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젊은 여성들이 꿈꾸는 게이 베스트 프렌드 실제는?

by 이방인 씨 2012. 7. 13.

여러분들 중 몇 분이나 게이 베스트 프렌드 (Gay Best Friend) 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게이 베스트 프렌드란 여성들 사이에 쓰이는 말로, 동성애자 남성 친구를 말합니다.
제가 알기론 미국의 드라마 Sex and the City 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각광받은 단어죠.
드라마의 여주인공 캐리에게는 여자친구들보다 더 친하다 할 수 있는 남성친구 스탠포드가 있습니다.
스탠포드는 남성이지만 절대로 캐리의 남자친구는 될 수 없는 존재, 바로 게이 친구죠.
극중 캐리에게는 절친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친구가 3명이나 되지만, 캐리는 그 친구들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고민을 스탠포드에게 털어놓곤 합니다.
저를 비롯해 모든 여성분들이 다 아시겠지만, 아주 친한 친구사이에도 같은 여성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것,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죠.
이럴 때 짜자잔~ 하고 등장하는 구원투수가 바로 게이 베스트 프렌드라는 로망입니다.
여성친구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도 할 수 있는데다가, 이성애자 남성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여성적 정서를 게이 남성들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짐작이 깔려있는 것이죠.
이 말은 곧, 아주 친한 여성친구에게는 말 하기 싫고, 애인에게는 말해봤자 이해 못하는 가려운 부분을 게이 베스트 프렌드가 긁어준다는, 어찌보면 참 자기중심적인 희망사항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이런 인식은 앞서 말한 Sex and the City 에 등장하는 패셔너블하고 의리있는 게이 베스트 프렌드 캐릭터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죠.



한국에 있는 제 친구들 중에도 그 드라마를 열심히 본 아이들이 몇 명 있더군요.
그리고 저는 그들로부터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너도 미국 사니까 게이 베스트 프렌드 있지??? 좋겠다~

음...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여~

정말로 그렇습니다.
게이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베스트 프렌드까지는 아니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제가 실제로 겪어본 게이 친구들이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게이의 이미지와 어떻게 같고 다른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리도 없이 거대한 존재감, Joe

조는 제가 대학에서 알게 된 친구인데,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친구랍니다.
그가 소리도 없이 존재감이 큰 이유는 바로, 향수 때문입니다.
조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향수를 뿌리고 다니죠.
남성들이 주로 쓰는 시원한 향이 아니라 킁킁 거리지 않고는 못 배기는 달콤한 향을 애용합니다.
사실 제가 조와 친해진 계기도 바로 향수 때문이었습니다.
하루는 수업 준비물을 보관하는 라커앞에서 자물쇠를 열고 있는데 어디선가 도넛 냄새 같기도 하고 초콜렛 냄새 같기도 한 향기가 마구마구 풍겨오더라구요.
단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제가 두리번 거리며 중얼거렸죠.

음...뭐지? 어디서 달콤한 냄새가 나네...

했더니 옆에서 여성인 저보다 더 잘 꾸민 남자애 하나가 킥킥 웃으면서 손가락을 까딱거려 자기 목을 가리킵니다.
자기가 목에 뿌린 향수 냄새라는 뜻이였죠.
그렇게 우연히 알게되서 친해진 조는 평범한 사람들이 떠올리는 게이의 이미지에 딱 부합하는 친구입니다.
일단 그는 옷을 잘 입는 것으로 치면 모델들 뺨을 왕복으로 칠 만큼 대단합니다.
조가 캠퍼스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쳐다볼 정도로 패셔너블하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주변에는 늘 여성친구들이 흘러 넘칩니다.
수업시간에 봐도, 카페테리아에서 봐도, 걸어가는 걸 봐도, 늘 여성친구들과 함께 다니죠.
말투하며 손짓이 어찌나 섬세하고 우아한지, 주변의 여성들이 우악스러워 보일 정도구요.
조는 굳이 묻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게이임을 알 수 있는 타입으로 본인의 성 정체성을 떠벌리지는 않되 숨기지도 않는 쪽이었습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인기 만점이지만 남성 친구들은 거의 없어 보이는, 가끔씩 쓸쓸한 듯 보이는 친구죠.

유쾌 통쾌 비대한 그 남자, Michael

마이클은 정말이지, 아휴~ 복부비만이 너무 심한 유쾌하고 비대한 아저씨예요~! ㅋㅋㅋ
바로 어제 소개팅에 관해 쓴 글에서 저한테 조카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한 아저씨가 바로 마이클이랍니다. ^^
마이클의 인생은 정말이지 대하소설을 써도 될 만큼 파란만장했었죠.
커밍아웃한 게이인데 장성한 아들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
마이클은 50대 초반쯤 됐는데 커밍아웃 한지는 이제 겨우 10년이 채 안됬답니다.
즉, 40대 초반까지는 평범한 이성애자 남성처럼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던 거죠.
그러다 뒤늦게 본인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가장 먼저 부인에게 커밍아웃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 부인이 울부짖으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차라리 당신이 누굴 죽인 살인자라고 털어놓는 편이 나았을거야!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상심한 부인에게도, 또 듣고 있는 마이클에게도 크나큰 상처가 되었겠죠.
뒤늦게 깨달아서 그런지 마이클은 본인의 성 정체성을 밝히는 데에도 당당하고 거침 없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고 첫 날, 자기소개 시간에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본인이 먼저 이야기 하더라구요.
미국이라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죠?
저랑은 한 테이블에서 작업을 하게 되서 매일 쓸데없는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숨기는 것도 없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주 묻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자발적으로 다 해주는 재밌는 아저씨죠.
그런데 마이클은 본인입으로 게이라고 밝혔건만,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ㅋㅋㅋ
위의 조와는 정 반대로 완전히 평범한 배나온 중년 아저씨거든요.
옷은 뭐 보이는대로 아무거나 걸쳐입었겠구나 싶은데다가, 머리는 제대로 빗는지 마는지요.
게다가 섬세함은 커녕 만지는 물건마다 부수고, 망가뜨리고, 말은 또 어찌나 거친지 모릅니다.
틈만 나면 아들 얘기까지 해대니, 저도 가끔 마이클이 게이라는 걸 잊고 지낼 정도랍니다.

이 두명의 게이 친구들 중, 여성분들이 원하는 게이 베스트 프렌드는 아마도 마이클 보다는 조에 가깝겠죠?
한국보다 성적소수자들에게 관대하다고해도, 성적소수자들의 자살도 많은 나라가 역시 미국이랍니다.
그 만큼 이들이 느끼는 고통이 크다는 얘기겠죠.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의 일부 젊은 여성들이 게이 베스트 프렌드를 가지고 싶어하고, 또 제 친구들이 호기심으로 물어올 때마다 속으로 혼자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여성들이 편의를 위해서 친구 삼아도 좋은 존재가 아니거든요.
물론 자연스레 친구가 되서 친해지는 거야 좋은 일이죠.
하지만 TV에 나오는 여주인공을 보니, 부러워서 나도 하나 갖고 싶다는 이유로 선망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자친구들 틈에 둘러쌓여 남자들의 고까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Joe도, 부인과 아들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울먹거리는 Michael 도, TV에 나오는 캐리의 게이 베스트 프렌드같진 않지만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느끼게 해 준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