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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대출로 마련한 '내 집' 대한 미국과 한국의 다른 인식

by 이방인 씨 2012. 6. 8.

얼마전에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어느 출연자가 나와서 "우리집 절반은 은행 소유다" 라며 웃더군요.
그리고 그 밑에 자막이 하나 떴습니다.

대출,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

그 때 저는 자막의 뜻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같이 TV 보시던 어머니께 여쭈었더니, 한국분들은 대출받아 집을 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시더군요.
학창시절에 이민을 와서 그런지 한국의 학교에 대해서는 알아도 사회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제가 다시 물었죠.

엥? 집은 원래 대출 받아서 사는거 아냐? 그게 왜 슬픈 현실이야?

했더니, 어머니께서 한국에서는 100% 본인 돈으로 마련해야 온전히 "내 집" 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내 집' 에 대한 인식 차이를요.

미국에서는 대출을 얻어 집을 사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큰 부자들은 한번에 턱턱 사겠죠.
하지만 서민들은 물론이고, 집값을 전액 지불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중상류층 사람들중에도 대출을 내어 집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빈부를 떠나서, 미국인들 기준으로 생각하면 그게 더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집값을 모두 지불하고 사려면 목돈이 들어가는데, 그 많은 돈을 집 사느라 한번에 사용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거죠.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25년이나 30년 모기지로 집을 사는 것이 보통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친척들도 모두 25년 융자로 집을 샀구요.
제가 알고 지내는 미국인 커플은 부부가 다 치과의사로 돈이라면 부족함 없이 벌고 있지만 집은 융자를 얻어 샀습니다.
또 예전에 제 포스트에 등장했던 버클리 출신 변호사 아내와 프린스턴 출신 엘리트 남편 커플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저희집도 그렇고 그들도 집값을 무려 25년 혹은 30년이나 갚아야 되지만 미국에서 그것은 얘기거리도 안되는 일상일 뿐, 슬프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엔 오히려 그들에게 집값을 일시불로 내고 온전히 내 소유의 집을 사는게 어떻냐고 물으면 조금 의아해할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주택 모기지는 합리적 구매방법이자 때로는 자금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부동산 투자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융자를 얻으면 다달이 이자까지 지불해야하니 일시불로 구매하는 것보다 총액은 더 커지게 되죠.
하지만 왠만한 부자가 아니라면 한번에 큰 목돈을 지불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미국인들 생각에는 그 정도의 돈을 한번에 사용하는 것보다 매일매일을 조금 더 여유있게 사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인 것 같습니다.

한국의 인식은 어떻게 다르기에 주택융자를 슬픈 현실이라고 표현할까 궁금해졌습니다.
아마도 한국인들에게 "집" 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인들은 가족을 소중이 여기는 걸로는 아마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민족일텐데요.
많은 미국인들이 집을 단순히 먹고 자고 쉬는 거처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한국인들에게 집이란 '우리 가족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 이라는 의미가 강하죠.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서민들의 가장 큰 꿈은 '내 집 마련' 이고, "내 집" 이라 함은 곧 온전히 내 소유여야 안심이 된다는 마음이 큰 것 아닐런지요.
한국에 살고 있는 저희 이모도 대출없이 구매한 "내 집"을 소유하고 계신데요.
물론 서울 집값이 대체로 비싸긴 하지만, 저는 그 집값을 듣고 이모가 엄청나게 부자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이모가 씁쓸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더라구요.

집만 값이 나가면 뭐하니...집 한 채 사고 머리에 얹고 산다.

저는 또 이 말도 금방 이해를 못하고 말았죠.
알고보니 "내 집" 에 너무 돈이 들어가서 재산이 모두 집에 들어간 경우를 말하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집을 사고나서 이모부가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고 여유로워지셨다고 들으니, 미국과 반대로 한국에서는 오히려 이 쪽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한국의 가장들이 느끼는 "내 집" 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지 전해져오더군요.
왠지 찡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내 집 마련을 위해 열심히 달리시는 모든 분들, 힘내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오늘도 잊지 않고 삭제처리된 악플 다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 글의 어느 대목에서 '한국 방식이 틀렸고, 미국식이 한국보다 낫다' 는 내용이 있다고 느끼셨나요? 아마 그런 대목을 찾아내시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쓴 적이 없으니까요.  제목에도 쓰여있지만 서로 다른 인식에 대한 글입니다. 저와 의견이 다르시면, '내 생각은 이러이러하다' 라고 정상적으로 써주시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근거 없는 시비걸기나 댓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 대한 기본 매너를 지키지 않은 글은 사양하겠습니다. 악플러분들, 스트레스는 다른 곳에서 건설적으로 풀기를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