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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thing & Everything

외국 할아버지와 친구되서 대박터진 내 친척, 나는?!

by 이방인 씨 2013. 8. 9.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쓸까 머릿속을 어슬렁거리다 이민 초기 영어를 잘 못하던 시절의 기억을 하나 건졌습니다.
때는 1999년 이민 와서 3개월도 채 안됐을 때의 일이죠.
당시 저는 버스를 두 번 타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갈아타는 정류장에서 거의 매일 할아버지 한 분과 마주쳤습니다.
창백하고 주름진 얼굴을 하고 머리에는 흰 눈이 내린 듯 백발이 성성한, 적어도 여든을 넘기신 분처럼 보였죠.
어르신 분들과 함께 있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외로우셔서 그런지 참 말씀이 많으시죠? ^^;;
특히 미국에는 혼자 독립해서 사는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에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하시고 말씀이 끊이질 않으신답니다.
이 할아버님도 매일 아침마다 도대체 어디를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늘 같은 정류장에서 저와 만나시면 옆에 앉으셔서 하염없이 긴~ 긴~ 이야기를 들려주셨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이구 아부지~
ME NO SPEAK ENGLISH  안들려


아무리 한국에서 영어교육을 받고 왔다지만 회화가 3개월만에 될 리가 있나요.
할아버지는 밤새 외로움에 시달리기라도 하셨는지 아침마다 제 손을 잡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시며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저는 그저 미소만 지은 채로 멍~ 때리고 있는 거죠.

버스 빨리 안 오냐~ 엉?   OTL


제가 별 다른 말 없이 무조건 웃으면서 Oh~ I see, Okay, Good, Yes, Ah~ 기타 등등의 초긍정형 추임새만 넣어서 그랬는지 할아버지는 저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어느 날은 할아버지가 실컷 말씀하시고 저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하는데 아마 양껏 하시고 싶은 말씀을 다 하셨는지 만족하신 얼굴로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시고는 이 한마디를!

"You are really nice."

쉬운 문장이라 알아들은 저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I am? Thank you. You are too."라고 대답하여 버스 정류장에 국적, 인종, 성별, 나이를 초월한 We are the world~ We are the children~ 의 꽃을 피웠던 기억이 납니다.
할아버지와 저의 아침 정모는 얼마 후 제 등교시간이 30분씩 앞당겨지면서 끝이 나고 말았는데 나중에 어머니께 시작은 저와 비슷했지만 결과는 매우 다른 먼 친척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답니다.

저희 어머니의 외삼촌이 캐나다에 사시는데 그 분께 저보다 10살쯤 많은 딸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게는 먼 친척 이모가 되는 셈인가요?
어쨌든 그 분은 캐나다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저와는 어린 시절 2-3번 만났던 기억 밖에는 없는데 이 분 이야기가 왠만한 영화 뺨 치니까 한 번 들어 보세요.

이 분은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다 사직을 한 건지 퇴직을 당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직 상태로 몇 개월을 보냈습니다.
할 일도 없으니 아침이 되면 집 근처의 공원에 나가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늘 공원에 나오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알게 됐습니다.
제 말대로 시작이 저랑 정말 비슷하죠?

그들의 벤치 샌드위치 우정은 5개월이 넘게 지속되었는데 워낙 친구 사이에 나이를 따지지 않는 문화인데다가 언어의 장벽도 없으니까 날마다 공원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그 근방 다운타운에 제법 큰 상가건물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네요.
그 건물에 세들어 월세를 내는 가게만 6-7개가 되는 그런 mall이었던 것 같아요.
그 할아버지는 어마어마한 부자는 아니지만 다른 건물과 사업체도 운영하시던 나름 재력가이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이제 그만 은퇴를 하신다며 제 친척에게 이런 말씀을...

"내가 가지고 있는 건물, 네가 맡는 건 어때?"
"내가 가지고 있는 건물, 네가 맡는 건 어때?"
"내가 가지고 있는 건물, 네가 맡는 건 어때?"


여러분, 잠깐 진정하십시오!
오케이


공짜로 준다는 게 아니라
만약 제 친척이 하겠다고 하면 싼 값으로 파신다고 하신 거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싸게 주신다고 해도 그 당시 겨우 20대 후반이었던 제 친척이 그 정도 건물을 살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도저히 계산이 안 나와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대답했지만 집에 와서 밤새 뒤척이며 생각해 보니 인생에 이만한 기회가 다시 없을 것 같았다네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그러니까 저희 어머니의 외삼촌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어머니의 외삼촌은 당시 캐나다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계셨는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달라고 부탁한 것이죠.
그리고는 다시 공원 할아버지에게 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travelro.co.kr)

얼마면 되겠어요?
건물? 대출로 사겠어요.
얼마면 돼요??

 

하여 할아버지는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건물을 넘겨주셨고 제 친척은 아버지께 빌린 대출금을 갚아야 하긴 했지만 서른도 되기 전에 이미 상가 건물주가 되었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2년쯤 지나서인가 저희 할머니와 삼촌이 캐나다를 방문하셔서 일주일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셨는데 후일담이 어마어마합니다.
그 운 좋은 친척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그 나이에 이미 벤틀리 승용차를 몰고 있었다는군요.
저랑은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 했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지금은 그 건물에 큰 식당까지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하구요.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실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죠.

담배2 내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그 할아버지도 사실은 백만장자였을지도 몰라. 하루 종일 이 버스 저 버스 갈아타시며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사람을 찾고 계셨던 걸지도 모르지. 그 때 나의 식~빵! 뜯어먹는 영어 실력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내 인생은 어땠을지...?


후후훗~ 저는 타고 나길 몽상가라 이런 얼빠진 상상 시나리오가 몇 만개는 더 있답니다.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림 실력 또한 식~빵 백만개 뜯어먹는 형편이라 포기하고 말았지요.
이래저래 씁쓸한 얼굴로 물러갑니다요~

여러분, 싱싱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