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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Colleges

미국 학교 다녀보고 직접 느낀 가장 좋은 점 두 가지

by 이방인 씨 2012. 11. 9.

제 블로그에는 종종 어린 학생들이 살짝 비밀 질문을 던져놓고 가곤합니다.
대부분 유학을 가고 싶은데 어찌하면 되는지, 혹은 미국 학교는 어떤지 묻는 질문들이죠.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지만, 간혹 중학생이나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있더군요.
그 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한 중학생의 이야기였는데 한국의 교육현실이 너무 버겁다며, 지금도 힘든데 앞으로 고등학교 가면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다고 유학을 가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휴~ 참...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저 역시 한국에서 0교시와 자율학습 그리고 무한경쟁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는 정말이지 학교를 굴러다녔다고 표현해도 될만큼 편한 생활이었죠.
그리고 그 정도 학업조차도 열심히 하지 않는 미국 아이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학교에 갇혀서 공부하는 제 친구들이 너무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제게 질문을 남긴 많은 학생들이 유학을 오고 싶은 이유로 학업 부담이 적고, 자유로운 외국 학교의 분위기를 꼽았는데, 사실 그도 그렇지만 제가 직접 다녀보며 느낀 미국 학교 최고의 장점은 따로 있답니다.

 

첫번째 - 철저한 카운셀링

떨리는 마음으로 미국 고등학교에 첫 발을 들여놓은 날, 제가 한 일은 카운셀러를 만나는 것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영어를 잘 못할 때였는데 카운셀러가 어디에 띡 전화를 하니까 수업 중이던 교실에서 한국 학생이 하나 내려오더라구요.
그 학생의 도움을 받아 카운셀러와 자세한 면담을 거치고 수업 시간표도 짜고 학교 시스템도 배웠죠.
그 날은 선생님을 만나지도, 수업에 참여하지도 않고, 내내 카운셀링만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다니던 그 학교는 전교생이 1500명이었는데 그 당시 약 8명의 카운셀러가 있었습니다.
여러 인종이 함께 다니는 학교였기 때문에 카운셀러 역시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이 다 있었죠.
전교에 한국 학생이 6명뿐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카운셀러는 없었지만요.

카운셀러들의 주된 업무는 학생들의 고민과 진로상담입니다.
그 때까지 카운셀링에 익숙하지 않던 저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찾아가지 않았지만 미국 아이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카운셀러를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더라구요.
학교 복도를 지나칠 때도 선생님들보다 오히려 카운셀러들과 허물없이 수다를 떨기도 하구요.

 

 

저는 주로 진로상담 때만 카운셀러를 방문했었는데요.
미국 고등학교의 카운셀러들은 대학입시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학생의 관심분야에 맞는 전공과 성적에 맞는 학교 선택뿐만 아니라 입학원서 및 자기소개 에쎄이 작성에 관한 총체적 도움을 모두 받을 수 있습니다.
저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캘리포니아말고 다른 주에 있는 대학에 관심이 가는 전공과목이 있다고 말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그 학교 번호로 전화를 하더라구요.

 

안녕하세요? 저는 캘리포니아주 OO학교의 카운셀러 OO 입니다. 우리 학교의 학생이 그 대학 OO과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자세한 커리큘럼이나 입학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이 때 가만히 보고만 있던 저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아니, 저렇게 막무가내로 들이대도 되는걸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다음 상황 전개가 더 감탄스럽습니다.
그 대학의 입학상담 카운셀러에게 곧바로 전화가 연결되더니 둘이서 쏼라쏼라 말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잠시 후, 제 손에는 그 대학교의 카운셀러의 연락처와 해당 학과의 커리큘럼 프린트가 들려져 있었죠.

이렇게 미국의 학교에서는 학생들과의 카운셀링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의 카운셀러는 당연히 저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쳐도 상대 대학의 카운셀러 역시 성의를 다해 응해주었다는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죠.
그런데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보니 그런 일들을 당연하게 느끼게 되었답니다.

제가 미국 대학에서 받은 카운셀링은 고등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질의 도움이었습니다.
심지어 성적이 떨어지면 카운셀러를 만나보라고 집으로 편지가 오더라구요. ㅋㅋㅋ
학사관리가 엄격했던 저희 학교만 그랬던 것인지,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성적이 떨어지면 카운셀링을 받으라는 권고가 떨어지죠.
의대, 약대, 치대 등등 각종 대학원 진학을 위한 카운셀러들이 따로 있고, 학과별로 취업진로에 대한 상담과 워크샵과 인턴 정보도 모두 카운셀러에게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체육특기생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을 위한 특별 카운셀러도 있어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해주고 있죠. 

학업문제외에도, 인생의 총체적 어려움을 상담해주는 카운셀러들이 많습니다.
제가 예전에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 심리치료사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게 바로 학생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학교의 카운셀링 서비스 중의 하나였어요.
심리, 정신 상담은 물론이고 사회생활, 경제난, 가정폭력을 비롯해 마약 알콜 중독 등등 온갖 문제의 상담을 학교에서 다 해주고 있는데 카운셀러들은 모두 각 분야의 전문 선생님들입니다.
심지어 가정폭력과 마약 분야의 카운셀링 오피스에는 경찰관계자들과도 금새 연락을 취해줄 정도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카운셀링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학생들이 잘 몰라서 이용을 못 한다며 이러이러한 카운셀링 서비스가 있다고 홍보를 해야할 정도였으니 뭐 말 다했죠.

저도 한번 이민생활에 너무 지치고 향수병으로 고생할 때, 밑져야 본전이라고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는 고민상담 카운셀러를 만난 적이 있는데 뭐랄까...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찾아가서 한~~ 오백년을 신세한탄을 했더니 말하는 저는 담담한데 듣고 있던 카운셀러는 울더라구요. ^^;;
한 눈에 봐도 케이크나 쿠키를 잘 구울 것 같은 넉넉한 백인 아주머니였는데 시간이 다 되서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제 어깨를 꼭 안아주시더니 "굳이 카운셀링이 아니어도 나한테 자주 찾아오고 그래." 하시더군요.
너무 창피해서 다시 찾아가진 못했지만 아직도 그 분 얼굴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기억입니다.
진로상담 카운셀러분들은 조금 딱딱한 면도 있는데, 고민상담 카운셀러분들은 대체적으로 다정다감하고 참 좋더라구요. ^^

저는 조금 낯을 가리는데다가 카운셀링에도 적극적이지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때 조금만 더 용기를 냈었으면 훨씬 학교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만약 지금 미국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있다면 가능한 모든 카운셀링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라고 꼭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두번째 - 선생님도 똑같아서 쉽게 친해질 수 있어요

그다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 탓인지 제가 한국에서 받은 교육은 상당히 구시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씨 깨끗하게 쓰기부터 선생님께 똑바로 인사하기까지 엄격하게 가르침을 받은 데다가 체벌도 자주 받은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권위적이고 근엄하고, 절대로 가까워질 수는 없는 벽처럼 느껴졌죠.
모르는 게 있어도 선생님께 잘 묻지도 않았고, 간혹 눈치 없이 선생님께 복잡한 질문을 하는 아이들은 쓸데없는 것 물어본다고 야단도 맞았었어요.
선생님이란 대단한 권위를 가진, 뭐든지 아는 분이라는 분위기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님이 모르는 것은 아이들이 질문하면 안돼기 때문이죠.
실제로 수업시간에 간혹 아이들이 어려운 문제를 질문하면, 선생님도 모르는 눈치인데 대충 임기응변으로 때우거나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곧 죽어도 "나도 모른다" 는 말씀은 하시지 않았죠.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선생님으로서의 권위가 추락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에 왔더니 미국 선생님들은 툭툭 잘도 하는 말이 I don't know 더라구요. ^^;;

 


미국 아이들은 차~암~ 호기심이 많아서 질문 세례가 끊이질 않아서 수업 중에 선생님보다 아이들이 말이 더 많을 때도 있습니다.
워낙 별 거 아닌 질문을 많이 하고 수업의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생뚱맞는 이야기를 묻기도 해서 제 시선으로 보면 어이가 없을 때도 있었는데 미국 선생님들은 개의치 않고 질문을 장려합니다.
대학시절 교수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학생쯤 되니 남들이 혹시 날 바보라고 생각할까봐 공개적으로 질문하기를 꺼리는 학생들도 많은데요.
한번은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Don't be afraid to ask.
There are no stupid questions. There are only stupid people who ignore them.

물어보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멍청한 질문이란 건 없다. 다만 그 질문들을 무시하는 멍청한 사람들이 있을 뿐.

 

근데 황당한 건, 그래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 "모른다"는 대답이 왜 이리 많이 돌아오는 건지요. ㅋㅋㅋ
미국 선생님들은 모른다는 대답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신이 아닌 이상, 아무리 학생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는게 당연하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선생님의 입에서 모른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선생님 자신도 그렇고 학생들도 용납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교수님이 "나도 모른다" 고 하셔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한 분은 미국 학회에서 주는 엄청난 상을 받으신 분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모른다" 고 하시고 학생들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어요.
물론 거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모른다고 대답한 질문에 반드시 다시 답을 해주십니다.
강의가 끝나면 직접 공부하시거나 알아보시고는 질문한 학생 개인에서 따로 답을 해주시거나 혹은 다음 강의 시간에 모두에게 설명해주시죠.
제가 경험한 교수님들 중에는 그렇게 본인도 모르는 질문을 해서 공부할 기회를 준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감사를 표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이렇게 선생님도 결국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학생들과 선생님의 거리감이 별로 없다는 것이 미국 학교의 또 하나의 장점입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선생님을 우러러봐야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보다 먼저 깨우친 존재, 나보다 많이 아는 존재" 라는 믿음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선생님과 학생들의 수직거리가 멀어지고, 교감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미국에서 선생님이란 "나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에 나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라는 인식이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 덕분에 선생님이란 권위적이기보다 학생들과 가장 친밀한 관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한국이었다면 생각조차 안했었겠지만, 강의가 끝나면 교수님을 First Name 으로 부르면서 마치 친구처럼 점심을 함께 하며 토론을 할 수도 있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이죠.
심지어 올해 갓 대학을 졸업한 제 사촌동생은 툭하면 친한 교수님이랑 스마트폰으로 잡답을 하더라구요.
한번은 전화통화를 하는데 너무 캐쥬얼하게 낄낄거리길래 친구냐고 물었더니 Kinda~ (응, 뭐 일종의.) 라고 하기에 친구면 그냥 친구지 "일종의 친구는 뭐야?" 했더니 자기네 학교 경제학과 교수님이래요. ㅋㅋㅋ
저도 학교를 졸업하고 오래 지나서도 이메일로 시시콜콜 안부를 주고받는 교수님이 있으니 제게도 그 "일종의 친구" 가 있는 셈일까요? ^^

오늘은 제가 느낀 미국 학교의 장점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 해봤는데요.
아이고~ 암튼 저는 무슨 말만 하면 엿가락처럼 죽죽 늘어나는 통에 오늘도 스크롤의 압박이 있네요.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달달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
부디 좋은 하루 보내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