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미국 우리동네 한식당들의 당당한 패기

by 이방인 씨 2014. 4. 16.

번 언급한 대로 제가 사는 곳은 한인 인구가 비교적 적은 지역이랍니다. "비교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L.A.를 위시한 캘리포니아 남부에 비하면 현.저.히. 적지만 온 동네를 뒤집어도 한국인 몇 명 찾기도 힘든 다른 어딘가보다는 많기 때문이죠. 이 지역에는 적어도 한인 교회 하나 (였나 둘이었나?)와 작지만 영업하는 한식당 세 곳이 있거든요.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은 세 군데지만 그 중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불판 및 후드를 갖춘 곳은 하나 뿐이라 갈비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유일합니다. 그나마도 소고기 밖에 없어서 삽겹살은 못 먹지요. 이렇게 희소성의 가치가 높은 식당들이지만 저는 1년에 한두 번 가는 정도에 그치는데, 그들의 패기가 대~단하기 때문이랍니다.


첫번째 - 손님, 제법이시군요!


이 근방에서, 장거리 운전을 피하고, 갈비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식당에 가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앞에 놓인 불판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물망처럼 생긴 불판 대신 구멍이 하나도 없는 두꺼운 불판이었는데 언뜻 봐도 위생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더라구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냅킨으로 불판을 살살 닦아 보니,

헛, 허엇~!

이방인 씨 순식간에 Shoe Shine Girl로 변신 완료!!!
나는 갈비집이 아니라 직업체험관에 온 모양이로구나~


냅킨에 묻어나오는 검고 끈적이는 무언가는... 양파를 찍어 먹으면 맛있다는 춘장은 아니었겠지요. 기름때가 어디까지 나오나 보려고 냅킨을 또 한 장 꺼내 문지르고 있는데 마침 고기를 들고 오신 중년의 웨이트리스 분이 그 광경을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그거 닦으셨어요? 잘 하셨네~"

 

에엥~?!!

"잘 하셨다"니... 칭찬 감사합니다.
이걸로 America's Got Talent에 출전해 볼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그분의 지.나.치.게. 태연한 반응에 당황하여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미 고기는 불판 위에 척- 하고 올려졌습니다. 순식간에 불판에 고기를 꽉 채워 올려놓으시는 아주머니의 놀라운 집게 신공은 마치... 그것은 치...!


사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빨대부터 꽂고 들이대신다는
전설의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선빨대 후지불 전략과 흡사했지요.


내 눈으로 직접 기름때를 확인한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고기...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는 사람, 그리 많지는 않을 걸요???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그 극소수의 사람이...

바로 저예요!!!

와하하하핫
나는 음식 앞에 관대하다~


사실은 제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밉상 진상 화상 손님들을 많이 상대해 봐서, 어딜 가든 종업원과 실랑이하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이 경우에는 실랑이라기보다 정당한 항의였겠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대충 식사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물론 그 식당에 두. 번. 다.시. 발길을 안 한 것도 당연했죠. 


두번째 - 한민족이라면 역시!


고기집 말고도 설렁탕이나 국밥 등의 서민적 한식 요리를 하는 식당이 한 곳 있는데 한인 커뮤니티에 '그 집 음식 못 한다'는 평이 자자하여 갈 엄두를 못내다가 어느 날은 순대국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찾아갔습니다. 미리 악평을 듣고 갔으니 딱히 기대하는 것도 없이 그저 순대국밥의 기본만 하기를 바랐죠. 그리하여 받아든 순대국밥은... 한민족의 얼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국밥 대접에 순대가 딱. 네. 개. 들어 있었어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여백의 미를 중시했죠.

이역만리 미국 땅에 와서도 조상들의 예술적 기질을 잊지 않고 장사를 하시다니...

순대 하나에 매화가지를 그려 내고~
순대 둘에 난을 치고~
순대 셋에 국화 향기를 흩날리고~
순대 넷에 대나무가 쭉-쭉- 자라니~

순대국밥 한 그릇만 더 먹었다간 군자삼락(君子三樂)을 읊을 판이로구나~!



세번째 - 팔색조의 매력


나머지 하나의 식당은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이긴 한데... 정체성을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무.거.나. 다 파는 곳이었답니다. 불고기 백반을 파는 와중에 해물파전도 팔고, 떡볶이도 있고, 돌솥비빔밥도 있고... 아마도 주방장께서 그 날 땡기는(?) 요리가 메뉴에 추가되는 듯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So So Cool~한 식당이었죠. 저도 돌솥비빔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비빔밥이라는 게 재료만 신선하다면 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음식이기도 하고, 제대로 된 돌솥에 먹으니까 맛있더라구요. 꽤 만족스러웠기에 한 달 조금 지난 후에 다시 찾아갔더니... 그랬니...!


치킨 집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확실한 주메뉴가 없어서 장사가 잘 안됐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느닷없이 치킨집으로 전업을 하시다니... 적잖이 헛웃음이 나왔지만 다행히 치킨 하나에 매진한 뒤로 매출이 상승했는지 여전히 영업을 하고 계시네요.


한국 혹은 남가주에 계신 독자들이 들으면 요절복통할 내용이지만 한인 인구가 적은 곳의 현실이랍니다. 한식을 소비하는 인구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대체적으로 한식당들이 흥하기 힘들어 서비스나 음식 맛의 수준이 과히 좋지 못한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 없으니 요~상한 독과점 형태로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흐음~ 블루오션을 노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닐 텐데...

이참에 이방인 씨의 근본 없는 한식당을 열어 볼깝쇼?!!!


누구였더라... 흥할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저 자신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제가 처음 도전해서 만들어 본 한식 요리를 다 먹은 후 내뱉은 한마디로 오늘 글을 마칠까 합니다.


"잘 먹었다. 근데 맛은 언제부터 나는 거냐?"

.
.
.

귓구녕(?) 청소하고 잘 들어 둬...
내 요리의 맛은, 마치 산타클로스 같은 거야.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있지만 1년에 딱 한 번만 쥐도 새도 모르게 왔다 가지...
그나마도 우는 아이에게는 절대 찾아오지 않아!


여러분, 신나는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