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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 기자의 "미국식 영웅주의" 비판

by 이방인 씨 2014. 4. 21.

19세기 미국의 작가 Emerson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영웅이란, 특별히 용감한 이가 아니라 단지 남들보다 5분 더 용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요 며칠 이 말이 제 머리 한 켠에 머물고 있답니다. 세월호의 선장에게 '승객들보다 5분만 늦게 탈출하리라'는 책임감이 있었더라면... 하고 말이죠.


여러분 이런 류의 농담 한 번쯤은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추락하려는 비행기에 낙하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비행기 안에 타고 있던 세계 각국의 승객들에게 기장이 이렇게 외쳤다.

독일인에게는, "그냥 뛰어내리는 것이 이 비행기의 규칙입니다!"
이탈리아인에게는, "그냥 뛰어내리면 여자들이 몰려들 겁니다!"
프랑스인에게는, "절대 그냥 뛰어내리지 마십시오!"
일본인에게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냥 뛰어내리고 있습니다!"
미국인에게는, "그냥 뛰어내리면 당신은 영웅이 됩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각 민족의 특성을 소재로 한 유머죠? 미국인들의 드라마틱한 영웅주의는 이렇게 우스개에 쓰일 만큼 타국에서는 풍자 및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저 역시 평소 미국인들이 American Heroes 어쩌고 저쩌고 할 때마다 '차~암~ 호들갑스러우셔들~' 하며 웃었던 사람 중 하나랍니다. 그런데 고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유치하다 생각했던 그 영웅주의가 일순 부러워지기까지 하네요.

모든 것은 가정일 뿐이니 동일한 사건이 미국에서 벌어진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리라는 확언은 할 수 없지만, 자연스레 영웅주의를 주입 받으며 자라는 미국인들이다 보니 적.어.도. 선장과 선원들은 학생들의 구조를 우선시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세월호에도 숭고한 영웅들이 많았죠? 끝까지 승객들을 위한 안내방송을 하다 숨진 분도 계셨고, 친구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양보한 학생도 있었고, 어린 동생을 먼저 생각한 마찬가지로 어린 오빠도 있었구요. 하지만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의 빠른 발(?) 탓에 그 영웅들이 스러져갔네요...


언젠가 미국 저널리스트의 영웅주의 비판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민간) 영웅의 출현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국가적 재앙이 닥쳤을 때 관련 기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있다면 시민 영웅이 등장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동양에도 "난세(亂世)에 영웅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가 정상적으로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영웅이 활약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선장과 선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세월호의 침몰 과정도 그렇고, 그 후 벌어지고 있는 구조작업 상황도 그렇고 난세임은 틀림 없네요...

뉴스를 보니 국민들의 심리적 재난마저 염려된다고 하는데 무어라 위로할 수 있을까요. 안타까울 뿐입니다... 전 세계가 응원하고 있습니다. 빠른 구조는 물론이고 여러분 마음의 상처의 치유를...!

희망을 잃지 않는 월요일 시작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