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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미국에 살면서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순간

by 이방인 씨 2014. 8. 15.

로 어제 그런 일이 있었답니다. 저 자신에게 실망을 느낀 순간이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여러분께도 들려 드릴게요.

어제 식당에서 세 명의 흑인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어찌나 큰 목소리로 떠들던지 절로 눈길이 가더라구요.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이런 광경이...

 

(웹에서 구한 사진이라 초상권 보호를 위해 얼굴을 가렸습니다.)


목소리 만큼이나 덩치도 큰 세 명의 African-American들이 들어오더니 세 명이 하나같이 다리를 쩍~벌~하고 자리에 앉더라구요. Bling Bling한 것은 물론이고 셋 중 가장 덩치가 큰, 아무래도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Golden grill을 끼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거죠.


제 가까이에 앉은 그들을 보고 솔직히 쫄.았.습.니.다. (이것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 하겠네요.)


그래요, 저 무서웠어요!


대략 저런 모습을 한 사람들이 범죄 뉴스에 등장하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별 수 없노라고... 변명해 볼까요? 게다가 미국에서 십 수년을 보냈어도 제가 사는 지역은 흑인 인구가 적기도 하고, 제 주변에 없기도 해서 저런 광경은 낯설거든요.

어쨌든 저는 얌~전히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이들이 계속 큰 소리로 떠들었기 때문에 귀는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Fxxx이 들어가지 않으면 문장이 완성이 안되더군요. 자기들끼리 한참 웃고 떠들더니


갑자기!


저한테 말을 걸어왔습니다. 서로 우스개를 주고 받다가 내 말이 맞네, 네 말이 맞네 하는 것 같더니 결국 저한테 누구 말이 맞냐고 묻더라구요. 그냥 대답만 하면 되는데 긴장한 저는 '나도 잘 모르겠다'며 버벅거렸습니다.


그러자!


그 황금니를 한 사람이 제게 "YO, DON'T FXXX UP!" 하는 겁니다.


노...노력해 볼게...요.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무조건) 당신 말이 맞아요. (여부가 있겠습니까)"라고 했더니 호탕하게 웃으면서 좋아하더라구요. 그러자 나머지 둘은 저를 보며 볼멘 소리를 하기 시작했지만 저는 일단은 황금니의 사람만 신경썼습니다. 제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그 후로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목소리가 천둥처럼 큰 것과 비속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 말고는 나름 평화로운 잡담이었습니다. 헤어질 때는 다정한 인사는 물론이고 저한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의 고향 말로 "잘 가"는 어떻게 말해?"


가장 쉬운 "안녕"을 가르쳐 주자 그 덩치의 사내들 세 명이 전부 "아녕" "안넝" "안영" 하며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어찌 웃지 않으리오. 그렇게 짧지만 강렬했던 조우를 마치고 혼자 생각해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더군요.

이 일화 하나만 가지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을 겁니다. 겉모습만 보고 껄렁(?)한 사람들이라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제 예상보다 편안하고 재밌는 대화를 잠깐 나눴다고 해서 선량한 사람들이라 단정지을 수도 없죠. 그들은 그야말로 제가 "모르는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속으로 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말이예요!


무의식적 편견의 힘이 그토록 강한 거죠.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봤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아마 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The Color of Fear>라는 작품으로, 미국내 인종간의 갈등과 차별을 다룬 수작입니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이 모여 솔직한 토론을 하는 내용이죠.

 


대화 중 토론에 참여한 흑인이 이런 요지의 발언을 합니다.


'차별하지 않는다 말하면서도 흑인이 지나가면 차 문을 잠근다.'


겉으로는 차별적 언행을 보이지 않아도 속으로는 흑인들을 위험하고 불량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非흑인계의 편견을 꼬집은 거죠.

저도 꼬집혀야겠습니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 인종의 구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인종차별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싫어했는데! 씁쓸하게도 아직 갈 길이 머네요.

여러분 자유로운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