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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만날 때마다 날 열받게 한 미국인 할머니 & 할아버지

by 이방인 씨 2012. 3. 13.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은 혹은 서구인들은 조금은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한국인들에 비해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죠.
저 역시 미국에 오기 전에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십년 넘게 살아보니 캘리포니아의 경우, 대부분 그런 선입견이 맞아떨어지더군요.
하지만 때때로 유연하기는 커녕, 사람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벽창호 같은 미국인들도 만나게 되더라구요.
오늘은 만날 때마다 저를 열받게 한 (정말 솔직하게는 뚜껑 열리게 한) 미국인 벽창호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첫번째 - 만날때마다 나를 쪼아댄
미국 할머니


미국에는 Community College 라는 작은 대학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커뮤니티 컬리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민들을 위한 교양, 문화센터 역할을 겸하고 있는 2년제 대학들이죠.
저 역시 저희 동네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제공하는 도자기 공예 강좌를 들었었는데요.
일종의 취미 강좌이다보니, 학생들의 성별과 연령도 아주 다양합니다.

첫 날, 제 옆자리에는 60세를 넘기고 은퇴하신 미국인 할머니가 앉으셨는데요.
초면인 사람끼리도 재잘재잘 수다를 잘 떠는 미국답게, 저랑도 바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미국 동쪽 끝의 메인주에서 평생 사시다가 은퇴하시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셨다고 하더라구요.
미국에는 노인들이 은퇴하고 나서 날씨가 좋다는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메인주는 그야말로 전통의 백인지역으로, 유색인종이 메인주에 들어가면 길을 잃은 줄 알고 경찰이 쫒아온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죠.
그 곳에서 사시던 할머니가 운전면허시험이 무려 31개 언어로 제공되는 캘리포니아에 오셨으니 별세상이죠.
할머니는 한국사람을 만난 건 제가 처음이라면서 이것저것 물으시더라구요.
기본적인 호구조사가 진행되던 중에, 제가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대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할머니께서 제 나이를 물으시길래, 저는 만 20살을 넘긴 지 얼마 안된다고 대답했죠.
 

근데 왜 아직 부모님 집에서 살아? 그 나이에도 독립을 안하고?


그래서 전 웃으면서 한국식 관습으로는 대학생 자녀는 학교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한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설명해드렸지만 그 할머니 도저히 이해를 못하십니다.
일주일에 2번 저녁에 열리는 강좌인데, 만날 때마다 저를 괴롭히시기 시작하시더라구요.
계속 제 옆에 앉으셔서 도대체 왜 부모님 집에 눌러 사느냐 그 나이에 일도 안하느냐 부모님은 뭐라고 안하시냐 등등 한 학기가 16주니까 무려 4개월 동안 저를 집요하게 추궁하시는 게 아닙니까.
처음 3-4주간은 웃으면서 문화차이에 대해 반복 설명했지만 나중엔 정말 뚜껑 열리더라구요. -.-^ 
특히 그 할머니는 60평생을 백인들의 스탠다드한 삶만 경험하셔서 그런지 백인들의 생활방식만이 옳다는 인식이 좀 있으셨어요.
그래서 저나 저희 부모님을 조금 깔보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시더군요.
이제 갓 대학교 3년이 된 저를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표현으로는 Loser 요즘 한국 표현으로 하면 완전 찌질이 취급을 하시더라구요.
처음에는 한국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시켜 드리려 했지만 나중에 이 분은 무슨 말을 해도 이해 못하는 분이라는 걸 깨달아서 "대학 졸업하면 그 때 독립하려구요. ^^;" 이러고 말았습니다.
학기 마지막 날까지 그 할머니는 끝끝내 제게 
 

Now when will you be independent? 도대체 언제 독립할거야?


라고 마음에서 우러난(?) 마지막 인사를 남기셨네요.



두번째 - 내 이름을 무시하고 항상 "한국인" 이라고 부르시던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는 제가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분입니다.
아주 깡마르시고, 한눈에 보기에도 깐깐한 흑인 할아버지시죠.
미국에는 아주 독실한 흑인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시스터 액트라는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신나는 가스펠을 부르면서 교회에서 열성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하는 흑인 기독교인들 말입니다.
이 할아버지 역시 교회에 충실하신 분으로, 공원 벤치에서 한 숨 돌리고 있던 제게 다가오시더니 "너 중국인이니?" 하시길래, "전 한국인이예요."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제 이름은 '한국인' (Korean) 이 되었습니다.

한 동네에 사는데다가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보니 원치 않아도 자주 마주치게 되더라구요.
그럴 때마다 연세에 비해 시신경이 좋으신듯한 그 할아버지는 멀리서도 저를 알아보시고 이렇게 부르십니다.
 

Hey, KOREAN~~ Come over here. 어이, 한국인! 이리와 봐.

 

그럼 별 수 있습니까?
폴폴거리며 달려갑니다.
그리고 소용없는 짓이란걸 알면서도 이미 몇 번이나 가르쳐드린 제 이름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시는 할아버지, 본론은 늘 같은 이야기입니다.
 

KOREAN, You go to church? Go to church. 한국인, 너 교회 다니냐? 교회 나가라.

 

끄응.........
안타깝지만 전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만날 때마다 허구헌날 심지어 꿈에서도 말씀을 드리건만 소용이 없죠.
한번은 저희 어머니랑 장을 보러 간 마켓에서 마주쳤는데, 마켓 안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킬 만한 큰 목소리로 또 "Hey,  KOREAN~! Come over here" 하셔서 저희 어머니가 " 어머어머, 저 할아버지 왜 저러신다니? 너 아는 분이니?" 하셨죠.
물론 나쁜 뜻으로 하시는 행동이 아니시니까 만날 때마다 조금 당혹스러워도 대화를 하긴 했지만 그것도 오래 지속되니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아서 할아버지를 피하게 되더라구요.

이제는 제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더 이상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뵙지는 못하지만 종종 생각이 나곤 합니다.
물론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시라 그랬겠지만, 미국인들도 우리의 생각 만큼 쉽게 다양성을 인정하는 유연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늘 제가 잊지 않게 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시랍니다. ^-^

재밌게 보셨길 바라면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