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elcome to California

네 이웃을 감시하라

by 이방인 씨 2011. 9. 23.

늘은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조금은 거북한 미국 문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Neighborhood Watch'라고 하는 주민자율방범 프로그램인데요. 이 프로그램의 강령은 아주 간단합니다. 당신의 이웃을 감시하고 수상한 행동이나 법에 저촉되는 행위는 가차없이 신고하는 것이죠.

 

 

 

 저희 동네에 붙어 있는 안내판입니다.

 

항상 옆집을 주시하라는 뜻의 눈동자 밑으로 "우리는 모든 수상한 행동을 즉시 경찰에 신고합니다" 라고 쓰여 있네요. 이 주민자율방범 프로그램은 채택한 지역에만 적용되는데 미 당국에서는 이 프로그램 채택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인건비가 드는 공권력의 투입 없이 주민들의 힘만으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캔사스주의 네이버후드 와치 안내판이네요.
역시 "우리는 경찰에 신고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은
'
이웃사촌'이라 하여 정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천인공노할 일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옆집 이웃이 항상 당신을 감시하고 작은 범법행위마저 경찰에 신고한다고 생각하면 말 그대로 정이 뚝 떨어지죠. 글을 읽는 분들은 '설마 진짜 신고하겠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저희 가족은 한적하고 조용한 주택가에 살고 있는데 거리는 항상 깨끗하고 주차위반이나 쓰레기 투척 같은 가벼운 범법행위조차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시민의식이 좋은 탓도 있지만 이웃들이 서로를 감시하는 것도 한 몫 하겠죠.

 

 

 

 

한 번은 아버지가 공용 주차선을 조금 넘겨 (앞바퀴가 살짝 선에 걸쳐 있었죠.) 차를 세우신 적이 있는데 아침에 차 유리창에 이웃에게서 신고가 들어왔다는 안내문과 함께 $95 (한화 약 10만원)의 벌금 티켓이 끼워져 있었답니다. 또 언젠가는 쓰레기통을 집 앞에 잠시 세워 놓은 적이 있었는데 역시 주민의 신고가 들어왔다며 주택가의 미관을 해치는 행위에 해당하니 쓰레기통은 반드시 뒷마당에 안 보이게 놓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구요. 


여기서 끝이 아~니죠!

아버지가 제일 분개하셨던 일은 바로 이웃주민이 우리가 잔디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신고를 한 사건(?)입니다.
집 앞쪽으로 나 있는 앞마당의 잔디는 역시 주택가 미관상 상당히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마당 잔디를 아름답게 가꾸는데 상당히 집착이 심하거든요.) 잔디를 깔끔히 관리하지 못하면 동네의 품위가 떨어진다는 것이 신고의 이유였습니다. 신고한 사람의 신원은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에 대화로 풀어 볼 여지가 없는 것도 실망스럽지만 더 큰 문제는 누가 신고를 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의 핵심입니다.

 

헉4 

누구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것


무슨 대단한 추리소설이라도 되는 것 같죠?
깨끗하고 평화로운 동네를 만들기 위해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정 떨어지는 방법이 동원되고 있답니다.
 

 

 

 

 


이 안내판을 보면 그 비정함이
더 확실히 느껴집니다.
"내가 신고하지 않으면 내 이웃이 할 것이다" 이런 칼 같은 미국인들의 신고정신 덕분에 저희 동네는 오늘도 지루하리만큼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어디에선가 나를 지켜보는 내 이웃이 있겠죠.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식이긴 하지만 저희 식구들은 이제 쓰레기를 길에 버린다거나 주차를 적당히 한다거나 하는 가벼운 실수조차 하지 않는 모범시민이 돼버렸답니다. 


미드나 미국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인들은 항상 생글생글 웃으면서 사람을 대합니다. 제 이웃들도 모두 모르는 사람에게도 거침없이 아침 인사를 건네고 농담을 하며 웃는 얼굴로 헤어지지요.

그러~나!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신고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대 반전이 있는 겁니다!
 
 윽2


 

이쯤되면 정으로 산다는 한국사회가 그리워질 법도 한데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을 때 깨끗함과는 거리가 있는 서울의 거리와 무질서한 모습에 고생깨나 하고 나서 저는 서로 감시하는 미국 생활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느꼈답니다. ^^;; 이웃사촌은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제가 매일 산책하는 길에는 지나가는 누군가가 침을 뱉을 일도 담배를 피울 일도 없거니와 동네에 범죄자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죠. 역시 각기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거겠죠. ^-^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렇다고 모든 미국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이웃이 뭘 잘못하나 감시하는 건 아니니 오해 마세요. ^^ 이런 프로그램이 있고, 또 유독 신고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