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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처음 보고 의아했던 미국 은행의 아날로그적 입금방법

by 이방인 씨 2014. 3. 12.

제가 한국에 살던, 교복입고 다니던 여중생 시절에 말이죠...
저희 어머니께서 체크 카드라는 것을 처음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에메랄드 색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져 있던 농.협.카.드.로요.
혹자들은 초록도 아니고 연두도 아닌 흐리멍텅한 색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생애 처음으로 카드라는 것을 가진 제 눈에는 분.명. 에메랄드 빛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도 ATM 서비스가 훌륭해서 기계에 카드를 넣고 화면만 몇 번 두드리면 바로 입출금이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ATM으로 입출금을 할 때마다 어쩐지 어른 + 현대인이 된 것 같았던 단순한 제가 후에 미국에 와서 처음 맞닥뜨린 은행 밖 ATM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ATM이 아니라 그 옆에 자리하고 있는 이것 때문이었죠.

 

Deposit Drop Box라고 하는 것인데요.
입금 봉투에 돈/수표와 함께 서명한 입금내역서를 동봉해 이 박스에 넣는
매우 아날로그적인 입금방법입니다.
은행 직원이 정해진 시간에 Box안의 봉투들을 수거하여  전산처리 하는 거죠.


미국 최초의 ATM이 1969년에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Drop Box의 존재는 조금 의아하기도 한데요.
도대체 왜 이런 수동 Drop Box가 여전히 설치되어 있는 것일까요? (제가 이용하는 저희 동네 Bank of America에도 사용 가능한 Drop Box가 있답니다.)


첫번째 - 인류의 기술 발전? 난 반댈세!

"기계치"라는 단어도 있지만 기계기피증/기계공포증을 앓는 사람들도 있죠.
은행 밖에 편리하게 쓸 수 있는 ATM이 있어도 은행 안에 들어가서 창구 직원에게 일처리를 맡겨야 안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은행에 가 보면 바깥의 ATM 앞은 휑~한데 은행 안에는 입출금을 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광경도 볼 수 있구요.

이렇게 기계를 거부하는 분들이, 은행이 문을 닫는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어떻게 할까요?
기계기피증을 극복하고 ATM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속 편하게 Drop Box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죠.
(그래서 이것을 Overnight Drop Box/Night Depository 라고도 부른답니다.)
특히나 오랫동안 이 방식을 사용해 온 사람들에게는 ATM보다 익숙해서 편리할 테니까요.

기계불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Drop Box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고액을 입금하고 싶은 사람들은 ATM보다는 직원을 통하거나 Box가 더 낫다는 의견도 있더군요.
물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지폐를 넣었다가 기계가 오작동을 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은 사례들이 있더라구요.
$4,200이나 되는 돈을 줄 서서 기다리기 싫다며 ATM으로 입급하다가 기계가 돈만 먹고 영수증 트림을 하지 않아 은행 직원과 입씨름 끝에 소비자 보호 센터의 도움으로 일이 해결된 피해자도 있었고 말이죠.
은행마다 다르지만 Drop Box가 은행 내부의 금고로 연결되어 있는 곳들이 있기 때문에 ATM보다 Box가 더 안심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번째 - 급할 것 없소이다~

ATM의 장점은 편리함과 신속함이라고 할 수 있죠?
은행에 들어가서 줄 서기 싫은 사람들이 ATM을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겠죠.
그런데 만약 은행 안에도, ATM 앞에도 줄이 있다면?!!
일처리가 급한 사람들은 그 중 빨리 전진할 것 같은 줄에 서겠지만 급할 것 없는 사람들은 굳~이 줄을 서는 대신 Drop Box에 투척하고 가면 그만입니다.
대부분의 은행에서는 폐점 전이나 다음 날 아침에 Drop Box를 비우기 때문에 늦어도 다음 날이면 전산처리가 되거든요. (그 후 집으로 영수증을 보내주는 은행도 있다고 하네요.)
저처럼 눈 앞에 기한이 닥쳐야 일처리를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할 일은 미리미리 해 두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중 줄 서기가 싫거나 기계를 쓰기 싫은 이는 Drop Box를 사용하면 되겠죠.

에메랄드 농협 카드를 쓰던 제가 미국에 와서 이 Box를 쓰는 사람을 처음 봤을 때는 잠시 이런 생각도 했답니다.

 

이보시오들~ 이왕 ATM이 있거들랑 사용을 하시는 게 어떻겠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Drop Box도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좋은 서비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이 다 제각각이라는 건 두 말 하면 입 아플 소리고, 세상에는 ATM 따위 쓰기 싫다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여전히 Drop Box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소수라 할지라도) 제가 위에 언급한 두 가지 말고도 Box를 선호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죠.

오늘 글을 쓰고 났더니 저의 에메랄드 농협 카드가 겁~나 그리워지네요.
뭐든지 첫경험이 강렬하다더니요...

모두 시~ 시~ 시인~나는 하루 유후~!


미국 지역마다, 은행마다 방식이 다를 것으로 짐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