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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올림픽 때마다 미국인들이 부러워지는 이유 두 가지

by 이방인 씨 2014. 2. 11.

저는 지금까지 네 번의 하계 올림픽과 세 번의 동계 올림픽을 미국에서 시청했습니다.
현재 열리고 있는 소치 동계 올림픽 역시 집에서 NBC 방송으로 즐기고 있는데요.
올림픽 (혹은 그 밖의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 중계를 볼 때마다 미국인들이 자못 부러워지곤 합니다.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죠.


첫번째 - 다양한 종목을 골고루 중계한다

다음은 2월 10일 자, 서울경제 신문에서 발췌한 '[기자의 눈] 메달 못 따면 중계 안 하나요'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노선영은 지난 9일 우리 시간으로 오후8시30분 시작된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3,000m 예선에 팀 동료인 김보름·양신영 선수와 함께 출전했다. 메달을 따내리라는 기대감은 약했지만 동생을 위한 희망의 질주를 응원하는 국민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올림픽 방송을 중계하는 공중파 3사에서 편성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방송사들은 이 경기에서 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드라마 등 정규 편성을 유지했다.

지난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은 SBS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독점계약을 체결하면서 단독 중계했다. SBS는 당시 단독 중계에 대한 반대 여론을 감안해 봅슬레이·루지 등 비인기 종목에 대한 편성을 늘렸다. 지상파에서만 올림픽 경기를 200시간 방송했다. 당시 올림픽 중계에서 TV 해설자를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은 없었지만 우리 선수가 출전하는 여러 종목들을 볼 수 있었다.

4년이 지난 현재 방송 3사가 모두 올림픽을 중계한다. 선수 출신의 유명 해설자를 영입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고 '올림픽 대표방송'이라는 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하지만 다양성은 사라졌다. 금메달이 유력한 종목은 방송 3사가 중복 편성을 하고 메달 획득이 어려운 종목은 아예 편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노선영은 전날 25위로 경기를 마쳤다. 그는 "많이 아쉽다"며 고개를 떨궜다. 뉴스를 접한 누리꾼들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아래에는 또 이런 댓글이 줄을 이었다. "메달 못 따면 방송중계도 안 해주나요."


한국에서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닌 이런 중계상황, 미국에서는 벌어지지 않습니다.
메달을 따거나 못 따거나, 심지어 자국 선수 경기가 아예 없는 종목도 중계해 주더라구요.
한국 방송가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묘사할 때 가장 즐겨 쓰는 표현이 "세계인의 축제"인데 정작 중계상황을 보면 세계인의 축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선수가 출전해서 금.메.달. 따는 것이 제일 중요한 큰 대회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미국 방송사도 자국 선수가 맹활약한 경기를 집중조명하기는 해도 그 밖의 다양한 종목도 비교적 충실히 중계하기 때문에 정말 스포츠 팬들을 위한 방송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올림픽이 열리는 현장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세계인의 스포츠 대제전"이라는 취지를 만끽할 수 있죠.


두번째 - 시상대에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자 경사

아니, 시상대에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훌륭한 업적으로 평가됩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운동선수를 "Olympian"이라고 하는데 메달 획득여부와 상관없이 올림피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 여깁니다.
메달이라도 따게 되면 그야말로 선수의 영광이고 가문의 경사죠.

미국의 중계방송을 보면 메달 색에 대한 언급보다 "Podium"이라는 단어를 훨씬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시상대를 뜻하는 말인데 '메달을 딴다'는 뜻으로 "포디엄에 올라선다"는 표현을 주로 쓰죠.
메달 획득이 유력한 선수를 소개할 때도 한국 중계진들과 미국 중계진들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 - "과연 OOO 선수가 금메달의 기쁨을 국민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지...!

미국 - "OOO 선수, 오늘 포디엄에 설 수 있기를 희망하며 경기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자국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면 미국 중계진도 흥분하며 GOLD라는 말을 쓰지만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게 될 경우, 두 나라 중계진의 반응은 극명하게 다릅니다.

한국 - "아~ 아~ 너무 아쉽습니다. OOO선수, 최선을 다했지만 마지막 힘이 부족했습니다. 아~ 그래도 (← 여기 이 "그래도"의 의미가 참... ...) 잘했습니다.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잘 싸웠습니다."

미국 - "훌륭하게 올림픽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저 기뻐하는 모습을 좀 보세요! 그는 올림픽 메달을 딸 자격이 있어요!!!"


한국은 금메달에 무~척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나라죠.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올림픽 종합순위를 매길 때도 한국은 무조건 금메달 개수로 따지잖습니까.
다음은 미국과 한국에서 매긴 소치 올림픽 국가별 순위입니다.

 

 미국은 색에 상관없이 전체 메달 수로 순위를 매긴 반면
한국은 >>>> > 순으로, 복수의 은메달과 동메달이 금메달 하나를 이기지 못하죠.
때문에 두 순위표에는 노르웨이와 캐나다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고
특히 금메달만 2개를 획득한 독일이 미국에서는 8위지만 한국에서는 5위네요.


1등 컴플렉스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동메달을 따고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리는 외국 선수 옆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속상해하는 한국 선수의 모습을 보면, 이제 갓 20대 초반의 그 어린 선수가 너무나 애처롭고 한편으로는 가장 높은 곳의 1%를 제외한 99%가 좌절을 느껴야 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서늘한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그래도 요즘은 제가 한국에서 올림픽을 시청하던 그 시절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
올림픽 두세 번만 더 겪으면 동메달을 딴 선수에게도 "그래도 잘 싸웠습니다." (한국 캐스터와 해설자들은 참 드라마틱해요. 싸.웠.다.는 표현을 좋아하죠. ^^;;) 라는 말을 하는 중계진도 없어지고, 코치와 선수가 부둥켜안고 기뻐서 펑펑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전 세계 모든 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신나는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