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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thing & Everything

나에게도 백인 컴플렉스가 있었나?

by 이방인 씨 2014. 2. 1.

미국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미국내 흑백 갈등의 역사에 대한 공개 강연을 듣다가 흑인 꼬마 아이가 썼다는 시를 한 편 들었어요.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백인 아이들이 부럽다'는 내용의 시였는데 구절 중에 "fair children"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 때까지 제가 알고 있던 fair라는 단어는 "공정한" "어여쁜" 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였어요.
백설공주에 나오는 계모 왕비가 거울을 보며 이렇게 묻잖습니까.

 

"Mirror  mirror on the wall, who's the fairest of them all?"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처음에 fair children란 표현을 듣고 저는 "예쁜 아이들"을 말한다고 생각해서 이게 왜 흑백 인종차별에 관한 시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에 fair라는 형용사가 "피부가 하얀"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흑인 꼬마 아이의 시 속에 등장하는 "fair children"이란 예쁜 아이들이 아니라 '백인 아이들'을 말한 겁니다.

뜻을 알고 나서 저는 잠시 삐딱해졌습니다.

 

아니, fair라는 단어는 '공정한, 어여쁜, 보기 좋은, 순수한, 청명한, 깨끗한' 등등
좋은 뜻 밖에 없는데 "하얀 피부을 가진" 것도 fair하다고 말하는구나!

이거 누가 갖다 붙인 뜻이야?!!
피부 하얀 백인이 어여쁘고 보기 좋다는 거야 뭐야?


왜, 왜! 왜 뭐?!


그렇게 한 5초 삐딱선을 타다가 또 생각했습니다.

 

아니지! 어차피 영어는 백인종들 사이에서 탄생한 언어지...
그 때는 죄다 백인들이었을 테니 그냥 자기들끼리도
'걔 중에 더 흰 피부'
가 보기 좋았나 보다.


 나 괜히 흥분하고 있어......


이렇게 순식간에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나니 '내게도 백인 컴플렉스가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사실 인류 문명의 역사로 보면 백인종이 주를 이루는 서구 열강이 앞서 나가기 시작한 건 고작 근세의 일일 뿐인데 그들도 그렇고 우리도 원래 그래온 것 마냥 자연스러워하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나 식민시절을 비롯해 전쟁까지 겪으며 발전이 더뎠던 한국인들은 "선진국" 혹은 "강대국"이라 불리는 국가들의 주류인구인 백인들에게 주눅들었던 것도 사실이죠...
저는 후진국 한국을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님에도 윗 세대들의 영향을 받고 자랐으니 은연중에 백인 컴플렉스가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에 와서 엉성한 백인들을 많이 겪어서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었고 거기에 더해 경제·문화의 고속성장을 이룬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의 약진으로 지금은 주눅들 일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

여러분의 진~짜 속마음은 어떤가요?
신나는 하루,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