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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내게 겸손함을 버리라고 충고했던 미국 교수님

by 이방인 씨 2011. 11. 18.

 

즘 인기폭발이라는 장근석 군의 인터뷰 내용을 보니 "겸손함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고 했더군요. 저는 장근석 군보다 윗 연배라 그런지 그의 발언을 듣고 역설적으로 "이 대스타님을 보니 역시 겸손함은 언제나 미덕이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네요.


미덕이라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각기 다른 문화의 특성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죠.


제가 학교 진학을 위해 선생님들께 추천서를 부탁드리러 다닐 때의 일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학, 대학원, 혹은 취직을 할 때도 공신력 있는 추천서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답니다. 저 역시 각기 다른 선생님들께 추천서를 부탁드렸는데요. 그 중 한 분이 추천서를 써 주시면서 제게 학교 진학을 위한 조언을 해주셨는데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 그건 너를 성공하게 만들지 못할거야."
Humility is not a virtue in America. It won't get you far.

 

 

그 분이 덧붙이기를, 아시아 문화권에서 겸손이 대단히 중요한 미덕 (a great virtue)인 것을 알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자신을 낮추면 남들 역시 너를 얕잡아볼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미국사회의 보편적 문화가 이렇기 때문인지 미국인들은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자랑이 심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미국인들을 가장 비웃었던 것들 중 하나도 바로 근거없는 자랑질이었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별거 아닌 실력도 굉장히 부풀려서 자신을 과시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웠다고 했더니 듣고 있던 친구가 본인도 피아노를 잘 친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마침 학교에서 키보드를 칠 기회가 있어서 들어 보았더니,


얘야, 너 엊그제 바이엘 하권을 끝마쳤나 보구나.
그랬구나...잘 알겠다.  


안습

 


또 한번은 어떤 친구가 본인은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서 4개국어를 할 수 있고 일본어도 잘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난 재능이 뛰어나지 않지만 일본어를 1년은 배웠기에 기초회화정도는 된다"고 말하고 대화를 잠깐 시도 했더니, 인사 주고받고 오늘 날씨 얘기하니 그 친구 밑천이 다 떨어져버리더군요. 제 짐작으로는 나머지 3개국어도 아마 그 수준일 것 같았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네요. 세계 최고 비만국인 미국답게 한창 외모에 관심 많은 여학생들 중에도 상당한 체구를 지닌 학생들이 많은데요.
제 친구 중에도 누가 봐도 지나치게 건장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체구에 얼굴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이가 있는데 입만 열면 본인의 외모 자랑을 합니다. 하루는 너무 진지하게 나중에 결혼하면 꼭 본인을 닮은 딸을 낳아 자신의 미모를 물려주고 싶다고하더군요. 처음에는 정말 농담이겠거니...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그 생명을 생각하면 반드시 농담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자못 진지하더라구요.


미안2

미래의 내 친구 딸아, 너희 엄마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나를 용서해 다오...



이 밖에도 제가 미국인들의 밑도 끝도 없는 전방위 자랑질을 들으며 속으로 아연실색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이 실 없이 자랑하는 걸 좋아하는 민족이라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성과를 과장하는 것이 이 나라의 보편적 문화랍니다.


한국에서 누가 봐도 출중한 엄친아들이 겸손하게 실제 능력보다 스스로를 훨씬 낮춰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듯 미국에서는 정반대로 겸손이 아닌 자기과시의 미덕이 있는 셈이죠. 또한 제게 겸손을 버리라고 조언해 주셨던 교수님이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면접을 볼 때 주의하라며 이런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네가 해낸 일들을 실제보다 부풀려서 얘기해라. 
거짓말까지는 하지 말고 우아하게 자랑질해라."

 


한국에서도 도에 지나치는 겸손은 가식이라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듯이 미국에서도 자랑질은 우아하게, 티 안나게 해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거죠. 그런데 너무 티나게 자랑하는 순.진.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오늘도 저는 미국에서 코웃음이 그칠 날이 없답니다. 후후훗~  

장근석 군의 말처럼 정말 한국에서도 겸손함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을지 모르지만 저는 겸손은 아름답게 지켜내야 할 한국의 미덕이라는 생각을 한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미국인이라고 다 자기과시를 좋아하는 성향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인들 중에도 "겸손"을 아무나 갖추기 힘든 매우 가치 있는 미덕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 보면 그런 미국인들은 무척 정중하면서도 친근한 사람들이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