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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야기

미국에 사는 블로거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

by 이방인 씨 2013. 12. 8.

블로그 시작하고 한 1년쯤 지났을 무렵부터 살짝 살짝 궁리를 해 오다가 최근 들어 어쩐지 자포자기하게 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외국에 거주하는 블로거들은 한 번쯤 같은 고민을 한 경험이 있을 줄로 짐작합니다.
언젠가 TV에 출연한 외국 뇌 과학자의 말을 들으니 "고민하고 망설이는 것이 두뇌를 활성시킨다"고 하던데 저의 부실한 뇌를 활성시키는데 도움을 준 그 골치덩어리는 바로 이것이랍니다.


 외.래.어. 표.기.법.

 

블로그에 한글로 글을 쓰면서 최대한 한국어만을 쓰고자 노력하지만 고유명사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이 외국어 그대로 쓸 수 밖에요.
이럴 때 알파벳으로 표기할 수도 있지만 일전에 다른 곳에서 글의 절반이 영단어로 범벅된 포스팅을 읽고, '단어의 의미는 정확히 전달됐을지 모르나 활자로 읽기에는 썩 좋지 않은 문장'이라는 느낌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한글 중간에 갑자기 알파벳이 튀어나오는 방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여 영단어도 한글로 쓰는 편인데, 외래어 표기법을 엄수하라는 권고를 적잖이 받습니다.
털어놓자면, 외래어 표기법을 잘 모르긴 해도 국립국어원에서 권장하는 표기법이니 만큼 지키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다만 그냥 넘어가기에는 개운치 않은, 몹시 애~매한 표기법이 조용히 게으름 피우고 싶은 저의 두뇌를 자꾸 활성화시키네요.
계기가 된 것은 제게 외래어 표기법을 당부한 분들조차 확실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제가 Buffet를 "부페"라고 적자 국립국어원에서 정한대로 "뷔페"라고 쓰라고 하셨지만 lobster를 "로브스터"라고 적는 것에는 반대하셨는데, 로브스터 역시 국립국어원이 정한 표기법이랍니다.
모니터 너머로 곤란한 웃음을 터트릴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겪으며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저의 3단 고민이 진행되었습니다.

 

1단 - 현지 발음이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 들어온 외래어든 간에 현지 발음 그대로 표기하지 않는 단어가 더 많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지명(地名), 인명(人名)을 들 수가 있겠는데요.
프랑스의 수도를 그 나라 사람들은 "빠리"라고 (중간쯤에 'ㅎ'이 잔뜩 들어간다는데요.) 발음하지만,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한국에서는 "파리"라고 써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비슷한 예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을 만큼 이런 표기법이 많은데, 그렇다면 외래어 표기법은 현지에서는 별 소용이 없겠군요.


2단 - 그렇다고 국제적 발음도 아니다

어차피 외국어 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는 현지 발음을 굳이 고수할 것 까지야 없겠죠.
하지만 적어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발음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Paris를 "빠리"로 적지는 않아도 "패리스" (된소리는 아니니 규정을 어기지는 않았잖아요? ^^;;)로 쓰는 것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데요.
무조건 영어 발음으로 적자는 말이 아니라, 모국어가 다른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그나마 통할 확률이 가장 높은 발음을 쓰는 게 낫겠다는 것 뿐입니다.


3단 - 심지어 한국인들도 그렇게 발음하지 않는다!

가장 납득이 안 되는 사실은, 제가 아는 한국인 중 그 누구도 lobster를 로브스터라고 발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까부터 예를 든 Paris 역시 "파리"보다는 "빠리"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요?
예전에 어느 TV 방송에서 출연자는 아주 명확한 발음으로 "빠.리.지.엥." 이라 말했는데 자막에는 "파리지엔"이라고 나오더라구요.

"표기법"이기 때문에 구어(口語)의 발음과 다를 수 있다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역시 이상하지 않아요?
말할 때 발음은 "빠리"인데 글을 쓸 때는 "파리"가 되니까...에... 음... 저... 그렇다면 소리내어 활자를 읽을 때는??
한국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듯한 국립국어원의 학자/연구원 분들이 표기법을 정했을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지만...


그래도 이상하긴 해요...

안들려

 

미국 이야기를 쓰다 보면 영어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출신의 이민자들이 전파한 외래어가 많이 나와서 (예를 들면 각 민족 고유의 음식 등) 표기법이 더 마음에 걸리곤 합니다.
처음에는 알파벳을 보이는 대로 읽는 식의 발음도 써 보고, 한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하다는 발음으로도 써 보고, 아예 알파벳만 써 놓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영어로 쓰고 괄호 안에 사전에 나온 한국어 발음을 같이 쓰려고 노력합니다.
현지 발음도 아니고, 미국식 발음도 아니지만 국어사전에 나오는 대로 표기하다 보니 써놓고 읽어 보면 애~매한 단어들도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조금 난감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데~ 있는데~

 

(ⓒ uncyclopedia.co.kr)

하아~ 이건 이것대로 싫구나...

그냥 로브스터에 만족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두뇌 활성화고 뭐고 고민하지 말자...


여러분, 멋진 일요일 유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