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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California

노부모 봉양에 딸과 며느리들이 희생하는 건 미국도 똑같아요

by 이방인 씨 2013. 5. 30.

한국 속담에 '첫 딸은 살림 밑천' 이라고 하죠?
딸들이 야무지고 알뜰살뜰해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인데요.
이 말처럼 장녀들이 부모님이나 동생들을 두루 챙기는 헤아림과 마음 씀씀이가 있는 경우가 많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나이 드시면 공들여 키운 아들보다 딸들이 더 효도한다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간혹 듣는데요.
저도 위에 남자 형제가 있어서 느끼는 바가 많은데, 아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기보다는 남자들 특유의 무심함과 섬세함 부족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그래서 생겨난 말이 '리모컨 효도' 라고 하더군요.
저도 결혼한 친구에게 들어서 최근에야 알게 된 말인데 그 뜻을 알고 빵~ 터졌습니다.
이 말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설명해 드리자면 '리모컨 효도'란 결혼한 남자들이 자신의 부모님 챙기는 걸 스스로 하는 대신 아내에게 넘기는 것을 말한다는군요.
TV 리모컨 조종하듯이 버튼을 눌러서 며느리에게 시부모님께 효도하라고 시킨다는 것이죠.
한국에서 결혼한 친구에게 전해 듣고 그 기발한 말에 웃어제끼다가 친구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딸은 살림 밑천' 과 '리모컨 효도' 라는 말, 미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답니다.
외국에서 흔히 가지는 선입견과는 달리 미국인들도 노부모의 생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고 제가 몇 번 말씀드렸죠?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베이비 부머 시대에 태어난 미국인 중 33%가 부모님의 노후를 지원하고 있고 25%는 아예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중에 전미은퇴자협회의 조사를 보면 노부모를 돌보는 자식 10명 중 무려 7명이 딸이라고 합니다. 
아들이 모시는 경우에도 결국 실질적 역할은 며느리가 하는 경우가 더 많구요.
놀라운 점은 이 딸들과 며느리들이 전업 주부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여성들이라고 해도 부모님을 돌보는 책임까지 지고 있다는 것이죠.

 


(blogs.kcls.org)



미국에서는 이런 현실을 관찰하고 분석한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0년에 발간된 The Daughter Trap (딸이 빠지는 함정) 이라는 제목의 책이죠.
참고로 이 '함정' 이라는 제목에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함정이라는 뜻이 아니라 많은 딸들이 자신의 현실적 여건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마음만으로 노부모 부양을 맡아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 과정이 자기도 모르는 새 함정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책을 집필한 저자 역시 MBA까지 취득한 여성이었는데 일을 하면서도 무려 20년 가까이 노부모님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는 그녀처럼 함정에 빠진 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통계처럼 부모를 모시는 자식 10명 중 7명이 딸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죠.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딸이 일생 동안 부모님을 돌보는데 할애하는 시간은 평균 11.5년인데 반해 아들은 1.3년이라네요.

이런 압도적인 결과를 보면 딸들이 함정에 빠지는 원인은 단순히 각 가정의 아들과 딸의 성향 차이라기보다는 남녀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 외가는 아들 둘에 딸이 넷인 집안인데 제가 보기에 실질적 효도를 하는 건 전부 어머니와 이모들입니다.
그런데도 어머니께 여쭤보면 어머니는 늘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삼촌들도 하느라고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만큼 하기 힘들어. " 하시더라구요.
아쉬운 사실이지만 저도 흥할 인간의 '하느라고 하는(?) 효도' 때문에 울화통 터지는 일이 종종 있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잘 모르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죠.
하나하나 고쳐 주기도 힘들어서 '앓느니 죽는다고 그냥 내가 하고 말지' 하는데 아마도 이게 스스로 함정을 파는 길인가 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가요?
만약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저와 같은 딸이라면 이런 고민을 해 보신 적이 있나요?
만약 당신이 아들이라면... 억울하신가요? 아니면 공감하시나요?

의견 있으신 분들은 댓글 남겨 주시고, 여러분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 글은 아들을 폄하하려는 목적이 아니며 모든 아들을 일반화할 수도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러니 효자분들 오해 마세요~